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국시 잇단 잡음…문제은행 장벽 무너지나

의사국시 잇단 잡음…문제은행 장벽 무너지나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1.04.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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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고발 사태 이어 실기시험 집단 부정행위 입건
국시원, 센터 추가 확보 및 필기 기출공개 검토

의과대학에서 해묵은 관행처럼 굳어진 의사국가고시 족보 만들기에 제동이 걸렸다. 조직적으로 실기시험 문제를 유출한 혐의로 스승과 제자들이 나란히 경찰 수사망에 걸려들면서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 범죄 수사대는 지난 3월 31일 전국의과대학본과4학년협의회(전사협) 회장 등 집행부 1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전사협 집행부는 지난해 수회에 걸쳐 각 의대 대표들이 참석하는 회의를 진행하면서 시험 후기를 공유하는 등 집단 부정행위를 저지른 혐의다.

사태가 터진 후 비난의 화살은 의료계에 쏠렸다. 몇몇 언론사에서는 '예비 의사 병든 양심', '히포크라테스도 땅을 칠 양심불량' 등의 제목을 달아 이를 기사화했다. 실력 없는 의대생들이 부정행위로 의사가 됐을 때 일어날 부작용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의료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한 변호사는 트위터를 통해 "이번 의사국시 문제 유출사건을 보니 걱정이 크다"면서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갈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1차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당사자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지만 의료계는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이다. 자발적으로 기억력을 동원해 기출문제를 복원, 시험에 대비하는 것은 의사국시뿐 아니라 모든 시험에 전통적으로 통용돼온 방식이라는 것.

문제가 불거지자 전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연합(전의련)은 성명을 발표해 장기간의 고된 교육과정을 거쳐 자격을 얻는 의대생을 '부정한 집단'으로 호도하는 여론에 유감을 표시했다.

전의련은 "대부분의 의대에서는 수많은 시험과 유급 제도를 통해 학업의 질을 엄격하게 점검하고 있다"면서 "국가고시에 임할 수 있는 자격은 그 자체가 결실로서의 의미를 가지며, 의사국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노력 없이는 응시조차 할 수 없는 시험"이라고 강조했다.

복원 사태와 관련해서는 "시험을 본 몇몇 학생들이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홈페이지를 통해 관련 정보를 공유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는 자신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도와주기 위함이었을 뿐 악의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비정상적인 합격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전의련은 전사협의 행위가 합격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준의 것이 아님은 이미 언론을 통해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서도 스스로 밝힌 바 있는 만큼, 국시원과 해당 관계자들이 넓은 아량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사건에 연루된 학생과 교수들은 1차 조사를 마치고 검찰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국시원은 무혐의 또는 기소 여부에 따라 규정을 어긴 당사자들에 대한 행정적 재제 조치를 내릴 방침이다.

족보 양성화로 불필요한 복원 노력 줄인다

앞서 국시원은 지난해 12월 31일 필기시험 기출문제를 재구성해 문제집을 발간한 P출판사 등 3곳을 저작권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실시기관이 문제은행 출제방식에 따라 기출문제를 비공개하고 있음에도 이들 출판사가 의사국시, 간호사국시 등의 출제문제를 복원해 기출문제집을 발간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국시원은 수년 전부터 해당 출판사의 저작권 침해행위에 대해 형사고발 및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하겠다고 경고했지만 행위가 근절되지 않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고소장은 서울동부지검에 접수돼 강동경찰서에 배정된 상태다.

사태가 알려지면서 일부 의대생들은 "앞으로 국시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 거냐"며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의대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수험생들이 어떤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시험에 출제된 문항"이라며 "국시원에서 의사국시의 문제와 정답을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유일한 방법은 수험생들의 기억에 의존해 문제를 복원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성토했다.

다른 의대생은 "미국 제도를 따라 실기시험을 만든 국시원이 문제를 공개할 수 없다면 미국 처럼 국시원 자체에서 유형문제 풀(pool)이라도 제공해야 이치에 맞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불편한 심경은 스승들도 마찬가지다. 교육부학장을 맡고 있는 서울 소재 모 의대 교수는 "우리 때도 족보는 다 있었다. 족보 안 보고 교수된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보건복지부에서도 문제를 공개하라고 권고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금지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기출문제 공개가 원천 봉쇄된 의사국시 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국시원은 지난 4월 5일 2012년부터 의사국시 필기시험에 한해 기출문제를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은행 출제방식을 유지하는 한 기출문제 공개는 원칙상 맞지 않지만, 학생들이 문제를 복원하는 데 소요하는 불필요한 노력을 줄여야 한다는 판단이다.

김건상 국시원장은 "흔히 얘기하는 사법고시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경우 출제자들이 한 달씩 합숙하면서 문제를 만드는 현장 출제방식이기 때문에 기출문제 공개가 가능한 것"이라며 "선발이 아닌 자격시험인 의사국시와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의사국시도 현장 출제방식으로 바꿀 경우 난이도 조절에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수험생에게 오히려 불리한 측면이 있다"면서 "의사국시에서 가장 문제가 많이 생겨 공개를 추진하고는 있지만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신경 쓸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실기시험 시행 관련 인프라를 확충해 두 달여에 달하는 시험기간을 줄이는 개선책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유관기관과의 협조를 통한 재원 마련이 필수적이다.

김건상 원장은 "센터를 늘리는 것뿐 아니라 시험에 동원되는 표준화환자도 더 트레이닝시켜야 되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정부와 논의를 거쳐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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