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전공의는 사회자산...왜 병원만 비용부담하나"

[기획] "전공의는 사회자산...왜 병원만 비용부담하나"

  • 송성철·이은빈 기자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4.08.2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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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전공의 수련비용 수련병원 전적 의존…고질적 악순환
의료계 "지도전문의 인건비·운영비 등 국가가 지원 나서야"

전공의들은 고달프다. 이 땅에 수련제도가 태동한 5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졸린 눈과 미처 감지 못한 머리로 병원에 상주하다시피하며 의료현장을 지키는 인턴과 전공의들은 온몸으로 피로를 호소한다. 주 5일제와 주당 40시간 근무가 보편화된 시대에 역행하는 그들이 보다 인간적인 삶을 살면서 수련병원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의협신문>은 최근 의료정책연구소에서 발간한 '전공의 수련 및 근로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수련환경 개선 추이와 전망을 살폈다. 

[기획 상]주당 100시간 근무하는 '철(鐵)의 전공의들' 28%

[중]"값 싼 근로자 아닌 국민건강 책임질 주치의" 인식 전환부터

[하]전공의 수련비용은 의료공공성 강화 비용…정부 지원 나서야

▲ ⓒ의협신문 김선경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안' 시행으로 수련병원들의 추가 비용 부담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세브란스병원이 개정안을 토대로 추가 당직비용를 계산한 결과, 원내 기준으로 3억원을,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경우 44억 8500원을 추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정했다. 대체인력 인건비는 23억 7400만원이 더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국 수련병원 268곳(232개 병원+36개 기관)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추가 부담도 문제지만 대체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최진섭 세브란스병원 교육수련부장은 "우수하게 수련된 전공의는 훌륭한 사회자산이므로 그 육성에 대한 공공적 성격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현재의 저수가 의료정책이나 전공의 수련구조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과 함께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병원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는 배경에는 의료이용 증가율이 둔화되면서 의료수입 보다 지출이 더 많은 적자구조 전환이라는 위기가 작용하고 있다.

저보험료·저수가·저급여 정책이 계속되면서 병원 폐업률은 2011년 4.4%에서 2012년 8.4%로 크게 늘었다. 여기에 영상수가 인하·포괄수가제 시행에 이어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과 3대 비급여의 급여화 등 의료공급자를 쥐어짜는 정책이 잇따르면서 병원계 역시 벼랑 끝에 서 있는 동네의원의 전철을 밟고 있다.

대한의학회 관계자는 "전공의는 의료발전과 미래의 의료를 책임질 중요한 인력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경쟁력 있고, 전문성을 갖춘 의료인력으로 양성해야 한다"며 "현행 전공의 수련비용을 전액 혹은 일부를 국가에서 지원하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전적으로 해당 병원에서 부담하고 있어 전공의 수련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은 전공의 월급의 70%를 정부가 지원하고 있고, 민간 비영리기관인 미국전공의교육신임평가위원회(ACGME)가 전공의 수련교육프로그램을 담당케 하면서 자율성을 부여하고 있다.

영국은 의료서비스를 국방·경찰 등과 같이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공서비스로 규정하고 국가가 지원하는 병원 예산으로 전액 부담하고 있다.

▲ ⓒ의협신문 김선경
캐나다 역시 전공의 임금은 보건부가, 지도 전문의 인건비는 교육부가 지원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도 국가가 재정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

병원신임위원회 관계자는 "환자들은 병원에서 의사들로부터 충분한 설명과 진료시간을 갖길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오랜 진료대기와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하는 것은 의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인 만큼 국민에게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대해 설명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수련병원은 수련·교육·연구 기능을 수행하는 중추적인 병원인만큼 진료를 위한 공간이나 장비 외에도 수련과 연구를 위한 별도의 시설에 대해 투자가 필요하다"며 "수련교육에 필요한 전공의·지도전문의·수련교육부의 인건비·운영비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성인 대전협 회장(연세의대 예방의학과) 또한 "전공의 수련에 대한 국가 지원이 되지 않으면 돌고 돌아 수련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전공의 수련비용 지원에 대한 대국민 인식 변화를 위해서는 보건복지부도 같이 노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공의 수련교육, 의료 질 향상 위한 공공영역…정부 지원 필요

이러한 가운데 지난해 밀린 수당을 지급하라며 인턴의 손을 들어준 대전지방법원 판결은 병원계에 큰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10개월간 인턴으로 근무한 최아무개씨가 K대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밀린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을 3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한 것이다. 

