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2시간 업무와 한달 20여일의 당직은 견딜 수 있었지만 의사라는 자긍심이 산산히 부서지는 것은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19일 파업을 철회한 적십자 병원 전공의협의회 홍보담당 변성환(일반외과 4년)씨는 7일 동안의 파업기간내 느꼈던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이번 적십자병원 전공의 파업사태는 표면적으로 경영악화에 있는 병원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어난 일련의 노사 마찰로 보는 면도 있다.
하지만 적십자사의 지원아래 인도주의 실천과 봉사를 기본 이념으로 연고없는 일반 행려환자의 치료도 담당하는 공공 요양기관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최근 조치는 의료의 공익성과 수익성과 저울질하는 우리나라 의료보건 정책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란 지적이다.
적십자병원이 급격하게 적자로 치달은 것은 최근 3~4년 전으로 병원의 200억 부채 중 절반에 이르는 100억이 이 시기에 발생했다고 병원관계자는 밝히고 있다.
적십자사의 지원과 자체 수익으로 운영되는 병원의 1년 예산이 302억인 것을 감안하면 매해 30억씩 발생하는 적자는 병원운영을 어렵게 만들었고 병원운영을 수익사업의 일환으로 인식하는 적십자사는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경영합리화를 단행했다.
이로 인해 취해진 스탭들의 연봉제 계약과정과 실적에 의한 4등급 분류 과정에서 나타난 일방적인 통보와 명확한 기준없는 등급분류로 인해 마취과와 해부병리학 과장을 포함 7명이 사표를 쓰는 파행으로 적십자병원의 정상적인 병원 수술업무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공의들 역시 갑작스런 병원의 행정조치에 전문의 시험을 포함, 수련과정에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정형외과의 경우 3명의 스탭 중 2명이 그만 둬 전공의 3명은 최악의 경우 전문의 시험을 보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마이너과 폐지가 거론되는 가운데 새로운 인원을 충원받지 못해 업무의 분담이 이뤄지지 않아 전공의 2, 3년차들의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파행과정에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것은 의사라는 자긍심이란 지적이 높다.
"적십자 병원에서 뼈를 묻겠다는 생각으로 봉직하던 스승이 갑작스럽게 연봉 2천만원을 제시 받거나, 최하 등급으로 낙인찍혀 사직하는 것을 지켜보는 우리들은 의사의 자긍심이 저런 것이 었나 하는 회의가 든다"라고 토로하는 한 전공의 고백이 씁쓸함을 느끼는 것은 의약분업을 맞은 의사들의 그것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