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위기의 의사, 전문직업성 확보를 위한 제언

특집 위기의 의사, 전문직업성 확보를 위한 제언

  • 정리=송성철·고신정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3.11.0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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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창립 105주년 특집 좌담회

복잡하고 다양하게 사회와 보건의료체계가 변화하면서 과거 질병치료 중심의 의사상을 현대사회에 걸맞게 바로세워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의사전문직 고유의 가치(value)와 의무(duty)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진료현장에서의 혼란만 거듭될 뿐이다.

'Golbal role of doctor연구팀'은 지난 2년 동안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와 재단법인 한국의학교육평가원과 함께 '대한민국 의사의 역할과 덕목'을 주제로 의사전문직의 가치와 의무를 현대사회에 걸맞게 규정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의협신문이 올해 연중기획으로 선보인 <Golbal role of doctor>는 이같은 노력의 일환이었다.

때마침 11월 15일 의협창립 105주년을 맞아 '위기의 의사, 전문직업성 확보를 위한 제언'을 주제로 좌담회를 열고, '대한민국 의사의 역할과 덕목'에 관한 그동안의 연구물을 점검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김선경 기자

● 안덕선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
●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
● 한재진 한국의학교육학회 총무이사
윤구현 간사랑동우회 대표
● 전대석 고려의대 교수(의인문학교실) 

▲ 안덕선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 ⓒ김선경 기자
▶안덕선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 = 세계의학교육연맹(World Federation of Medical Education, WFME)은 각 나라별로 시대의 변화에 따른 의사의 역할을 규명하자는 취지로 'Global Role of Doctor in Healthcare'라는 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도 의사전문직 고유의 가치(value)와 의무(duty)에 관한 내용을 구체화 하고, 상징화하기 위한 'Golbal role of doctor' 정립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1990년대 의과대학학장협의회에서 이와 유사한 작업으로 21세기의 의사상을 만든 적이 있고, 전공의협의회 쪽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이 있었다.

사실 이번에 하게 된 것은 일종의 숙제 보고다. 각 나라마다 그 나라에 적절한 의사상을 하나 만들라는 것이 세계의학교육연맹의 국제적인 프로젝트 중의 하나이고, 우리도 이와 연계해 내년까지 결과물을 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세계의학교육연맹은 과거 질병치료 중심의 환경에서 의사가 갖고 있는 능력만으로는,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사회에서 의사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의료정책을 결정할 때 사회가 공동으로 참여해야 하고, 의사들이 이들과 대화하고, 사회의 가치를 위해 여러가지 목소리도 낼 수 있어야 하며, 의료 산업화·상업화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반대편에서 적절하게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

달라진 환경에 맞춰 의사들의 능력을 재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의 포괄적 능력들을 규정하는 작업을 'Golbal role of doctor(대한민국 의사의 역할과 덕목)'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하고 있다.

세계의학교육연맹의 과제로 시작했지만, 우리나라의 의사상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Golbal role of doctor'를 규정하는 작업은 그 시작점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차제에 다른 유사연구들을 참조하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담아내야 할 것으로 본다.

의사상이 무엇인지 논의를 시작하고, 또 각계의 목소리를 듣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의대 교수나 개원의들이 모여서 외국의 사례와 연구들을 벤치마킹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불합리하다던지 부족하다던지 혹시 그런 것이 있다면 지적해 달라.

오늘의 부탁 말씀은 'Golbal role of doctor'에 대해 비판적 시각에서 의견을 개진해 달라는 것이다.

▲ 한재진 한국의학교육학회 총무이사 ⓒ김선경 기자
▶한재진 한국의학교육학회 총무이사 = 안덕선 교수께서 일단 외부환경의 변화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사실 어느 나라든 의사가 없는 나라는 없고 전세계가 하나가 되는 국제화·세계화, 그리고 산업의 발전이 연결되면서 의사와 의사가 하는 역할과 관련한 세계 공통의 무엇이 있으면 좋겠다는 외적인 압력들이 생기고 있다.

