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범위 내성균 출현으로 대적할 수 있는 항생제 사라져"
'항생제 내성 국제 심포지엄' 참석 전문가들 "지구적 재앙"
4∼8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8회 '항생제 내성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International Symposium on Antimicrobial Agents and Resistance, ISAAR)에 참석한 세계적인 감염질환 및 항생제 내성 전문가들은 "어떤 항생제도 듣지않는 내성균으로 인해 한 해 동안 박테리아에 감염된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며 "항생제 내성 문제는 후쿠시마 원전보다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아시아 태평양 감염재단(Asia Pacific Foundation for Infectious Diseases, APFID)이 주최한 이번 ISAAR은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국제학술대회. 전세계 감염질환 및 항생제 내성 분야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항생제 내성·새로운 항생제 및 백신·감염 질환에 대한 최신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을 통해 감염질환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ISAAR에는 전세계 40여개 국가에서 감염질환·미생물학·질병역학·면역학·약물학 분야의 의료인·보건정책·제약기업 연구자 등 전문가들과 학생을 비롯해 총 2000여 명이 참가했다. 이번 대회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제정한 '세계 보건의 날'(4월 7일) 주제인 '항생제 내성'과 맥을 같이해 관심을 모았다.
세계적인 감염 질환 권위자인 윌터 윌슨 교수(미국 메이요클리닉 감염내과)는 "여러가지 내성균 가운데 MRSA(메티실린 내성 황색 포도알균)에 감염돼 미국에서 2005년 한 해 동안 1만 9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며 "MRSA로 인한 사망은 1만 5000명이 사망하는 AIDS나 조류인플루엔자 보다 더 높은 실정"이라고 밝혔다. 윌슨 교수는 "광범위 내성 환자나 전내성을 가진 환자에게 의사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다"면서 "50년 이상 주된 장내 구균 치료약으로 쓰여온 반코마이신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전지구적 차원의 재앙"이라고 우려했다.
윌슨 교수는 "5000일 이상의 많은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도 항생제 개발 가능성은 1%로 낮고, 특허 만료 이후에는 보호를 받지 못하다보니 대부분 제약회사들이 항생제 대신 환자들이 평생동안 먹어야 하는 고혈압이나 당뇨병 약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며 "별다른 유인책이 없다보니 항생제를 연구개발하던 제약회사가 10년 전 40개에서 최근 8개로 줄어들면서 2008년 이후 미국 FDA가 승인한 새로운 항생제는 단 1개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항공기의 발달로 항생제 내성균을 보유한 환자가 12시간이면 전세계 어디든 여행하면서 내성균을 퍼뜨릴 수 있기 때문에 내 나라만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 공조와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윌슨 교수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와 내성균 발생률을 기록하고 있는 아시아 지역의 항생제 내성 관리를 위해 아시아·태평양 감염재단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고 말했다.
송재훈 아시아 태평양 감염재단(APFID) 이사장(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은 "반코마이신 내성 장알균(VRE)·퀴놀론 내성 이질균·NDM-1 생성 대장균 등 다른 내성균으로 인한 사망자는 비교적 관리가 잘되는 미국의 사례를 감안할 100만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며 "특히 의약분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아시아 국가의 항생제 오남용 문제는 전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송 이사장은 "인도·중국·인도네시아 등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입원 환자의70∼80% 가량에서 항생제가 투여되고 있다"며 "심지어 터키에서는 모든 의약품을 통틀어 항생제가 가장 많이 쓰이는 약(22%)으로 조사돼 충격을 줬다"고 털어놨다.
송 이사장은 "아시아지역의 내성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전세계 내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국제적인 공조체계를 강조했다. 송 이사장은 "감시체계 구축과 연구를 통해 현황과 문제점을 파악하고, 항생제 올바른 사용과 감염관리를 통해 전파를 예방해야 한다"면서 ▲예방접종 ▲항생제 오남용 방지 정책 및 규제 ▲연구활동 지원 및 전문인력 양성 등을 제안했다.
이번 국제 심포지엄을 주최한 APFID(www.apfid.org)는 감염질환과 항생제 내성에 관한 다양한 활동과 사업을 통해 아시아 지역 내 공공보건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1999년 송재훈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가 주도해 설립했다. 한국에 본부를 둔 아시아 최초의 감염질환 전문 재단으로 산하에 아시아 최초의 국제 공동 연구 네트워크인 '항생제 내성 감시를 위한 아시아 연합(ANSORP)', 감염학 및 미생물학 연구의 핵심 인프라인 '아시아 균주 은행(ABB)', 감염 질환과 항생제 내성 관련 기초 연구를 수행하는 '아시아 태평양 감염연구소(IDRI)' 등의 기구를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감염질환과 항생제 내성 관련 국제적 공조 및 공동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의 항생제 내성 실태
2010년 OECD 헬스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항생제 소비량은 31.4 DDD(일일상용량, 성인 1000명이 하루에 31.4명 분의 항생제를 복용한다는 의미)로 벨기에와 함께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반면, 네덜란드는 12.9 DDD로 항생제 소비량이 가장 낮았다.
2010년 송재훈 교수가 식품의약품안전청과 함께 국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항생제 사용 및 내성에 대한 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72%에서 우리나라의 항생제 내성 문제가 심각하거나 매우 심각하다고 답했다. 항생제가 감기에도 효과가 있다고 잘못 응답한 사람은 51% 에 달했다. 조사 대상자 가운데 28%는 집에 남은 항생제를 감기 증상에 임의로 복용한 적이 있다고 응답, 여전히 항생제 오남용에 대해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아시아 지역의 항생제 내성 문제 극복 전략
전세계 인구의 60%가 살고 있는 아시아는 항생제의 오남용을 규제하는 법규나 의약분업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고, 병원 감염 관리나 공공 보건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이나 국가가 많은 상황. 더욱이 가짜 항생제가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어 전세계적으로 항생제 오남용 및 내성이 가장 심각한 지역으로 손꼽히고 있다.
송재훈 APFID 이사장은 "아시아 지역의 심각한 항생제 내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시아를 망라하는 항생제 내성 감시체계를 구축해 내성 현황과 문제점을 파악해야 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항생제 내성 문제에 대한 인식도를 제고하고, 올바른 항생제 사용을 유도하는 캠페인, 보다 효과적인 감염 관리, 백신 접종을 통한 감염질환의 예방, 그리고 적절한 정책과 규제를 통해 항생제 오남용을 방지하는 종합적이고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 이사장은 "항생제 내성은 국가간에 전파되므로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 문제"라며 "항생제 내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국제적 공조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송 이사장은 국제적인 공조를 위해 APFID 설립한 데 이어 ISAAR 학술대회를 비롯해 다양한 국제활동을 벌이고 있다. 송 이사장은 1996년에 아시아 지역 최초의 국제 공동 연구 네트워크인 '항생제 내성 감시를 위한 아시아 연합(ANSORP)'을 조직, 지난 15 년간 아시아 지역의 항생제 내성 실태에 대한 국제 공동 연구를 이끌었다. ANSORP은 현재 아시아 14개국의 120여 개 병원이 참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국제 공동 연구조직 중의 하나로 발전했다. APFID은 2011년 하반기부터 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항생제 내성 관리와 예방을 위한 국제 캠페인인 'I Care(Initiatives to Control Antimicrobial Resistance)'를 시작할 계획이다. I Care는 아시아 지역 최초의 항생제 내성 예방 국제 캠페인으로 각 나라의 학회·보건당국과 협조, 대국민·대의료인 캠페인을 펼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