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8일 오후, 가을비가 우산을 써도 좋고 안 써도 좋을 만큼 내리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는 늘 바쁜 의사들에게도 수필문학에 빠져들 수 있게 여유를 줬다. 벌써 세 해째 이맘때이면 우리는 한강을 바라보며 대한의사협회 3층 대회의실로 모이고 있다. 조촐한 수필문학 향연을 베푼 후, 한국의학도수필공모전 시상식을 하기 위해서였다.
대한의사협회장을 대신한 김화숙 대한의사협회부회장 등 의료계 인사들, 한국소설가협회 백시종 회장을 비롯한 문학계·수필계·출판계 여러분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줬다. 시상식에 앞서 '생명, 그리고 희망의 글쓰기'라는 주제로 수필심포지엄이 있었다.
먼저 문학평론가인 김인환 고려대 명예교수는, '수필의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독일의 철학자, 작곡가이며 수필가였던 아도르노의 수필론을 소개했다. 아도르노는 "에세이는 근대 초기에 데카르트가 확립한 네 개의 규칙에 대한 항의이다"라고 했다.
데카르트의 첫 번째 규칙은 확실하고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만을 자신의 판단으로 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아도르노는 에세이는 확실하고 분명한 인식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다음과 같이 반기를 들었다. 에세이스트는 글의 대상에 대해 생각이 떠오르는 데에서 말하기 시작해, 스스로 그치고 싶은 곳에서 중단한다. 에세이는 빈틈없는 개념의 확립을 바라지 않고, 어떤 것을 원리에 환원하는 것에서 벗어나, 하찮은 것 속에 머무르는 반어적인 겸손을 보여준다. 변하는 것, 무상한 것, 하찮은 것 속에 머무르며 변하는 것을 영원한 대상으로 삼는다.
둘째, 데카르트가 대상을 하나하나에 대해 확실한 개념이 설 때까지 분할하고자 했던 것에 대한 항의로, 아도르노는 분할을 요구하지 않고 전체를 가정하지 않았다. 에세이스트에게는 전체가 진리가 아니라, 부분을 강조하고 지금 여기를 강조한다. 인간은 늘 유한한 상태에 처해있지만 인간의 본성은 이를 부정하고 있으며 유한과 무한이 같이 있다. 에세이스트는 대조를 이루는 요소들을 유사하게 연합시키고, 구성요소들을 논리에 따라 병렬시킨다.
셋째, 단순하고 쉬운 것들을 모아 규칙을 만들고 그 논리로 다른 지식을 이끌어 낸다는 것에 대한 반론이었다. 에세이는 단순한 것에서 출발하지 않고 복합적이고 일상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경험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 위해 첫걸음부터 다각적인 관점을 보유하고 경험으로부터 모호성을 제가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에세이다. 에세이의 정신은 보편성에서 비켜서는 이단의 정신으로, 확고한 결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수필을 쓸 수 없다. 확고한 결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과거로 차 있어서 미래가 들어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수필의주제이고 수필의 대상인 수필가의 마음은 언제나 수련의 주체이고 시험의 대상이다.
넷째,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매거(枚擧)와 전체에 걸친 통관(通觀)을 어디에서나 행할 것'이라는 데카르트의 견해에 대한 항의이다. 아도르노는 "에세이는 누락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며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균열 속에서 균열의 틈을 통하여 생각한다. 불확실한 것에 반대해 정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에세이의 적이다. 현실에는 반드시 공존하는 두 개의 적대적 힘들이 존재한다. 위기와 동요는 현실의 정상적인 과정이다. 현실에는 반드시 과학의 그물로 담을 수 없는 경험이 허다하다.
결론적으로 에세이스트는 다각도에서 대상에 몰두하여 시험하고 모색하며, 매 순간마다 철저하게 자신을 반성하고 글을 쓰면서 느끼는 새로운 내용을 음미하고 이용하는 사람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문학이 관계하는 이지적인 요소는 생명과 밀접할 수밖에 없다. 즉 지식내지 이성적인 요소는 생명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문학을 '자연의 모방'이라고 정의했다. 문학이 모방의 대상으로 삼은 자연은 정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적 차원에서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한다는 법칙에 따라 생성해서 성숙하는 길로 움직이고 있다. 이처럼 훌륭한 고전작품은 현실묘사에 그치지 않고 부조리한 현실은 물론 숨은 의미를 탐색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또한 연자는 문학은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가 처음 개념을 정리한 카타르시스를 넘어 무질서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작가의 비전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 연자인 조선일보 김철중 의학전문기자는 의학뉴스는 '오래된 것도 새로운 뉴스가 된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의학이 발전하는 만큼 의학뉴스도 복잡해지고 우리 일상에 더욱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의과대학 시절을 회상하며, 한국의학도수필공모전이 동기가 돼 앞으로 의학도들이 수필문학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개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심포지엄이 끝나고 수상식을 가졌다. 먼저 이방헌 심사위원장은 심사평에서 '수필의 우열을 평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열을 가리는 일은 작가가 겪은 체험의 강도가 아니라 작품의 문장과 문체에 있다고 했다. 대상을 받은 배수정 학생(인하대 의전원)은 "수필을 쓰는 시간은 자기성찰의 시간이었다. 짧게나마 의학의 길을 걸어보니 이처럼 인문학적인 분야도 없을 것 같다."라며, 다른 의학도들도 이러한 소중한 기회를 함께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 향연이 끝났을 때 하늘의 별 대신에 옹기종기 모인 수상학생들의 예지에 찬 눈동자들이, 한국 의학수필을 미래의 별들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 대회를 주최하는 대한의사협회, 후원하는 서울시 의사회, 협찬을 아끼지 않은 고려제약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 이 행사가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변함없는 지원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물심양면으로 애쓰신 한국의사수필가협회 임만빈회장과 회원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