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PA, 왜곡된 의료현실의 사생아인가?

coverstory PA, 왜곡된 의료현실의 사생아인가?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2.02.2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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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 공식집계만 1532명…양성화 추진에 의료계 내홍
"제도권 흡수 불가피" vs "의사 앞길 망치는 길" 팽팽

▲ '현 수가 체계를 유지하고픈 보건복지부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병원 경영자의 욕망이 만들어낸 합작품?' PA의 양성화 여부를 두고 의료계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 없음) ⓒ의협신문 김선경

Cover Story

'미필적 고의'라는 법률용어가 있다. 행위자가 범죄사실의 발생을 적극적으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기의 행위가 어떤 범죄결과의 발생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하는 의식을 뜻한다.

만약 의료현장에서 의사가 아닌 사람이 흰 가운을 입고 회진을 한다면 환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수술복 차림으로 수술실에 들어가 부위를 절개하고, 상처를 봉합하는 역할을 맡는다면?

당사자가 의사로 보이기 위해 '작정'한 것은 아니더라도, 지시를 내린 병원은 의사가 의료행위를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끔 암묵적으로 이를 유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만약'이 현실이 된 게 요즘 의료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PA(Physician Assistant) 논란이다.

의사 업무를 보조하는 PA는 십수년 전부터 전공의 인력이 부족한 기피과를 중심으로 활동해왔지만, 최근 양성을 제도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면서 의료계 내에서도 찬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PA 파문' 분수령된 흉부외과 연수교육 현장

18일 오전 신촌세브란스병원 은명대강당. 지난해에 이어 대한흉부외과학회 주최로 PA 연수교육이 진행된 이곳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월 학회에서 일정을 공고하자 "연수교육이 PA 양성화의 기반이 될 수 있다"면서 교육 중지를 요청했다. 이달 초 대한의원협회는 한 발 나아가 "강의하는 흉부외과 교수들의 퇴진운동을 벌이겠다"는 내용을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

흉부외과학회는 연수교육의 목적이 PA의 불법의료행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의사 지원업무의 표준화를 위한 것이라며 시간적 촉박 등의 이유로 교육을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원협회는 이날 교육이 진행된 장소앞에서 PA연수교육에 반대하는 피킷시위를 벌였다. 사전등록과 현장등록을 합쳐 이날 교육을 받으러 온 PA는 300여명. 소동을 의식한 학회 임원진은 출입증을 소지한 사람만 대강당에 들어갈 수 있다는 원칙을 세웠다.

"의사들이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PA)이 중요합니다. 10년 전 펠로우로 소아심장수술을 시작할 때, 저의 멘토가 돼준 건 수술방 PA였어요."

첫 번째 연자로 나선 장윤희 가톨릭의대 교수(서울성모병원 흉부외과)의 말이다.

소아심장에 대한 강연을 맡은 장 교수는 "서전이 되고나서도 수술을 감시하고, 전공의 교육에도 애써주는 노고를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면서 "PA는 전공의 대체인력이 아닌, 치료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전문영역"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장 교수뿐만 아니라 연수교육에 참여한 강사진 거의 모두가 비슷한 요지의 발언을 했다. PA 의료행위 허용을 둘러싼 문제로 바깥이 시끄럽지만 힘내서 묵묵히 일하라는, 일종의 격려사다.

김용진 학회장은 "잡음이 많은데, 흉부외과 일을 잘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며 "흉부외과 발전과 환자 진료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10년차 PA "사람 살리는 보람으로 일한다"

교육은 우려와는 달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나눠준 책자에 PT내용을 꼼꼼히 메모하면서 강연을 듣는 다수의 참석자가 눈에 띄었다.

수술 해부학을 주제로 강연한 이길수 강원의대 교수(강원대병원 흉부외과)는 PA가 참고하면 도움이 될 만한 80만 원 상당의 교재를 소개하면서 "좀 비싼 게 흠이지만 교수님한테 떼 쓰면 사주지 않겠냐"고 농을 던져 청중석에서 웃음이 번졌다.

이 교수는 학회 교육위원으로 올해 처음 강연을 맡아 인체의 층(layer) 구조, 절개 시 주의해야 할 점 등을 설명했다.

흉벽·폐·식도·종격동 해부학을 강연한 이창영 연세의대 교수(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는 해부학을 교육하고 있는 렘브란트의 그림과 미국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대사를 인용하면서 "훌륭한 서전은 모두가 뛰어난 해부학자"라는 격언을 상기시켰다.

