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의심환자, 기자가 직접 겪어 보니...

메르스 의심환자, 기자가 직접 겪어 보니...

  • 최원석 기자 cws07@doctorsnews.co.kr
  • 승인 2015.06.1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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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퇴근길에 기침이 났다. 메르스 의심증상이라는 근육통도 있는 듯 했다. 이마를 만져보니 따뜻했다. 집 근처 보건소에 가서 열이나 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7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보건소에는 직원들이 퇴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체온을 재 보니 37.9도.

의사는 기자에게 중동다녀온 적 있냐고 물었다. 중동에는 다녀온 적 없지만 1일 취재차 평택성모병원에 갔었다고 답했다.

보건소가 발칵 뒤집혔다. 보건소 직원 전원이 N95마스크를 착용했다. 물론 기자도 착용했다. 아직 최대 잠복기인 2주가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30분 후 체온을 다시 재 봤지만 그대로였다.

의사는 근처 상급종합병원에 가서 메르스 검사를 해보는게 좋겠다고 했다. 보건소 구급차를 타고 20분 거리 종합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검사 받을 수 없었다. 격리시설이 없어 접촉력이 있는 의심환자를 케어할 수 없다고 했다.

종합병원 의사는 메르스 지역거점병원인 도립의료원으로 가볼 것을 권했다. 구급차에서 나가보지도 못한 채 도립의료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30분 거리의 도립의료원으로 향하며 불안감이 치솟았다. 확진이라도 된다면 주변사람들이 모두 격리조치될 판이었다.

동행한 보건소 직원은 가는 길에 도립의료원에 연락을 취했다. 도립의료원에서는 병원 내로 들어오지 말고 밖에서 대기해달라고 했다.

1시간여를 기다렸다. N95마스크가 숨통을 조여오는 듯 했다. 그러나 끝내 검사를 받지 못했다. 도립의료원에서는 현재로서는 음압병상이 꽉 차있어 더이상 격리할 시설이 없다고 했다. 또한 도립의료원은 의심환자를 검사하는 곳이 아니라 확진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도립의료원 의료진은 일단 자택 격리를 한 뒤 내일 상황을 지켜보자고 답했다. 그런데 이날은 시골에서 올라오신 90세 할머니가 집에 와계신 날이었다. 노인들에 치명적이라는 메르스였기 때문에 걱정이 더했다.

기자는 "의심환자 치료는 도대체 어디서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도립의료원은 확진환자만 치료하는 곳'이라는 것 뿐이었다. 들렀던 종합병원에서 검체검사를 하고 확진을 받으면 와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도립의료원에 들어가보지도 못했다.

의심환자로서 검사조차 받을 곳이 없었다. 이대로 자택격리된다면 가족들은 어찌하는가. 만약 진짜 메르스라면 조기에 발견하고도 가족들에게 옮기는 꼴이 된다. 막막한 상황에서 체온계가 눈에 보였다.

체온을 재 보니 36.5도. 지극히 정상 체온이었다. 보건소 직원은 우선 보건소로 돌아가서 다른 체온계로 다시 재 볼 것을 권했다. 보건소로 돌아와 여러 종류의 체온계로 체온을 재 봤다. 모두 정상. 보건소에서는 자택에서 격리한 후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N95마스크와 손세정제, 자가격리 생활수칙서 등을 챙겨줬다. 타이레놀도 처방해 주었다.

다음날 체온은 계속 정상이었다. 보건소에서는 수시로 전화를 해 상태를 물었다. 메르스 의심증세는 이렇게 끝났다.

이번 일을 겪으며 정부의 감염병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다. 상급종합병원에서는 격리시설이 없으니 접촉력이 있는 환자를 받을 수 없었고, 도립의료원은 병상이 없어 의심환자를 격리하지 못해 자택으로 돌려보냈다.

기자가 만약 진짜 메르스 감염자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확진된 메르스 감염자들도 이런 상황을 겪진 않았을까. 정부의 감염병에 대한 사전적 투자와 적극적인 대처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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