덧붙여 우리나라 안의, 내적인 고민도 필요하다고 본다. 의사가 갑자기 팽창하고 또 정치나 국가적 차원에서 의료 복지의 개념도 커지고 있다. 국가 예산에서도 보건의료에 대한 부분이 늘어나고 있고, 보건의료를 둘러싼 여러가지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의사의 역할을 정부에서건 시민사회에서건 의사 자체 내에서건 어디서든 이야기해야 하지 않느냐는 문제 의식이다. 내·외부의 환경변화를 고려했을 때 현대의 의사상을 정립하는 작업은 늦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이라도 하는 게 낫다고 본다.

윤구현 간사랑동우회 대표 ⓒ김선경 기자
윤구현 간사랑동우회 대표 = '대한민국 의사의 역할과 덕목'을 살펴봤는데 제가 느끼기에는 이런 문항들이 선언적인 가치가 있지만, 그 다음 이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이지, 어떻게 제도나 실천 행동으로 옮길 것이지가 휠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정리해 놓은 어느 문장 하나, 의미가 없다거나 불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올 만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이것들이 현실에 적용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이냐를 더 논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현실에서 과연 어떻게 될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가기 위해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스러운 것은 실천가능한 것이냐, 너무 추상적이지 않냐는 것이다.

나쁜 얘기는 하나도 없더라. 내용이 모두 주옥같지 않나(하하).

▶안덕선 = 이것은 전문직 내에서 만든 것이어서, 외부의 시각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올해 후반기나 내년 상반기에 외부사회에서 보는 시각은 어떤지를 살펴보는 작업을 진행하려고 한다. 의료계 내에서도 더 의견을 모아보고 또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분들에게 살펴보도록 하고, 좀 더 다른 시각을 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가 보기에도 너무 의료계 내적인 관점에서 만든 것이어서 그런 약점이 보인다.

윤구현 = 예를 들어 비용대비 효과적이어야 한다는 것과 최선의 진료를 해야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상충될 수 있는 말이지 않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경우 고민이 될 것 같다.

▶안덕선 = 내부에서도 최고와 최선을 놓고 고민도 많고, 논란도 많았는데 끝에 선택한 용어가 최선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수 있고, 이의 제기가 가능하다고 본다. 최고가 아닌 최선이라는 점에서….

윤구현 = 어느 국가가 최고의 의료를 모든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겠나?

▶안덕선 = 전대석 선생님의 의견은 어떤지? 전대석 선생님은 철학박사이고, 비록 의대에서 근무를 시작했지만 다른 시각이 있을 것 같다.

"달라진 환경에 맞춰 의사들의 능력을 재규정할 필요가 있다…그런 의미에서 의사의 포괄적 능력들을 규정하는 작업을 'Golbal role of doctor(대한민국 의사의 역할과 덕목)'라는 이름아래 진행하고 있다"

▲ 전대석 고려의대 교수(의인문학교실)  ⓒ김선경 기자
▶전대석 고려의대 교수(의인문학교실) = 제가 보기에는 너무 모호한 문장이 걸린다. 내용을 명확히 정해야지 적용할 수 있을 텐데. 선언문적인 성격이라면 좋은 문장이지만 실천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단계로 넘어간다면 애매한 부분이 있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꼭 실천해야 할 일과 선언적인 애매모호한 부분을 나누고, 반드시 지켜야 할 부분과 의사 권한 밖에 있거나 실제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을 골라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본다.

항목 하나하나를 보면서 의무에 해당되는 것 먼저 골라내고, 나머지 부분도 중복되는 부분끼리 하나로 묶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용이 많고, 중복도 많고 그런 부분들이 있다. 일단 꼭 해야할 것들을 먼저 골라내는 것이 첫 작업일 것 같다.

General Medical Council(GMC)에 보면 필수적으로 해야 할 부분들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그런 부분들을 좇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잘못된 용어도 보인다. 'informed consent'는 '동의' 보다는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라야 의미가 좀 살아난다.

▲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 ⓒ김선경 기자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 =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번역이 달라질 수 있다. 짧게 번역하면 의미가 너무 살지 않는다고 하고, 길게 번역하면 의미가 변질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본은 '인폼드 컨센트'라고 다른 곳에서는 '설명 및 동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일치된 의견이 없다. '충분한 정보제공을 바탕으로 한 동의'라는 의미에 가까운데…. 의학·철학·생명윤리·의료윤리 등 서로 대화가 없다보니 아직까지 용어에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 같다.