"외과의사뿐 아니라 PA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장애물이 있어요. 서전을 어시스트하면서 많은 장애가 있겠지만, 오늘 강연이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연수교육에 참여한 흉부외과 교수와 PA들은 양성화를 둘러싼 논란을 제도권 편입을 위한 진통과정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PA도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하고 공부할 권리가 있으므로, 떳떳하게 양지로 나올 수 있는 토양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응급구조사 자격을 취득한 후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 수술파트에서 PA로 10년째 근무하고 있는 A씨(남, 32세)는 "흉부외과 특성상 사람 생명을 살린다는 보람으로 일하고 있다"면서 "우리를 반대하는 의사들도 이해하지만 열악한 병원환경에서 PA 역할은 누군가는 도맡아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S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 출신 PA 6년차 B씨(여, 29)는 "의사들이 현실을 모른다. 이미 병원마다 PA가 깔려 있는 상황에서 연수교육을 받을 기회나 보조자격은 반드시 주어져야 한다"며 "전공의와 마찰을 빚는 일은 없다"고 일축했다.

▲ 18일 대한흉부외과학회 주최로 신촌세브란스병원 은명대강당에서 열린 PA연수교육. 많은 논란에도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일정대로 진행됐다.ⓒ의협신문 김선경

'따로 또 같이' 전공의-PA, 불편한 함수관계 

과연 전공의와 PA가 껄끄러울 일은 없을까? 상황은 전공의 연차의 고저에 따라 달라진다. 비교적 낮은 연차인 1~2년차 전공의의 경우 PA와 당직 업무를 분담하는 등 상대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지만, 최대한 수술 감각을 익히고 실전에서 경험 쌓기를 원하는 3~4년차는 숙련된 PA의 존재가 마뜩찮을 수 있단 얘기다.

지방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2년차 김 아무개 전공의는 "PA가 하는 일이 의사가 할 일이라는 건 맞지만, PA 없이 24시간 동안 혼자 일할 수 있는 전공의는 없다"며 "아무래도 초기에는 사정을 잘 모르니까 교수 성향이나 병원 돌아가는 시스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PA에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 전공의는 "PA와의 관계가 틀어져 버리면 자료나 정보 제공이 느려지기 때문에 그분들이 갑, 전공의는 을이 된다. 솔직히 아무 생각 없는 전공의들도 많다"면서 "어쩔 땐 PA가 더 의사 같아 보일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 병원 4년차 박 아무개 전공의는 "의사 하나에 PA 여럿이 붙어서 의사 여럿이 해야 하는 일을 다 하고 있다. 트레이닝 받는 데 장벽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현재 PA 문제에 가장 공격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쪽은 전공의 단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16일 비뇨기과·흉부외과·산부인과 PA 채용 공고를 낸 상계백병원을 대상으로 캡쳐화면 증거자료와 함께 서울지방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채용공고에 따르면, 해당 과 PA는 전공의와 순서대로 5일에 한 번씩 당직을 서고 있으며 월 2회, 주로 윗년차 전공의와 트레이닝 후부터 동등하게 1일씩 당직근무를 하고 있다.

대전협은 21일 대회원 서신문을 통해 PA 불법진료에 대한 자료를 이메일로 접수, 지속적으로 대리 고발을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의료법위반 및 보건범죄단속에관한 특별조치법위반, 사기 혐의로 고발조치한 상계백병원에 대해서는 노원구보건소에 현장조사 및 실태파악을 요청하는 민원까지 의뢰했다.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다.

김일호 대전협 회장은 "의사가 해야 될 일이고 또 해왔던 일이다. 이걸 PA에게 맡긴다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며 "힘들게 당직을 서는 일부 회원들에게는 비난받을 수 있겠지만 국민이 모르는 사실은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수술실 장악한 PA, 의학회가 제시한 해법은?

현재 전국에는 1532명의 PA가 의료기관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표 참조>. 지난해 통계 1009명 대비 50% 가량 폭등한 수치다.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병원
간호부 타부서 간호부 타부서 간호부 타부서 병원수 인원(명)
내과 39 15 49 8 3 - 32 114
소아청소년과 14 5 12 4 1 - 24 36
신생아실 2 1 2 1 - - 5 6
피부과 2 - 4 1 - - 7 7
암센터 13 2 1 1 - - 8 17
방사선종양학과 - 9 - 1 - - 6 10
핵의학과 - - - 2 - - 1 2
재활의학과 - 2 9 5 3 - 11 19
신경과 10 5 21 2 - - 28 38
종양내과 2 - - - - - 1 2
직업환경의학과 - 6 3 24 1 - 9 34
정신건강의학과 1 1 - - - - 2 2
내과계 합계 134 287
흉부외과 89 92 46 17 - - 90 244
외과 148 58 85 16 1 - 76 308
정형외과 34 17 60 11 2 - 63 124
신경외과 41 29 64 19 3 - 72 156
산부인과 74 26 51 15 - - 59 166
성형외과 3 4 11 - - - 14 18
비뇨기과 24 18 25 2 - - 38 69
마취통증의학과 21 64 3 4 - - 13 92
이비인후과 19 6 12 2 - - 27 39
안과 8 13 4 2 - - 17 27
치과 - 2 - - - - 1 2
외과계 합계 470 1245
총합계 604 1532

