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종 횟수 줄이고 순응도 높여…교차·추가접종 땐 비용·스케줄 고려
국내 첫 혼합백신 출시…테트락심 등 올해 3개 제품 국내 출시 계획
"이번 한 번만 더 맞자."
소아과 진료실에서는 주사를 보기만 해도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들의 표정에는 만감이 교차한다. 부모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지기도 한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 연신 주사바늘을 내밀어야 하는 의료진의 마음도 편치는 않다.
'이렇게 여러 번 주사를 놓을 것 없이 단 한 방에 모든 예방 접종을 해결할 수 있다면…….'
이런 바람은 더이상 꿈이 아니다.
백신 제조 기술의 발달로 여러 질병에 대한 항원을 한 번의 주사로 몸 속에 주입할 수 있는 차세대 백신이 속속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약은 복합제! 백신은 혼합백신!
한 번에 두 가지 이상의 백신이 혼합돼 투여되는 혼합백신(콤보백신)이 최근에서야 개발된 것은 아니다.
단일 질환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한 가지 이상의 항원을 복합한 백신을 1세대 혼합백신이라고 부르며, 대부분의 백신들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 한 단계 발전한 것이 다양한 감염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여러 백신을 단일제제로 만든 2세대 혼합백신으로, MMR(홍역·볼거리·풍진), DTP(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최근에 개발된 3세대 백신은 개별 백신을 혼합해 한번에 투여할 수 있도록 한 새로운 제형의 혼합백신을 말하는데, 최소 2가지에서 최대 6가지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백신이 시판 중이거나 개발 막바지 단계에 있다.
혼합백신의 장점은 주사로 인한 통증과 주사 횟수를 줄여줌으로써 예방접종의 순응도를 향상시킨다는 점 외에도 백신의 보관이 쉽고 관리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측면도 있다.
카트린 베유-올리비에 파리 제7대학 소아과 교수는 "공중보건학적으로 기본접종프로그램에 포함되는 백신 수가 점점 증가하는 만큼 혼합백신이 개발돼 주사횟수를 줄이면 더 많은 백신을 포함시킬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며 "비용면에서도 혼합백신이 더 경제적인 것으로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져있다"고 말했다.
혼합백신은 두 약을 하나의 약으로 합친 복합제가 각광받는 등 순응도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최근 의약품 시장의 흐름에도 부합한다.
소아과 개원의 "DTaP+IPV+Hib" 우선 필요
실제로 일선 소아과 전문의들은 혼합백신의 도입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강진한 가톨릭의대 교수(서울성모병원 소아과)가 2004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의뢰를 받아 혼합백신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소아과 개원의 114명 중 98.2%와 소아감염학 교수 45명 중 97.8%가 혼합백신의 국내 도입을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우선 도입돼야 할 혼합백신으로는 소아과 개원의들의 62.4%가 'DTaP+IPV(소아마비백신)+Hib(뇌수막염백신)'을, 소아감염학 교수의 40.0%가 'DTaP+IPV' 백신을 가장 많이 꼽았다. 도입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접종 횟수의 감소' 때문이라고 답했다.
국내에서 한 아이가 6세가 될 때까지 28~29회의 예방접종을 받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혼합백신의 필요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혼합백신이 단순히 개별적인 여러 백신을 한 주사기 안에 섞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GSK 관계자는 "각 백신의 물리적 특성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혼합 과정에서 여러 기술적인 과제에 직면하게 되고, 새로운 백신을 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며 "안전성과 효능을 평가해 개별 백신을 각각 접종한 경우와 유사하거나 혹은 뛰어나다는 결과가 나왔을 때 비로소 혼합백신으로 탄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혼합백신, 교차접종은 어떻게 해야?
혼합백신과 관련해 가장 빈번하게 제기되는 걱정은 '어린 아기에게 한꺼번에 많은 백신을 접종해도 괜찮을까'에 대한 것이다.
이에대해 강진한 교수는 "외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영아는 109~1011개의 항체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1만개의 백신을 동시에 접종받을 수 있다"며 "1960년대 5종의 백신에 3200여개의 항원이 포함됐던 것에 비하면 2000년대에는 백신의 종류는 몇 배로 늘었지만 항원수는 124개로 줄어 점점 아이가 맞아야 하는 항원의 수는 감소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다만 강 교수는 혼합백신이 국내에서 사용돼온 기존 접종 스케줄과 달라 혼선을 빚을 수 있는 만큼 "백신 대상 감염질환에 대한 역학적 배경에 따라 혼합백신의 접종 간격 및 횟수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항원이나 톡신을 이용한 불활화 사백신의 경우 3회 기초접종과 1회 이상 추가접종을 실시해야 하며, 기초접종은 최소한 2개월 이상의 간격을 유지하고, 1세 이전에 이러한 방법의 접종을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 최초로 출시된 혼합백신 '테트락심'(DTaP+IPV)의 경우 교차접종에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기초접종을 처음부터 혼합백신으로 시작했을 때는 이후 혼합백신을 그대로 유지해도 관계없지만, 이미 기초접종을 다른 개별 백신으로 시작했을 때는 기초접종이 끝날 때까지 가능한 기존 백신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현재 2가 백신과 3가 백신을 교차접종하는 데 대한 국내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한편 비용 문제는 국내에서 혼합백신이 확산되는 데 있어 실제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테트락심의 가격은 기존 개별 백신 가격의 합과 큰 차이가 없지만, 기존 개별 백신의 경우 국가필수예방접종 프로그램에 포함돼 일반 병의원 접종도 일정 부분 국고 보조를 받을 수 있는 반면, 혼합백신은 그렇지 못해 실제 소비자가 느끼는 부담은 커진다.
추가접종 때 혼합백신을 사용하는 경우 혼합된 개별 백신의 접종 스케줄에 따라 불필요한 중복접종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혼합백신 러시…올해 3품목 국내 출시
그동안 백신 시장을 주도해온 주요 제약회사들은 혼합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표>. 이미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혼합백신을 사용해왔다.
국내에서도 사노피파스퇴르가 1월부터 '테트락심'을 공식 출시한 데 이어, GSK가 올해 중반기에 '인판릭스IPV'(DTaP+IPV)를 선보일 예정이다.
국내 제약사 중에는 LG생명과학이 4월 DTaP와 B형간염 백신을 결합한 혼합백신 '유트로박'을 출시할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시판되지 않지만 베르나바이오텍이 개발한 5가백신 '퀸박셈'(DTwP+HB+Hib)은 대표적인 수출 효자 상품이다.
이환종 서울의대 교수(서울대병원 소아과)는 "최근 항원농도는 낮지만 효과는 높은 aP백신이 개발돼 4가, 5가 백신이 나오고 있고, 유럽에서는 혼합백신의 사용이 보편화됐다"며 "국내에서는 혼합백신의 도입이 늦은 편인데, 새로운 개념의 혼합백신 도입은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눈썰미가 좋은 독자라면 현존하는 대부분의 혼합백신이 DTP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텐데, 이는 DTP가 예방접종을 통해서만 면역능력이 형성되는 가장 기본적인 백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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