현재 재판은 병원측의 항소로 대전고등법원 항소심을 앞두고 있다. 법원은 당초 8월 13일 선고를 못 박았으나 이를 연기해 내달 변론이 재개될 예정이다. 판결 결과에 따라 전국 수련병원들이 전공의들에게 지급하지 않았던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을 소급해 지불해 달라는 줄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전공의 신분이 교육생인가 근로자인가를 놓고 벌어진 이번 법정 공방에서 병원이 승소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최씨가 해당 병원 이사장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소한 형사사건에서 대법원이 100만원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해 유죄가 확정됐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수련의도 근무시간 동안 환자의 생명·신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진료 및 치료행위를 하게 되므로, 적절한 휴식을 통해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한 상태에서 근무를 할 필요성이 다른 근로자에 비해 오히려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대법원이 1991년 "전문의시험 자격취득을 위한 필수적인 수련과정으로 대학병원에 근로를 제공한 수련의의 지위는 병원측의 지휘감독아래 노무를 제공함으로써 실질적인 사용종속관계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원고(전공의)는 근로기준법 제14조에 정한 근로자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는 판결을 내린 것과 맥락이 닿는다.

이후 법원은 "전공의는 병원경영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줄곧 유지하고 있다.

전공의는 더 이상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교육생이 아닌 법적으로 근로자이자, 장차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미래의 주치의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수련병원들은 지금부터라도 근로와 복지 후생에 관한 규정을 명확히 하고, 근로계약서를 체결해 전공의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성인 회장은 "제대로 수당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전공의들이 바라는 건 현실에서 좀 더 나은 만족감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 '전공의=근로자' 판결 "병원들도 인식 전환해야"

▲ ⓒ의협신문 김선경
전공의 수련 및 근로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의료현장에서는 고년차가 저년차의 업무를 분담케 하거나 진료보조인력(PA)을 늘리는 또 다른 편법과 돌려막기가 횡행하고 있다.

국내 활동 PA 숫자는 2005년 253명에서 2009년 968명, 2011년 2125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PA의 절반 가까운 49.7%가 현행 의료법을 위반한 채 침습적인 의료행위를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PA 고용에 대해 최낙훈 서울 관악구의사회장은 "일부 수련병원에서 전공의와 펠로우를 저임금으로 혹사시키는가 하면 PA에게 의사의 업무를 맡기고 있다"며 "PA 고용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환자에게 불신감을 심어주는 중대 범죄행위"라고 비판했다.

최 회장은 "수련을 받아 충분한 자질과 능력을 갖춘 우수한 전문의가 충분히 남아돌아가고 있다"며 "이들을 채용해 병원을 운영한다면 환자들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과도한 업무로 인해 적정한 교육수련을 받지 못하다 보니 전공의 과정을 마친 후 전임의 과정을 밟을 수 밖에 없는 새로운 형태의 수련 연장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공의 수련 및 근로환경 실태조사'를 수행한 연구팀은 "수련교육과정에 대한 정비를 통해 연차별 적정수련 기준을 세움으로써 수련을 질을 높여 나가야 한다"며 "전공의 업무 공백을 해소하고, 업무를 대체해 줄 수 있도록 봉직의사의 고용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의료법 시행규칙에는 병원과 의원급 의료기관이 동일하게 연평균 1일 입원환자수를 20으로 나눈 수에 맞춰 의사인력을 고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병상이 급증한 상급종합병원의 의사 정원 기준을 상향 조정하고, 외과나 산부인과 등의 전문과목의 의사인력을 확보하도록 새로운 병원의사 인력 기준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새로운 의사인력 기준의 도입을 통해 병원 봉직의 고용을 창출하고, 이들이 전공의 대체인력으로 활용하면 전임의제도의 본래 목적에 집중할 수 있고, 개원가 의료인력의 효율적 분배와 고질적인 기피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전공의 수련과정이 가혹하다는 해묵은 문제의식에서 나아가, 이해 당사자가 머리를 맞대어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신현영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는 "모든 사람이 전공의 수련환경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정부와 병원, 전공의 당사자들도 알고 있지 않느냐"며 "(정부가) 무조건 개선안을 따르라고 병원에 떠미는 것은 당연히 잘 이뤄질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신 이사는 "명확한 대안을 마련하고 제도를 시행해야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정부와 의협, 전공의 단체 등과의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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