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중단 법제화 초안 발표되자 마자...

연명의료중단 법제화 초안 발표되자 마자...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3.11.29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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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공청회서 첫 공개…법률안 "목적부터 중대 모순" 지적
연대 의료법윤리학연구원, 의견수렴 후 최종 보고서 제출키로

16년동안 논의만 진행돼 오면서 구체적인 법률을 만들지 못했던 '연명의료 중단' 관련 법안이 제대로 결실을 맺을수 있을까?

28일 오후 2시 연세대의과대학 대강당에서는 '연명의료 환자결정권 제도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방안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보건복지부 연구용역을 수행한 연세대 의료법윤리학연구원이 마련한 '연명의료결정법(안)' 초안이 처음으로 공개돼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법(안)이 구체적이지 않고, 근본적인 정신과 목적에서부터 중대한 결함과 모순을 갖고 있어 그대로 법제화로 넘겨져서는 안된다는 지적을 받는 등 난타를 당했다.

의학계를 비롯해 법조계·종교계 등 관련 단체들이 심도있게 논의하고,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지난 7월 발표한 권고안을 토대로 만들어진 법안을 보건복지부가 어떻게 법제화까지 이끌어 낼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연세대, "환자 인권 보호를 목적으로 초안 만들었다"
이날 공청회에서 법안 초안을 발표한 이일학 교수(연세의대 의료법윤리학)는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고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법안 초안을 만들었으며, 헌법·민법·대법원 판례등을 충분히 검토했다"고 밝혔다.

또 "현재는 환자 본인의 의사보다 가족가 의료진의 판단이 우선시 되고 있는데, 법안에서는 환자가 명시적으로 표시한 의사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가 발표한 법률안에 따르면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구조로 의료기관 내에 종교계·윤리학계·시민사회단체·외부인사 등 7인 이상으로 구성된 병원윤리위원회를 두고, 이 위원회에서 연명의료결정 관련 의사결정은 물론 의료진 또는 환자가 제기한 자문 해결의 기능을 갖도록 했다.

또 국가의료윤리위원회를 두어 연명의료중단 등의 대상·기준·절차 등에 관한 사항을 다루도록 했는데, 이 위원회를 보건복지부 산하에 둘 것인지, 아니면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산하에 둘 것인지는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법안은 연명의료중단 대상자는 '임종기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 하고, 해당 의료인만 연명의료중단을 이행하도록 했으며, 명시적 의사표시로 사전의료의향서와 환자가 생전에 밝힌 유언도 존중키로 했다. 이밖에 '명시적 의사'나 '의사추정'이 불가능한 '대리결정'의 경우는 병원윤리위원회의 결정을 따르도록 해 병원윤리위원회의 권한을 높였다. 아울러 연명의료결정과 관련된 모든 서류는 10년간 보존을 하도록 했으며, 연명의료관련 수가항목의 신설 필요성도 제안했다.

특히, 이 법안에서 사용되는 모든 용어의 정의(임종기환자·연명의료·담당의사·전문의·연명의료계획서·사전의료의향서)는 국가위원회를 통해 보건복지부장관이 고시하도록 했다.

 
▶연명의료결정법(안), 허술하다는 지적 곳곳에서 나와
그러나 연명의료결정법(안)이 허술하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부각됐다.

먼저 정재우 신부(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는 "법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목적이 많이 희석됐다"고 꼬집었다. 정 신부는 "그동안 연명의료에 대해 제기된 문제의식은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즉 무익하고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하지 말자'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특별위원회가 올린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을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지난 7월말 전혀 새로운 '연명의료의 환자결정권 제도화 권고안'이라는 제목을 붙여 공개하면서 논점이 갑자기 '환자결정권' 쪽으로 넘어가버렸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법안의 첫째 목적은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존엄을 보호하는 것이며, 그런 범위와 한계 안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 돼야 하고, 유익하고 필요한 의료행위와 기본적 돌봄은 마지막 순간까지 제공돼야 한다는 것.

구영모 교수(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는 "국가의료윤리위원회가 보건복지부에 소속될 경우 어떤 모델로 운영될 것인지, 그리고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산하로 될 경우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에 대해 법안은 분명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병원윤리위원회의 결정을 단순한 권고안이 아니라 법적 구속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치료 제공을 거부할 의료인의 권리를 법률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방청객으로 참석한 김중곤 서울의대 교수(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도 "법률안이 처음에 논의된 것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는 말기암환자나 임종기환자가 특수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결정을 하도록 하자는 논의를 했는데, 이번 법안에는 환자 대상이 임종기환자로만 제한돼 있다"고 말했다.

또 "뜬금없이 뇌사자도 연명의료중단 대상자에 포함됐는데, 현행법에서는 장기기증이 전제되지 않는 한 뇌사자는 연명의료중단을 할 수 없다"며 "굉장히 위험한 법안이 법제화 단계까지 가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사전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 시각차 커
이날 공청회에서는 사전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에 대한 시각차도 컸다. 법안에서는 환자의 의사확인 방법으로 사전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명시적 의사'와 '의사추정' 자료로 모두 활용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토론자로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의견을 보였다. 먼저 고신옥 교수(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 전담)는 "사전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는 모두 환자가 의식이 명료할 때 작성하는 문서이므로 동일한 내용을 별도로 작성하기보다는 한번에 작성하도록 통합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안기종 대표(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법안에서는 사전의료의향서와 생전 유언을 명시적 의사표시로서 존중한다고 했는데, 법적인 문서만 명시적 의사표시로 인정을 해야 하며, 의사추정 자료에도 구두 등(생전 유언)은 포함시키면 안된다"고 밝혔다.

이밖에 정재우 신부는 "사전의료의향서는 의사의 의학적 소견이 참작될 여지가 없기 때문에 담당의사와 환자의 대화를 통해 작성된 연명의료계획서가 연명의료 결정을 이행하는 최종 근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중치 못한 법안, 섣불리 법제화 되어서는 안돼
공청회에서는 용어의 정의를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시로 결정한다는 부분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정재우 신부는 "법률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의 정의를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시해 간편하게 변경할 수 있다면, 이것은 법의 존재 이유와 일관성과 안정성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라며 "이 법안이 지닌 중대한 약점 중의 하나"라고 꼬집었다.

따라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법안을 신중치 못하게 법제화 하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근본적인 목적에 벗어난 법률조항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오진희 과장(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은 "16년동안 논의만 진행하다가 처음으로 법안을 만든 것은 의미있는 성과"라며 "법안이 빠른 시일내에 만들어져 환자의 의지에 의해 연명의료가 중단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앞으로 보건복지부는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파악할 것이며, 법안이 법제화가 되기 전에 여러 차례 공청회를 통해 수정·보완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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