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들의 벗되어 세상을 치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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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1.2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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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정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위원

 

한국사회에서 의사라는 신분으로, 노동자의 삶과 투쟁에 뛰어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공유정옥 연구위원은 전문의라는 직함보다는 전문의 자격을 가진, 노동보건 운동가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다.

반올림과 반올림이 하고 있는 활동을 알리기 위해 인터뷰를 위해 짬을 내어준 공유정옥 연구위원은 지금껏 만나본 의사들과는 또다른, 너른 의미의 인술을 펼치느라 동분서주하는 전문의였다.

2007년 3월 스물세 살 나이의 젊은 여성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등학교 3학년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입사한 후 불과 2년만에 마주한 딸의 죽음. 그 죽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 것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의 탄생이었다.

반올림의 활동에는 젊은 여의사가 함께했다. 한국사회에서 성공을 보장하는 '의사'라는 직함을 덜어내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위원으로, 반올림 활동가로 분주하게 달려온 그녀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만났다.

"지금껏 반올림에 연락해온 분들만 208명 정도 되고, 그중 138명이 삼성전자 혹은 삼성 공장에서 일하던 하청 노동자들이에요. 삼성전기·SDI·테크윈 등 삼성계열사와 하이닉스 반도체 혹은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1차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70여 명 정도가 되고요. 58명은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죠.

20대~30대의 젊은 나이에 대부분 암이나 루게릭, 다발성경화증 등의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았습니다. 과연 이것이 우연일까요?"

반올림은 산재가 공식적으로 존재한다고 인정받기 위한, 자존을 위한 싸움을 지속해오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반도체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기를 바라고 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알려진 유해요인에 충분히 노출됐는지'를 따져서 업무관련성을 판단해왔습니다만, 반도체/전자산업처럼 수백 종의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산업에서 생긴 질병은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그 질병이 암일 경우, 일단 암의 원인을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데다가 그나마 알려진 발암물질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이미 몇 년 전의 일이기 때문에 얼마나 많이 노출됐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 어떤 전문가들은 면밀히 따져보지도 않고 '업무관련성이 없다'고 판단을 내려버립니다. 업무관련성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면서 말입니다.

그 결과 병에 걸린 노동자는 아무런 법적인 보상도 받지 못합니다. 신호등을 설치하려면 직접 가서 봐야 합니다. 지도만 봐선 안 되는 것이죠. 현실에서는 지도만 보는 일이 비일비재해요. 누구도 산업현장을 찾아, 산재와의 연관성을 찾아보지 않잖아요. 안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나 형식적인 예방조치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근골격계 질환·철도사 공황장애… 노동권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다

공유정옥 연구위원은 2010년 6월, 미국 공중보건학회 의 '2010 산업안건보건상' 국제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반올림의 활동을 지지하기 위해 준 상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 포상이라기보단 반올림이 받은 상인데, 단체로는 받은 경우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반올림을 알릴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됐지만 마음은 불편했어요."

공유정옥 연구위원이 생각하는 '운동'이란 여러 사람이 함께 이뤄내는 것이다. 세상의 작은 변화들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바뀌게 된다. 10년째 반올림 활동을 하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그렇게 함께 조금이라도 바꿔나가는 것이다.

"직업환경의학, 즉 산업의학을 전공했어요. 현장에서 노동자 건강권을 위해 일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전부터 활동해오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상근으로 활동하게 됐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노동자 건강권 관련 실태 조사나 문제 해결방안 등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테면, 노동자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과 해결책, 지하철 기관사 자살의 조사 및 연구 등으로 현장의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연구가 대부분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교대제 야간 노동에 관한 연구-문제점과 대안을 연구해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노동자 환경과 건강에 대해 화두를 던졌어요. 심야노동을 없애는 흐름에 일조했다고 할 수 있죠."

다른 사람 문제에 대한 연대 필요해

 

반올림의 정체성에 대해 공유정옥 연구위원은 연구, 교육·연대의 세 가지로 정의했다.

노동자 권리를 위한 활동을 하게 되는데, 기본은 연대에요. 저역시 다른 사람 문제에 대한 연대 차원에서 반올림 일을 시작한 겁니다.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의문의 죽음에 대해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고 있으니 다같이 연대해서 나선 것이죠.

초기 2년동안 20명의 제보를 받았고, 지금껏 200명이 넘는 환자들을 찾아냈습니다. 앞으로도 반올림이 함께 연대해서 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에는 대한민국 반도체 직업 관련 반도체 산업의 직업성 암으로 산재 신청을 냈고, 39명 중 3명이 산재를 인정받았다. 2007년 6월 대한민국 반도체 직업성 암 최초의 산재가 인정된 것이다. 불과 3명에 불과하지만, 첫 물꼬를 튼 데 의미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서서히 직업성 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변화하리라 믿는다.

"우리 사회가 소위 선진국이 되려면 비단 경제적 수준뿐만 아니라 일하다가 병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주 더디지만, 제도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고, 사회가 느리지만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중입니다."

몇 년 전 미국 실리콘밸리의 환경오염 사례를 비롯해 미국 동서부·대만·일본 등지에서 문제들이 제기되고 조금씩 풀어나가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국제적인 문제임이 분명하다. 이제는 연구와 법률적인 지원에서부터 생계비 지원에 이르기까지 광의적 차원에서 공론화 시키고자 노력해야 할 때다.

반올림 7년차를 향해가는 공유정옥 연구위원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물론 더 많은 산재를 인정받아야겠지요. 그보다 어려운 산재 인정 절차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또 전자산업에서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노동자들의 권리도 선진화되기를 바라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싶어요. 직업병에 국한되지 않고 노동권에 대해서 말이죠.

국제적으로도 도와야 할 분들이 많아요. 주로 아시아 쪽 노동자들인데, 이들과의 물꼬를 트려는 노력을 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노동권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의사, 환자들 직업 묻고 기록했으면…

공유정옥 연구위원은 직업이 사람의 건강에 많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다른 많은 의사들이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을 남겼다. 노동 조건과 관계없는 질병은 없으니, 1차 보건의료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는지, 몇 시간이나 일하는지만이라도 물어봐주세요. 그런 기록들이 쌓이면 기본적으로 노동자 건강에 대한 상식이 늘어날 것 같아요."

그리고 사회단체에 대한 관심과 후원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했다.

"대다수의 단체들이 열악한 환경이 있는 것이 사실이잖아요. 세상을 바꾸는 것은 작은 움직임이 꾸준히 쌓여서 바뀌는 것이니만큼, 사회단체에 대한 장기적인 측면의 관심과 후원이 필요할 것 같아요. 돈 있는 사람은 돈을 내주고, 시간 있는 사람은 시간을 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큰 고민 없이 보내고 의대생이 된 공유정옥 연구위원. 대학시절 무료 진료소 활동을 나가면서 상계동 철거민들을 처음 만났고,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산업의학을 전공하게 됐다.

졸업을 앞두고 의약분업을 겪으면서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의사 사회의 닫힌 모습을 보게 됐고, 산업의학 전문의로서 사람들과 관계 맺는 삶을 선택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보통의 의사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힘없는 노동자들의 편에서 손 내밀고 사회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온 까닭일까. 공유정옥 연구위원의 웃음이 더없이 따뜻하고 화사하다.

글·정지선 보령제약 사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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