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관찰력과 추리력, 셜록 홈즈와 함께 한 여름

청진기 관찰력과 추리력, 셜록 홈즈와 함께 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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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0.2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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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수(연세이비인후과 의원)

▲ 홍성수(연세이비인후과 의원)

매년 여름, 하한기(夏閑期)에는 흥미진진하며 빨리 읽히고 크게 부담이 없는 추리소설을 주로 읽는다. 마츠모토 세이쵸, 미야베 미유키,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 등 일본 작가의 책이 훨씬 재미있기는 하다. 이번 여름에는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어린이용 축약본이 아닌 제대로 된 셜록 홈즈 시리즈를 다시 읽었다.

본인이 의사였던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한 빅토리아 시대, 산업혁명으로 갑자기 비대해진 암울한 대도시 런던을 무대로 하는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 콤비는 탐정의 원형으로 이후 다른 소설이나 영화, 그리고 티브이 드라마에서 무한 반복, 변형됐다.

코난 도일이 탐정 소설을 쓰게 된 것은 늘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과 개업 의사로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도 한다. 범죄(질병)라는 사회적 병리현상을 다루며 범인(병원균)이 범죄를 감행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배경·과정·해결에 대한 접근 방식은 근대 의학의 실증주의적, 과학적 접근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셜록 홈즈의 활약을 곁에서 관찰하고 정리하고 집필하는 의사 왓슨이란 인물이야 당연히 작가의 분신인데 18세기의 임상기술의학(記述, bedside descriptive medicine) 전통과 맥을 잇고 있다.

의사는 흔히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력, 신속한 판단, 진정한 용기, 그리고 거침없는 조치를 취하는 전쟁터의 군인이나 사소한 세부사항 어느 하나 소홀하지 않는 치밀함과 과학적 엄밀성으로 끝까지 범죄의 인과관계를 파헤치는 유능한 탐정에 비유된다.

전쟁은 전쟁터에서의 적군과 아군, 범죄는 사회에서의 범인과 탐정, 그리고 치료란 환자의 몸과 마음의 질병과 의사의 싸움이다. 그래서 많은 전쟁 용어가 임상의학에 차용돼 비유와 은유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는 정작 의사의 능력과 상관없이 세상이 의사들에게 간절하게 기대하는 희망사항일 지 모른다, 현실에서는 그런 군인, 그런 탐정, 그런 의사가 극히 드물지만.

세심한 관찰력. 매 에피소드마다 주인공 홈즈와 등장인물들에 대한 인상 묘사를 읽어보면 당시 유행하던 우생학의 한 분야인 골상학에 근거해 외모는 물론 태도와 심리상태까지 간결하지만 세밀한데, 사건의 해답은 항상 현장 상황(crime scene)과 관련 등장인물을 통해 찾아낼 수 있다는 신념이 느껴진다.

진료실에 들어서는 환자의 표정과 태도을 보고, 자신의 증상에 대한 표현만 들어 봐도 최소한 질병이 급-만성, 중-경증인지 가늠이 되고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핵심인지 아니면 잡다한 불편인지 변별이 된다. 이어서 신체적 검사(physical examination)는 현장 검증과 매 한가지일 것이다.

실증적 추리력.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symptoms)과 신체적 검사에서 발견되는 소견(signs and findings)으로 가능성이 높거나 고려해봐야 할 질병들의 가설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의학적-과학적 인과관계를 추론해 나아가면서 최종 진단(final diagnosis)으로 접근해 간다.

대부분의 진단은 이 정도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고려 대상에서 제외해야 할 의심 질병(rule-out)이 있거나, 의사의 자기 보호나 심지어 환자의 강력한 요구 등으로 검사(diagnostic and laboratory studies)를 해 확인하게 될 것이다.

셜록 홈즈처럼 척 보면 아는 의사가 있을까? 나는 있다고 믿는다. 의사라면 다 척 보면 알아야 할까? 그건 아니다. 알아도 모르는 척,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 의사의 본분이리라.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진단명에 해당 되는 표준 치료를 하면서 치료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이 즈음에서 의사는 환자에게 치료 결과에 대한 예후(prognosis)까지 언급할 수 있다.

구환은 그렇다 치고 최소한 환자와의 첫 대면에서 관찰력과 추리력을 발휘해 진단과 치료 계획을 수립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소요될까? 3분? 절대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검사가 남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설적인 소설적 허구, 셜록 홈즈 수준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대부분 임상의사들의 기적적인 탁월함은 아마 그 짧은 진료 시간에 그 많은 환자들의 진단과 치료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가히 세계적이고 독보적이다.

대한민국의 의료를 전세계가 부러워한다면, 국가 위상에 훨씬 못 미치는 보험재정에도 보건복지부가 쏟아내는 이런 저런 정책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건강보험 제도의 관리 시스템이 아니라, 그런 제도 하에서도 대다수 의사들이 국민 건강을 무리 없이 책임지고 완수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다만 그 속이 얼마나 골았는지, 미래에도 지속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절망적이지만.

2014년 4월 16일 이후, 선진국, 선진국 대열, 선진국 문턱이란 소리는 이제 그만 했으면 싶다. 정치와 행정에서만 그 나라 수준에 맞는 정치가나 관료의 무능과 횡포를 참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도 그 국가와 사회와 국민이 합의하고 투자한 만큼의 품질과 혜택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심지어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도 머리 속은 온통 의료 현실에 대한 한탄과 걱정뿐이라 오롯이 기발하고 박진감 넘치는 추리의 묘미에 흠뻑 빠져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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