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병원 전문의 구인난 심화-전공의 활용 위한 편법도 난무
의료계·시민단체 "잘못 만들어진 제도로 피해속출" 한목소리
"제도 시행 이후 전공의들은 오히려 여러가지 편볍과 애매한 상황속에서 많은 피해를 받고 있다. 일은 일대로 하면서 실제로 도움이 되는 수련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그것이 지금의 응당법이다."
당직전문의 의무화 제도가 시행된지 40여일이 지난 지금, 병원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12일 선진통일당 문정림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주최로 열린 '응급의료기관 현황과 발전방향' 토론회에서 의료계 전문가들은 당직전문의 제도 시행 이후 달라진 응급의료기관의 실태를 털어놓으면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이날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당직전문의제도 시행 이후 현재까지 응급의료기관 지정을 반납한 의료기관은 모두 13곳으로, 이들은 모두 지방에 위치한 중소병원 지역응급의료기관이었다.
백성길 중소병원협회장은 "제도 도입에 앞서 한 번이라도 실태조사를 해 본 건지 의문"이라면서 "지방병원은 전문의를 구할 수가 없다. 제도 시행 이전에는 그나마 전문의들의 협조를 얻어 몇 안되는 응급환자들을 자율적으로 해결해왔는데, 제도가 시행되면서 그나마도 할 수 없게 됐다"고 털어놨다.
달라진 법령에 따르면 규정을 위반할 경우 응급의료기관 장에 과태료 처분과 더불어 기관에 업무정지나 허가취소 처분을 할 수 있으며, 불성실하게 근무해 환자에 위해를 준 경우 해당 당직전문의에게도 면허·자격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기 때문.
그는 "어떤 전문의가 이 같은 벌칙조항을 감당하면서 밤 늦게까지 근무하려고 하겠느냐"면서 "이는 의료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전공의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경문배 전공의협의회장은 제도 시행 이후 상황이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털어놨다.
그는 "응급의학과로 각과 전공의를 파견하는 방식으로 환자에 대한 1차 진료를 담당하게 하기도 하고, 또 다른 병원은 당직전문의 명단만 고시해두고 실제 진료는 전공의가 보게하거나 입원장을 발부해 전공의에게 진료를 맡기기도 한다"면서 "응급실 당직전문의가 전담하는 형태다 보니 전공의가 다른 파트의 업무를 더 맡게 되고, 실제로는 응급실 업무까지 떠 안아야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교수나 전문의가 응급실 진료를 하러가는데 전공의가 안따라 갈 수도 없는 상황. 그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이전보다 전공의가 전문의 눈치를 더 봐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경 회장은 특히 "무엇보다 응급실에서 응급환자를 진료하며 의학적 판단을 하고, 처치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수련의 한 축이자 소중한 경험"이라고 강조하면서 "지금의 현실은 일은 일대로 하면서 실제도 도움이 도는 수련은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조경애 건강세상네트워크 고문은 "정부는 전문의 당직제도를 위해 병원이 비상호출체계를 갖추도록 했을 뿐, 현장에서 발생할 상황에 대한 세부사항은 병원 자율에 맡겨버렸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온콜 당직이라는 불법을 합법화했을 뿐, 응급의료체계는 오히려 후퇴시킨 어리석은 조치"라고 지적했다.
조 고문은 벌칙조항에 대해서도 "전문의가 호출에 응하지 않을 경우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이 과태료 처분을 받고 동료의사가 면허정지처분을 받게 되므로, 병원에서 타과 전문의를 호출하기 보다는 응급실 전담의사만으로 환자를 처치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오히려 응급환자를 기피하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제도개선 방안들을 쏟아냈는데, 중론은 당직근무를 할 전문인력을 확충하고 그에 수반되는 재정부담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야 한다는데 모아졌다.
응급의료 질 제고라는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당직전문의제도 뿐 아니라 기능 중심으로 응급의료체계를 재정비하고, 현재의 응급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등 다양한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에 대해 정부를 대표해 토론자로 나선 정은경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장은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응급의료제도개선협의체 논의를 통해 응급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개선방안을 모색, 하반기 안에 로드맵을 학정할 예정"이라면서 "당직전문의제도에 대한 실태조사도 실시, 그 결과와 오늘 토론회 의견 등을 반영해 제도개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응급관리료 조정, 전문의 진찰료 및 협의진찰료 가산 등 응급의료수가 개편계획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문정림 의원도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약속했다.
문 의원은 "응급의료와 관련된 법과 제도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중차대한 사안"이라면서 "토론회에서 제기된 의견을 바탕으로 국민의 요구와 응급의료기관 운영현실을 감안한 입법적·제도적 개선방안 마련에 역량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