새롭게 시행될 의료분쟁조정제도
조정제도 실효성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
20여년 동안 성안되지 못했던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해 12월 29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를 통과했다. 올해 2월 임시국회에서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법안이 정한 2010년 7월 1일부터 시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 입장에서는 법안의 내용에 만족할 수 없겠지만, 환자와의 장기간에 걸친 분쟁이나 환자의 협박으로 인한 진료방해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제도로서 기대해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법안 논의과정에서 의료계·정부·시민단체가 각각의 쟁점에 대해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였던 만큼, 법률이 시행되더라도 실효성을 거두며 의사와 환자 모두를 만족하는 제도로 정착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의료계가 줄곧 주장하였던 '분쟁의 조정' 이라는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필요적 조정전치'가 채택되지 못한 점과 형사처벌특례 도입이 1년간 유예되고 나중에 다시 평가를 통해 도입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점 등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법안이 담고 있는 입증책임, 조정전치주의, 형사처벌특례, 무과실의료사고보상 등에 대해서는 그동안 의료계를 포함한 각계의 입장이 달랐던 만큼, 각 쟁점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하는 것이 앞으로 제도의 진행 추이를 가늠해 보는데 있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법률이 시행될 경우 환자와의 분쟁을 신속하게 해결(조정)하기 위해 '조정중재원'을 통한 중재가 이루어질 것이 예상되므로, 조정절차 등에 대해서도 꼼꼼히 숙지하여 언제 닥칠지 모를 환자와의 분쟁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중재원의 조정과정도 객관성 담보돼야
누구에게 입증책임을 지울 것이냐의 문제는 핵심 쟁점이었다. 일반적으로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과실 등을 입증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의료의 특수성을 감안해 의료인측에게 입증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오랜 다툼의 대상이 되어왔다.
의료인측에게 입증책임을 지도록 하는 규정을 명시해야 한다는 의료소비자시민연대 등 시민단체의 주장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는 외국의 입법례는 물론이고 민사소송법에 따른 입증책임 원칙에 반하며, 질병이나 환자의 특이체질 등에 따라 의료진 역시 입증이 어렵다는 점 등을 이유로 명문화를 반대해 왔다.
정부도 소송의 남용 및 방어진료의 조장 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의료계와 입장을 같이했다.
이와는 별도로 현재 대법원은 '의료상 과실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공평·타당한 부담을 그 지도원리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의 이상에 맞는다'(대법원 2005.9.30. 선고 2004다52576 판결)고 판시함으로써 입증책임 완화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입증책임에 대한 논란은 이번 법률안 심의 과정에서도 계속되었으나, 정부측이 전문적인 감정을 수행하는 별도의 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환자측과 의료인측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고, 이를 위해 조정중재원과 감정단을 통한 객관적인 조사와 조정을 하게 되면 입증책임의 주체를 명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국회도 중재원의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중재(조정성립)가 될 경우 굳이 입증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문제시 되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수용했다.
결국 수많은 논의 끝에 입증책임 전환의 문제는 법문에 규정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림에 따라 의료계 입장에서는 입증책임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되었다.
다만 이러한 입법의 취지가 실제로 구현되려면 의료사고감정단의 조사와 감정 그리고 조정위원회의 조정 과정에서의 객관성 담보가 필수적이다.
즉 조정제도의 기본 취지가 과실의 판단이 아닌 조정의 성립임을 고려할 때, 감정단의 조사과정에서 환자측과 의료인측 양자가 입증하기 어려운 사안 등의 경우에도 굳이 일방의 과실을 밝힐 것이 아니라 최적의 조정(합의)점을 찾는데 역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조정절차 진행과정에서의 객관성 담보는 의료인의 조정절차 참여유도와 조정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임을 유의하여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박종욱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28기)을 수료한 뒤 법무법인 퍼스트의 대표변호사로 수년간 의료민사 및 의료기관 경영 등 의료분야와 기업법무(M&A) 분야 전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가족부 의료분쟁조정법TF팀 자문위원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