▶한재진 = 용어가 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학술적 교류를 안하고, 대화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사회 안에서도 분야마다 조금씩 용어가 다르다. 가능한 단체에서 먼저 치고 나가서 피트백을 받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안덕선 = 이윤성 교수께서는 1990년 후반에 먼저 의사상을 연구한 적이 있다. 앞서서 의사상 연구를 경험하셨기 때문에 특별히 모셨다.

▶이윤성 = 20세기 말에 유행이었다(하하).

당시 영국, 미국, 일본도 하고 다 하는데 왜 우리는 안하냐 해서 부랴부랴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맹광호 교수님께서 맡고 계셨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다. 주로 의학교육을 잘 해서 이상적인 의사상을 갖춘 'Five-star Doctor(오성의사)'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20세기가 넘어가면서 (의사상에 대한 논의가)유행처럼 모든 나라에서 다 거론됐다. 왜 그때 유행했을까 돌이켜보면 의사에 대한 사회의 시각이나 의사 스스로가 느끼는 사회적 책무, 의사 역할이 그 즈음에 전세계적으로 변화했다.

의사의 사회적 지위가 역사적으로 이렇게 높았던 것은 20세기 후반에 항생제를 만들고, X-선 장비가 나오고, 수혈과 응급처치가 이뤄지면서부터다. 그 이전에는 의사를 별다르게 인정하지 않았다. 18∼19세기를 거쳐 20세기 들어 과학이 엄청나게 발달하고 이게 의학에 접목되면서 의사가 하지 못했던 일들을 굉장히 많이 할 수 있게 됐다. 사회가 의사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고, 부와 지위가 따라 붙었다.

의사 수도 적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들어 대부분의 국가에서 적은 의사수를 허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의사들만 알던 지식을 일반사람도 알게 되면서 별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의사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지위도 상대적으로 낮아지기 시작했다.

의사에 대한 내·외부적인 인식과 요구가 달라지면서 새로운 의사상 만들자는 움직임이 붐처럼 일어난 것이다.

이번 좌담회의 주제가 '위기의 의사, 전문직업성 확보를 위한 제언'이다. 의사가 위기라는데 공감한다. 우리는 특별히 심했다. 2000년 의사파업을 비롯해 전국민 의료보험을 하는 과정에서 13년째 싸우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더 큰 위기는 위기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안되어 있다는 것이다. 위기라는 걸 인식해야 거기서 해결책을 찾고 헤쳐나갈 수 있다. 위기가 기회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지금 이 위기 인식이 사람마다 다르고 동기가 될만한 공감대가 없다.

그래서 이 위기를 언제 해결할지, 어떻게 해결할지, 나아가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니 더 위기라는 것이다. 의협신문이 이렇게 특집하면 깨우칠까?(하하)

▶안덕선 = 1%의 사람들이라도 깨우친다면야….

▶이윤성 = 내가 보기에는 좋은 문구는 다 들어가 있다. 하지만 10년 뒤에 누가 이런 작업을 하면서 "과거에 의학교육평가원이 했었지…'라는 식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2000년에 작업했던 의사상과 의사윤리가 그냥 푹 잠겨서 먼지만 쌓이고 있다.

이번에는 잘 만들어서 인식을 공유하고, 확산해서 의사들이 위기 탈출을 하는데 기폭제가 되길 바란다.

그런 점에서 아쉬운 것은 위기를 의식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같은 작업을 해야 한다는 거다. 작은 단체가 아니라 대한의사협회 같은 중앙단체가 중심을 잡고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정말 피터지게 싸우고, 만들어 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첨언하자면 WHO가 만들었던 'Five-star Doctor' 처럼 쉽게 압축하고, 그것을 좀 많이 알릴 수 있게끔 홍보에도 돈을 투자해서 너도나도 쓰도록 해야 한다. 불행히도 지금은 'Five-star Doctor'를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번 작업도 마찬가지가 되지 않길 바란다.

"작은 단체 아니라 대한의사협회 같은 중앙단체가 중심을 잡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정말 피터지게 싸우고, 만들어 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안덕선 = 말씀하신대로 조금 더 큰 단체가 중심이 돼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것을 어떻게 의협과 협력해서 확산시켜 나갈지 숙제다.

