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길(서귀포시 안덕의원)
노환규 제37대 대한의사협회장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전노총 같이 '전'자로 시작되는 단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은 의사 사회에서 '전의총' 출신이 새 회장에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만큼 현재 의료계가 처한 상황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변화를 바라는 회원들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어떻게든 바꿔보자!
회장은 슈퍼맨이 아니다. 회장 한 사람이 바뀌었다고 해서 지금 의료계가 처한 불합리한 현실이 한꺼번에 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예를 보자.
많은 사람들이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되면 서울이 조금이라도 바뀔 것을 기대했지만 지금 서울에서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강남3구 아파트 값 떨어진 것 말고는 없다는 말도 들린다. 전임 시장이 추진하던 일들을 파토(?)낸 것 말고 지금까지 한 일이 뭐가 있나? 박시장이 무능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만큼 현실의 벽이 높아서 아무리 능력 있는 시장이라도 운신의 폭이 좁다는 얘기다. 개인적인 능력을 떠나서 현실적인 한계는 분명히 있다.
새 회장이 개인적인 명예나 욕심 때문에 의협 회장을 맡은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무능해 보이는 집행부를 향해 계란을 던지는 일은 쉬워도 본인이 직접 집행부가 되어 현안을 해결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회장 한 사람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회장은 결코 슈퍼맨이 아니다.
새 회장을 향한 회원들의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에 후에 실망도 클 것이다.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기에 지금 새 회장이 느끼는 부담감도 엄청날 것이고 고민도 그 만큼 크리라 본다.
어쨌거나 회원들에게 좌절감만 안겨준 의협의 변화를 갈망하는 회원들의 열망 속에 중책을 맡은 새 회장은 전임회장들과는 달라야 하고 나름대로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회원들이 분노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첫째,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패러다임을 바꾸자. 전임 회장들이 관행적으로 해왔던 일이나 하라고 뽑아준 것은 아니다. 그런 것들은 잊어버리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전임 집행부의 잘못을 캐는 일도 필요는 하겠지만 그 일 하라고 뽑아준 것도 아니다.
내부 갈등에 매달리기에는 지금 당장 해결해야할 의료현안들이 너무 많다. 혁명적인 발상으로 10만 회원의 위상에 어울리는 강력한 의협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10만 회원을 단결시킬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회장이 제대로 업무추진을 하기 위해서는 10만 회원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어떻게? 다들 제 잘난 맛에 살고, 과 마다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의사들을 어떻게 하나로 뭉치나? 미분을 하면 모래알갱이들이지만 적분을 하면 거대한 산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의사들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나, 엿장수 마음대로인 건강보험심사기준이나, 말도 안 되는 입법을 저지하는 일 등 대다수 회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일들도 많다. 회장이 "나를 따르라!"고 소리친다고 회원들이 알아서 따라가지는 않는다.
회원들이 스스로 따라오게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이익과 직결되고 간절히 원하는 현안을 들고 가능성이 있는 해법을 제시하면 회원들은 따라갈 것이다.
민주주의에서는 숫자가 곧 힘이다. 10만 회원을 뭉치게 만들면 엄청난 파워를 낼 수 있다. 어떤 깃발을 들고 어디로 향할 때 주저앉아있던 회원들이 따라올 것인지 고민해보기 바란다.
세 번째는 협상이다. 신임 회장에게서 투쟁이나 투사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이 나만의 착각일까? 지금은 투쟁의 시대가 아니고 협상이 필요한 때이다. 70∼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투쟁으로 대표되는 학생운동을 기억하고 있고, 이후 노총의 극한투쟁도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투쟁의 시대는 아니다. 투쟁으로 모든 것을 얻어낼 수는 없다. 협상이 필요하다. 의사들도 힘들지만 장기불황으로 대다수 국민들도 살기가 힘들어서 의사들의 극한투쟁을 호의적으로 봐줄 국민들도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투쟁은 협상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회비를 줄이자. 지금도 의협이 돈이 없어서 허덕이는데 무슨 소리냐고?
의협이 내게 해주는 일에 비해서 연 60만원이 넘는 회비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다. 물건 값이 가치보다 비싸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그 물건을 사지 않는다. 의협회비도 마찬가지다. 너무 비싸서 기분 나쁜데 더군다나 안 내는 사람을 생각하면 회비를 낼 때마다 억울한 생각도 든다.
회비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낮추고 대신 회비납부율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더군다나 면허 재신고제도의 전격시행으로 회비를 거두는데 더 우호적인 환경도 조성됐다. 그래서 회원들의 부담을 조금 줄여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의협 회비를 10만원 줄이고 정치후원금을 10만원 내는 방안이 좋다고 본다. 얼마 전 정치자금법이 개정되어 의협의 운신폭도 넓어졌다. 국회의원이 300명이니까 6만 회원만 참여해도 국회의원 한 사람당 200명이 후원할 수 있다. 그러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그러면 모든 일을 회장에게만 맡기고 일반 회원들은 공짜로 먹어도 되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회원들도 의무를 다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의무가 회비를 납부하는 일이다. 돈 없이 굴러가는 조직은 없다. 실탄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다.
흔들지 말자. 우리는 도덕 선생을 뽑은 것도 아니고 나무에 올려놓고 뒤를 캐고 흔들어서 떨어뜨리려고 회장을 뽑은 것도 아니다.
회장이 깃발을 흔들면 잘 따라가자. 지지하는 회원 수에 비례해서 회장의 힘은 커진다. 회원들의 강력한 지지가 있어야만 회장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기다려주자. 무슨 일이든 하나라도 제대로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조급하게 성과를 기대하지 말고 최소한 1∼2년은 기다려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후원활동에 동참하자. 행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면 비록 국회의원이 보기 싫어도 국회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10만원의 정치후원금이 의사들의 미래를 바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