병원간호사회 법제위원회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내과계 PA가 287명, 외과계가 1245명으로 외과계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 가운데서도 외과 PA 308명, 흉부외과가 244명으로 두 과를 합치면 전체 PA 3명 중 1명은 외과나 흉부외과 수술파트에서 일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간호계에서 파악한 공식적인 통계가 이 정도니, 지방 중소병원 등 일선 의료기관에서 의사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PA가 2000명을 넘어 수천 명에 달할 것이라는 의원협회의 추측도 무리한 주장은 아니다.

소리 없이 의료현장에 뿌리내린 이 수많은 PA를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 의뢰로 500여쪽에 달하는 '의사보조인력 실태 조사 및 외국사례 연구' 최종보고서를 완성한 대한의학회는 '진료보조사'로 명칭을 통일한 한국형 PA제도를 제안했다.

조사에 참여한 연구위원들은 향후 정책의 방향이 어떤 것이든 무자격 의료행위가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데 공감을 표시했다. 따라서 북미나 유럽과 같이 단축된 의학교육을 통해 준의사를 배출하는 PA 제도는 도입하지 않으며, (가칭)진료보조사 자격을 신설해 교육을 양성화하는 방안이 적절하다는 의견이다.

보고서에서는 간호사로서 5년 이상 실무경험이 있어야 진료보조사 자격을 인정한다. 의사단체가 관장하는 소정의 교육과정, 역량 평가와 확인 절차를 거쳐 활동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전공의들은 의사가 아니어도 수행할 수 있는 제반 업무로부터 벗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가벼운 의사 업무를 공식적으로 진료보조 요원에게 맡긴다면, 전공의 미충원 진료과 운영에 도움을 주고 전공의 업무 투입을 위해 전문의를 과다하게 양산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 대형병원과 같은 의료기관에서 보다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자 의사 대신 진료보조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고용할 수 있는 진료보조사 정원을 제한하는 등 예방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전제했다.

개원가에서는 진료보조사 양성안이 PA 합법화와 다를 게 없다는 반응이다. 또 진료보조사가 의사 지시를 받아 단독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허용한다면 이는 의사들의 자승자박, 즉 앞길을 스스로 망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며 강경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안중근 대한외과개원의협의회장은 "진료보조사 양성은 오히려 직역갈등을 부추기고 전공의 기피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 교육기능 개선이 아닌 마비가 초래될 것"이라면서 비진료 의료보조인력 충원과 함께 휴·폐업중인 유휴 의사 채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지부 "각계 의견 수렴…협의 따르겠다"

양성화 여부를 떠나 다수의 PA가 수술실이나 응급실 등에서 실질적인 의사 역할을 하며 현행법상 불법 의료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인원이 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존재 자체가 음지에 가려져 있어 활동 범위를 제한하거나 전공의처럼 정원을 조절할 기제가 마련돼 있지 않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교통정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윤용선 의원협회장은 "의사들끼리 왜 이런 문제로 다퉈야 하는지 모르겠다. 알고 보면 모두 같은 피해자이고, 함께 머리를 짜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병원계·복지부·의사 단체 등이 모여 허심탄회하게 입장을 전하고 발전적인 대안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는 최근 '진료지원인력 활용에 따른 법적문제와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진료지원인력 수요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직접적인 수술 및 시술, 처방 등 의사만이 할 수 있는 행위를 진료지원인력이 수행하고 있는 현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해결책으로는 별도의 제도를 신설하기보다 현실적 수요를 현행 전문간호사 제도에 반영시키는 방법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복지부는 의학회 연구보고서를 토대로 각계 의견을 수렴,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하반기 국회에 관련 의료법 개정안을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논의가 격화돼 있는 만큼 의견 수렴 과정에서 제도화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법 개정을 강행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환자들이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는 데 저하되지 않는 선에서 수위를 결정할 생각이다. 기존 면허제도를 흩트리면서까지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겠다"면서 "(양성화로 인해) 면허제도가 무너지고 환자 피해가 극심해진다면 굳이 강행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는 과정에서 이 정도의 갈등은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초반 합의가 원만하게 도출되면 빠르게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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