예산이 어려운 문제인데 첫해에는 의료정책연구소에 지원을 받았고, 둘째해는 의평원에서 회의비만 받아 진행했다. 이번에 보건복지부에서 보수교육을 하면서 이것을 세부과제로 붙여 하고 있는데 다음부터는 의협 같은 곳에서 적정 예산을 배정해서 잘 완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전문직종 이외에 밖에서 어떻게 의견을 얻을 수 있을까는 것이다. 최소한 이것이 의사들끼리만 모여서 만든 것은 아니라고 봤으면 하는 것이 제 판단이다. 그래서 오늘 좌담회도 중요하다.

▶이윤성 = 의사 아닌 분들까지 참여해도 괜찮겠지만, 제 생각에는 우선 우리의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우리가 이렇게 자성하고, 이런 점들을 지향하고 있다는 목소리를 내면 외부에서 "아, 의사들이 이런 일을 하는구나" 라고 바라볼 수 있다. 그런 후에 외부의 의견이나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안덕선 = 환우회 활동을 하고 있는 윤구현 대표의 의견은 어떤지? 밖에서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윤구현 = 의사라는 전문직은 다른 전문직들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고 본다. 변호사나 판사·건축사·세무사 등 다른 전문직들은 보통사람들이 살면서 평생 한 번도 안 만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의사는 모든 사람들이 여러차례 만나고, 생애 처음과 마지막에는 꼭 만나야 하기 때문에 다른 전문직들과는 다른 위치에 있다고 본다.

만약에 법률가들이 이런 것들을 내부적으로 만든다면 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외부 사람들이 별 관심을 가질 내용도 아니다. 그런데 의사는 항상 국민과 접점에 있기 때문에, 저는 외부의 의견을 듣는 과정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부터 같이 만들 필요는 없더라도, 어느단계부터는 외부에서 참여해 의견을 듣는 것이 의미가 있고, 필요하다고 본다.

▶한재진 = 사회가 변화하면서 이러한 움직임이 계속 일어나고 있고, 필요한 상황이다. 캐나다에서 나온 보고서를 보면 위기라는 표현을 했지만 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좌담회 타이틀을 '위기의 의사'라고 한 것은, '한국의 위기'라는 표현이 더 맞는 듯하다. 이윤성 교수께서 "위기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안돼 있고, 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다"고 하셨는데 굉장히 공감되는 얘기다. 진짜 위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가 좋고, 의료 수준이 높으며, 건강지표가 좋다는 얘기를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진짜 위기냐 아니냐를 놓고 사람마다 판단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년 청년 의사들이 1년에 3000명 이상 나오고, 40대 이하 미래의료를 책임질 의사들이 매우 큰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만나서 얘기해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그렇다. 이것이 진짜 위기인가 하는 것에 대해 반드시 같이 얘기해야 할 것 같다.

'Five-star Doctor'는 매우 좋은 얘기지만, 실제로 이것을 다 하려면 초인적인 의사, 혹은 옛날에 히포크라테스가 말했던 것 이상의 슈퍼닥터 돼야 할 것이라고 느꼈다.

'의사의 역할과 덕목'이 개인의 덕목으로 제시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의사가 사회 속에 있다면 그 사회도 같이 변하고, 의사와 함께 하는 다른 직종 즉 정치권이나 환자도 같이 변화하는 상황에서만 가능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위기라고 느껴 "전문직업성을 확보하겠습니다"고 선언했을 때, 거기에 상응하는 반응들이 의사 직종 밖에서 리액션이 같이 일어나야지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정치가를 비롯해 관료·법률가·환자단체도 투영하고, 교육계도 투영하고 이런 것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야만 사회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지금 같이 모두 얽혀있는 상황에서 의사만이 얘기한다고 해서는 안되며, 다른 직종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안덕선 = 우리가 일단 항목을 정하긴 했는데 항목의 숫자나 이름 같은 것에는 신경을 제대로 못썼다. 우리 나름의 이름을 입히는게 의미있는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데….

▶이윤성 = 너무 컨텐츠만 나열된 형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예를 들어 'Five-star Doctor'는 오성급 호텔 같은 개념이다. 의사도 5성급 의사, 미래의 의사는 5성급이다 해서 5가지 의사상을 열거하는 방식을 썼다.

