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모순 해법은 의료정치 지배구조 개혁"

"의료 모순 해법은 의료정치 지배구조 개혁"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4.10.09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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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교수 "고급 의료지식 최저가에 팔리는 현실"
의료정책 설계-실행 과정서 의료단체 영향력 키워야

 

▲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8일 의협회관에서 열린 '의협 발전모색을 위한 연속 토론회'에서 '한국의료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현재 우리나라에는 2000년 의약분업 이후 보건의료 관련 쟁점과 현안들이 해결되지 못한채 누적돼 오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정치의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8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주최로 열린 '의협 발전모색을 위한 연속토론 제3차 토론회: 의료계 고립과 위기 돌파를 위한 진단과 대응' 주제 토론회에서,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한국 의료의 현실에 대한 진단과 대응방안을 이 같이 제시했다.

우선 송 교수는 2000년 의약분업 사태를 기점으로 의료계가 양극화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이는 동네의원의 황폐화와 대형병원의 영리화, 그리고 의사직업의 노동계급화를 낳아 한국의료의 생태계가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급여율 비중을 살펴면 동네의원은 2001년 43.1%에서 2011년 21.6%로 반토막 난데 비해 병원급은 29.9%에서 45.7%로 급증했다. 2012년 한 해 동안 의원급 의료기관 3400여곳이 폐업한 것은 동네의원의 몰락을 여실히 보여주는 지표라는 것이다.

송 교수는 "변호사 소송의뢰 비용이 보통 300만원부터 시작하는데, 개원의가 이 돈을 벌려면 감기 환자 수백명을 진료해야 한다"면서 "의사의 고급 전문지식이 최저가에 팔리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개업의는 경영자이자 전문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가격환경의 불변하는 환경 속에서 환자수를 늘려야 적자를 면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대학병원 등 대형병원들도 의과학연구와 첨단기술 개발, 의료인력 배양, 대형병원간 출혈경쟁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면서 "국민은 국민대로 의료수요의 급증으로 인한 의료비지출 증가의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약분업 이후 한국의료체제의 모순은 유지 존속되고 있으나, 정권은 복지공약을 남발하고 있을 뿐이며, 이 같은 모순을 의료계가 내부에서 소화해야 하는 현실이다. 우리나라 의료야 말로 비정상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모순의 출발...'사적자본에 공적규제'

▲ ⓒ의협신문 김선경

한국 의료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모순은 사적자본에 대해 공적규제가 이뤄지는데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사회주의 의료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에서조차 전체 의료기관의 약 10%는 보험에서 완전히 제외된 영리병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숨통을 트여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의료정치의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것을 모순된 의료구조의 해결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영국의 경우 의료정책을 총괄하는 원로 의사가 수상에게 직접 의료관련 조언을 수행하고, 정부의 의료정책 추진에 '왕립교수의료협회'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의사집단의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시민단체는 들어올 여지가 없다는 설명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정책을 수립하는 사령탑이 없으며, 의협 등 의사집단의 참여가 취약해 정권이 바뀜에 따라 의료정책이 수시로 변화하고, 시민단체가 정부에 동원돼 의료계와 정면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우리나라의 의료정치 지배구조 개혁 방안으로 청와대 수석 중 '건강의료수석'을 신설해 주치의가 정책자문을 함께 수행해야 하며, 보건복지부가 정책을 실행하는 단계에 의협과 교수·봉직의가 실질적이고 독자적인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의료관련기관 연합체 구성, 의사의 의협 가입 의무화, 대정부 정책건의 창구 일원화, 현안 쟁점의 이해를 돕는 매체활용, 드라마 문학 영화 등을 통한 의사 이미지 업그레이드를 통해 의료계의 사회적 고립구조를 탈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사단체의 나아갈 방향은?

▲ ⓒ의협신문 김선경

이날 토론자로 나선 의료계 인사들도 의료계가 처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제시했다.
신현길 충청남도의사회 부회장은 의사단체 운영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책에만 치중할게 아니라 대국민 봉사와 홍보 파트의 강화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또 의사 연수교육을 단순한 평점 취득 과정에 그치지 말고 대형사고, 전염병 창궐 등 국가적 문제에 대비한 의사의 역할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내용을 개선하고, 각 병원에서 기부하는 사회기부금을 의사회를 통해 통합, 지정기부함으로써 의사들의 사회참여를 일반에 적극 알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 상황에서 의사단체가 갖춰야 할 구체적인 과제도 제시됐다. 박형욱 대한의학회 법제이사는 △언론의 관심을 유도하면서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는 의사소통능력은 있는가 △의료전문가로서의 일치된, 권위 있는 의학적 의견을 생산하고 유통시킬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가 △미시적 의료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이를 한국 사회의 미래와 통합해 내는 거대 담론은 마련되어 있는가 등 세가지 측면에서 의사집단이 고민하고, 정치권과 국민과 소통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의사단체의 존립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주현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는 "의협에 대한 신뢰도가 점차 하락하면서 붕괴 가능성까지 있다. 회비를 납부하는 진성회원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지역의사회에 대한 냉소적 시선, 공급자 대표 단체로서 위상도 약화돼 있다"며 "의협이 정부와 시장, 국민과 회원 사이에서 강력한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의협신문 김선경

김원중 대한개원의협의회 기획이사는 의료수가 현실화와 왜곡된 의료전달체계 개선, 국민의 의사에 대한 인식전환을 주된 과제로 꼽았다. 김 이사는 "전문의 수련을 마친 의사들의 사회 진출이 막혀 있다. 전문의 딴 내과의사가 지방요양병원에 신규 취직하는 현실"이라며 "여러가지 제도 개선과 함께 의사들 역시 사회 환원에 적극 나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의협이 정치적 영향력 강화에 노력하기 보다 일차의료에 가해지는 부조리한 구조를 상대로 법적투쟁에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김장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대외담당 부회장은 "사업가들에게는 세무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데, 의료계는 세무보다 공단, 심평원이 더 무섭다. 개원의를 부조리하게 억압하는 부분들에 대한 법정투쟁이 중요하다"며 "의협이 대회원 서비스를 통해 밑바닥 부터 헤쳐나가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가현실화, 만능 답안 될 수 없어"

수가 문제에 집중해왔던 의협의 정책 기조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윤 서울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저수가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패러다임에서 의료계가 벗어나야 한다. 수가가 오른다고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면서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 의원과 중소병원, 대형병원간에 칸막이를 치고 일차의료기관은 대형병원이 제공하지 못하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인석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도 "행위별수가는 무조건 지켜야 한다든지, 그동안 금기시됐던 지불제도 방식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수가가 아니라 배분"이라며 "건보재정의 규모가 정해져 있다면, 이에 대한 배분의 문제에 의료계 스스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 최재욱 의료정책연구소장, 추무진 의협 회장(사진 오른쪽부터). ⓒ의협신문 김선경

토론회를 주최한 최재욱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사회환경의 급속한 변화와 의료제도의 모순으로 인해, 의협의 위상과 영향력이 퇴보되고, 심지어 회원으로부터 외면받고 사회적으로도 고립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면서 "가장 큰 문제는 의료계가 현안과제에 매몰돼 문제의식과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객석에서 토론회를 끝까지 참관한 추무진 의협 회장은 "의협이 의학회·시도의사회·개원의사회·의료정책연구소·교수협의회 등과 함께 내부에서 함께 논의하고 외부를 향해서는 한 목소리 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한걸음씩 나아갈 때 국민 신뢰받는 의협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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