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안중에 없이 의료사고 유무 판단을 행정부에 맡겨
노인요양병원협회 "이중삼중 규제로 요양병원 망하라는 법" 유감 표명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가 민주당 오제세 의원이 1월 17일 대표발의한 '환자안전 및 의료질향상에 관한 법률제정안'에 이어 1월 28일 새누리당 신경림 의원이 대표발의한 '환자안전 및 의료 질 향상법안'에 대해 "환자 안전과 의료질 향상보다는 병원을 가혹하게 규제하는데 초점을 맞춘 법안"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 윤해영 회장과 박용우 부회장·배진환 상근부회장·조항석 보험이사·우봉식 홍보이사·이상운 의무이사는 4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연 자리에서 "의료사고와 안전사건에 관한 내용은 이미 의료법과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등에 관한 법률 등을 통해 시행되고 있음에도 이것으로도 모자라 이중삼중으로 환자안전법을 제정하려는 것은 병원을 가혹하게 옥죄는 규제"라고 반발했다.
윤해영 회장은 "요양병원에는 주로 병상에 누워 거동이 어려운 노인환자와 말기 환자들이 대부분이고, 병원감염이나 잘못된 의약품 투약을 비롯한 위해 사고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며 "환자안전법 제정의 배경이 된 주사제 투약 사고의 경우 일주일에 100시간에 달할 정도로 가혹한 근무를 감당해야 했던 전공의의 피로 누적으로 인해 발생한 의료사고"라고 지적했다. 윤 회장은 "의료사고의 대부분이 종합병원급 이상에서 발생하고 있음에도 실제 환자안전법에서는 주로 요양병원을 규제하고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재벌의 횡포를 바로잡겠다고 만든 법안이 중소상인을 잡는 악법으로 변질된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박용우 부회장은 "전담인력을 두지 않거나 인증을 받지 않았다고 개설허가를 취소하거나 의료기관 폐쇄를 명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너무나 가혹한 규제"라며 "자율적으로 시행해야 할 인증제가 법률로 강제화되면서 본래 취지를 훼손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윤해영 회장은 "세계의 인증제도는 자율인증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인증을 받지 않으면 퇴출시키는 강제인증"이라며 "의료기관인증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때는 인증·조건부인증·불인증으로 등급을 분류했으나 현재는 1∼5등급까지 나누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1등에서 1200등까지 줄을 세워 800등 이하는 없애는 것으로 제도 도입의 취지와 내용이 변질되면서 의료공급자들로부터 신뢰성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회장은 "여기에 환자안전법 제정을 빌미로 인증을 강제화하고, 의료법 관련 조항을 삭제해 가면서까지 인증원을 지원하도록 규정한 것은 인증원 지위 강화법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오제세 의원이 대표발의한 환자안전법의 경우 위해와 중대한 침해에 대한 판단을 사법부가 아닌 행정을 집행하는 보건복지부가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이는 사법부를 무시하고, 권력분립의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환자안전 전담인력(오제세 의원안)과 환자안전질향상위원회 전담부서 구성·운영(신경림 의원안)에 필요한 예산을 부담하는 문제도 거론됐다.
조항석 노인요양병원협회 보험이사는 "전담인력을 두고 있는 의료기관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다거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의 환자안전 및 질 향상 활동을 위해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선언적인 조항만으로는 지원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면서 "전담인력을 채용하지 않았거나 인증을 받지 않았다고 5000만원 이하의 과징금과 과태료 및 벌금은 물론 아예 병원 문을 폐쇄하도록 규정한 것은 너무나 과도한 규제"라고 지적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추계한 환자안전법(오제세 의원안) 시행에 따른 재정 규모는 2015년 시행 첫 해 12억 7600만원으며, 향후 5년 동안 25억 2700만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가장 많은 예산이 필요한 환자안전 전담인력과 전담부서 신설에 대해서는 대상 병원을 비롯해 배치기준·전담인력 자격기준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용추계를 하지 않았다.
2013년 현재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상급종합병원 43곳, 종합병원 282곳, 병원 1438곳, 요양병원 1206곳, 치과병원 205곳, 한방병원 209곳 등 3383곳에 달한다. 요양병원·치과병원·한방병원을 제외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이 전담인력을 채용할 경우 한 해 528억원(1인당 연봉 3000만원 기준) 규모이며, 모든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을 기준으로 하면 한 해 1014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전담부서까지 운영하게 되면 필요한 예산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요양병원협회는 "가뜩이나 수가가 낮아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규모가 작은 지역 중소병원과 요양병원에서 정부 지원없이 전담인력이나 전담부서 설치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며 "강제적으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인증도 받아야 하고, 전담인력을 의무적으로 채용하도록 하는 법안은 요양병원의 명운이 달려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병원계에서도 환자안전법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모 지방대학병원 교수는 "의료사고로 인한 처분은 의료법과 무관하게 대부분 민·형사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자율보고를 하면 처분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듯이 자율보고의 결과에 따르는 항목은 삭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의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렵고, 중대한 과실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자율보고가 오히려 소송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밝힌 이 교수는 "이같은 미비한 조항이 보고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봉식 요양병원협회 홍보이사는 "다시는 '종현이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환자안전을 위한 제대로된 제도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와 의료계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지한 토론의 장을 만들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