첫 번째 항목이 의료제공자(care provider)였다. 'cure'가 아니라 'care'다. 단순히 아프면 돌보고 병이 나으면 상관않던 옛날 의사의 개념에서 벗어나 건강할 때는 물론 비록 고치지는 못해도 통증을 완화시켜 준다던지, 그 사람이 삶의 잘 마무리를 하도록 도와준다거나 보살피는 역할을 한다니까, 사실 크게 감동했다.

 

그 다음이 의사결정자(decision-maker)다. 예를 들어 못사는 나라에서 심장에 스텐트를 넣고 심장센터를 만드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런 곳에서는 예방이나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경제가 발전하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최신지견, 최고의 방법을 찾으려고만 했는데 그것이 다가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이 줬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이와 비슷한 작업들이 있었고, 그 안에 좋은 얘기들이 다 있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어떻게 전달하느냐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광고카피 만드는 창작가처럼 아이디어와 디자인이 필요하다.

우리가 위기라는 것은 모두가 인식한다. 걱정하는 것은 서로가 생각하는 위기의 내용이 다르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내 위기는 이런 것인데, 이 위기를 해결하려면 저쪽에 손해가 가더라도 이런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방식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전문직업성을 확립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스스로 확고해지고, 우리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도 달라질 수 있다…사회적이고 거시적인 시각으로 의료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포괄적인 능력이 의사들에게 필요하다"

단체로 물에 빠지면 여럿이 죽게 되는데 서로 붙잡고 늘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다 같이 죽는다는 점을 깨닫고 정말 죽을 각오로 물 속으로 들어가 각자 떠올라야 한다.

윤구현 = 전문직 중에 위기 아닌 곳이 있겠나. 법률가도 지금은 고위 검사나 판사 아니면 특별하게 과거와 같은 지위는 없는 상황이다. 전문직 위기론은 2000년대 들어오면서 일반화된 현상이다. 그 중에 의사라는 직종에서 더 빨리 이런 얘기가 나올 뿐이지 모든 직종이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본다.

▶이윤성 = 변호사가 파업하면 국민 입장에서는 '내가 죄 안지으면 되지' '소송 안하면 되지' 하면 그만이지만 의사가 파업하면 무시할 수가 없다. 의사들이 파업하면 국민은 정말 갑갑해 진다. 들어주자니 말이 안되고, 무시하자니 겁나고 그러니까 짜증이 나 있다. 좀 의연하게 툭 털고 나서지도 못하고 피차 간에 힘이 드는 상황이다.

젊은 의사들을 걱정하는 데 예를 들어 너희들의 수입이 얼마다 하면 거기에 맞춰서 살 수 있다. 그런데 옛날에는 잘 살았다거나 타고난 부자도 아닌데 30대 초반에 외제차를 타는다거나 이렇게 되면 매우 힘들어 진다. "앞으로 너희의 월수는 월 600만원이고, 잘 버는 사람은 월 2억원도 벌겠지만, 그런 사람은 졸업생 3000명 중에 1∼2명 있을까 말까다"라고 하면 그렇게까지 화는 안난다. 예측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환자들도 최선의 진료를 못하네,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네 이런 소리를 계속 해대고 있는데 참 답답한 소리다.

돈 많은 사람이 신라호텔 고급 중국집가서 자장면을 먹는다고 억울할 것은 없다. 그런데 의료는 자장면과 다르다.

의료는 잘못되면 당장 내 자식, 내 몸이 피해를 입는다. 그러면 참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예측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대병원 가면 좋은 의료를 받지만 좀 불친절할 수 있다. 뭐 이런 거다.

윤구현 = 기억에 남는 만화가 있는데, 의사가 자기 연배의 대기업 다니는 친구를 부러워 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한 것이 그 대기업을 다니는 40∼50대들은 어떻게든 자녀를 의대에 보내 의사를 만들려고 한다는 거다. 물론 의사들은 그렇게 생각을 안하는 것 같다.

차이가 뭐냐하면 그 나이대 대기업 중견간부들의 수입은 더 많지만 언제 짤릴 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안정적인 직업 아닌가. 공무원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부러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년까지 일할 수 있으니 부러워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국민이 보기에 의사는 꽤 오랫동안 직업을 유지한다고 생각한다. 수입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오래도록 일할 수 있고, 일자리를 보장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윤성 = 솔직히 고맙습니다 하고 돈 주는 직업이 어디있나.

▶안덕선 = 그래도 수가를 갖고 통제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 그 부분과는 분리해서 얘기할 필요가 있다.

윤구현 = 한국의사와 미국의사를 비교하자면 질적인 차이는 별로 없는데 수입의 차이는 물론 많다. 스웨덴과 인도의 버스기사를 비교해 봐도 그렇다. 인도의 버스기사는 운전 실력도 좋고 오래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고단하면서도 임금은 적다.

스웨덴은 근무시간도 짧은데 임금은 많이 받는다. 임금은 사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아직도 많은 의사들이 임금과 전문성이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이윤성 = 여기엔 이런 문제도 있다. 내 수입이 얼마라야 적정하냐는 공감대가 의사들 사이에는 없다. 내가 얼마나 버는지 모르니 더 불안해지는 것이다. 내가 어느정도 벌고 있는지 비교할 데가 미국밖에 없다.

미국은 전문의 딴지 5년 이상된 사람들이 자신의 정보를 등록하는 웹사이트가 있다. 심혈관 중재술을 하는 전문의가 연봉이 제일 높은데 세금을 떼기 전 금액으로 대개 70만 달러를 받는다. 반면에 가정의나 병리 의사들은 20만 달러를 받는 것으로 나와 있다. 여기에 세금 40%, 법률 보험 15∼20%를 내면 수입이 12만 달러 쯤 된다.

▶안덕선 = 미국은 전공의까지 돈을 대주며 교육을 시킨다.

▶이윤성 = 돈이 없어 치료를 못받는다고 하면 사회가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의료는 어느 정도 사회적이고 공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고, 사회가 뭔가 컨트롤 하려면 규제나 법률만으로는 어렵다. 투자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의사에게 사회가 투자를 하지 않는 곳이 없다. 알아서 의사가 되고, 알아서 개원을 하라는 식이다. 그런 면에서는 사회에서 투자를 하지 않는 곳보다 한국의사가 조금 더 받아야 한다. 투자액 대비 원가대비 개념으로 보자면 유럽은 등록금을 다 대주는 대신에 마음대로 개원을 하지 못한다. 개원도 굉장히 제한되어 있고, 사실 수입도 그렇게 높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못살던 예전에도 등록금 다 내고 공부해야 했고, 전공의로 병원에서 박봉을 받으면서 주당 80시간 이상 일을 해야 했다. 개인이 알아서 비용을 마련해 개원해 먹고 살라는 거였지 국가나 사회가 개입한 적이 없다.

시장경제가 발달한 미국도 클리닉은 거의 민영이지만 병원은 그렇지 않다. 반면 우리는 90%가 민영이다. 복지국가로 가려면 의료에 대해 투자하고 관리해야 한다. 투자는 안하면서 통제만 하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한재진 = 위기는 말씀하신대로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본다. 한국의 젊은 의사들은 자신의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위기라고 인식하고 있다. 돈을 떠나 내가 배운 것을 잘 쓰면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화목하게 살 수 있을지가 불확실하니 위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의사들이 내부적으로 불확실한 가운데서도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자체적으로 정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대한민국 의사의 역할과 덕목'에는 선언적인 내용도 있고, 실천해야 할 내용들이 있다. 의사 내부에서도 전문직업성 항목 가운데 자율규제라는 게 있는데, 이게 자율이 아니라 타율이 되지 않느냐 그런 걱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13년 동안 흘러온 의사와 다른 직역과의 관계를 봤을 때 걱정하고도 남는 일이다. 자정이나 자율 정화를 지금의 사회 상황에서 섣불리 꺼내 놓기도 어렵다. 좋은 얘기라도 드러내기 힘든 분위기도 있다.

하지만 선언적인 것 외에 당연히 실천적인 것도 들어가야 한다. 이것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활용할지 고민해야 하며, 이를 유지·관리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때까지 계속해 나가는 것이 과제라고 본다.

▶안덕선 = 불확실성의 시대와 불확실한 환경일수록 전문직업성을 확립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스스로 확고해지고, 우리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도 달라질 수 있다.

의과학 중심의 사고와 실천능력 만큼이나 사회적이고 거시적인 시각으로 의료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포괄적인 능력이 의사들에게 필요하다. 좋은 이야기 들려주셔서 고맙고,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하다.

의사의 역할과 덕목에 관한 작업은 의협이 존재하는한 계속해서 가다듬고 살아있는 과제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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