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벨' 확대 요구, 의약품 허가제도 흔들까?

'오프라벨' 확대 요구, 의약품 허가제도 흔들까?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17.10.28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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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오프라벨 요구하지만 허용 정도는 인색
허가초과 사용 제도개선 협의체 난항 겪는 듯

환자단체들이 면역항암제가 급여된 지난 8월 오프라벨 허용을 촉구하는 시위를 심평원 앞에서 벌였다.
의약품 허가 외 사용을 의미하는 '오프라벨(Off Label)' 처방을 지금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환자단체와 의료계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제도 개선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의약품 허가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정부의 우려 탓에 개선책이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환연)는 산하 8개 단체 이름으로 된 성명서를 통해 "허가초과 약제 사용의 공감대를 제도로 만들어 환자의 수진권과 의사의 진료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27일 주장했다.

정부가 지난 9월 28일 구성한 '약제의 허가초과사용 제도개선 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는 환연이 별도의 성명서를 통해 허가초과 사용확대를 주장하자 협의체 논의가 난항을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의약품의 허가초과 사용이 최근 주목받는 계기는 지난 8월 비소세포폐암에 대해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와 '옵디보'가 급여되면서부터다. 키트루다와 옵디보가 급여결정된 것은 면역항암제를 쓰고싶어하는 환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지만 일은 엉뚱한데서 터졌다.

한국의 급여시스템상 특정 의약품의 급여가 결정되면 그때부터는 급여 이외의 적응증은 '비급여'로 관리된다. 문제는 적응증조차도 얻지 못한 경우 아예 약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

미국이나 유럽이 면역항암제의 적응증을 하루가 멀다하고 확대하지만 아직 국내에서 적응증을 인정받지 못해 한국에서는 면역항암제를 비급여로도 쓸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면역세포의 능력을 강화해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하는 면역항암제의 기전 덕에 허가초과 사용으로도 혜택을 볼 가능성이 적지않아 정부도 무작정 막을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보건복지부도 면역항암제의 특성을 고려해 면역항암제 급여 직후인 8월 21일 '암질환 사용 약제 및 공고 개정(안)'을 발표해 면역항암제 허가초과 사용 환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긴급처방을 내렸다.

하지만 환연은 "개정안이 미봉책이라며 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

심평원이 지난 8월 발표한 면역항암제 오프라벨 허용 기준

개정안은 면역항암제를 오프라벨로 투약받기 위해 지정된 71개 허가초과 가능 병원으로 가 처방을 받도록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다학제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고 71개 허가초과 병원을 다니지 않았던 환자는 의료기관도 옮겨야 해 불만이 터져나왔다.

의료계 역시 의사의 적절한 모니터링을 전제로 한 오프라벨 확대를 오래 전부터 요구하고 있다.

대한안과의사회는 2016년 1월 안과 개원가의 해묵은 오프라벨 문제인 '아바스틴' 오프라벨 문제를 국회 공청회를 통해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아바스틴은 10여년 전부터 습성나이관련항반변성과 근시성맥락막신생혈관·특발성맥락막신생혈관·당뇨황반부종·망막정책폐쇄와 동반된 황반부종·신생혈관 녹내장 등에 오프라벨로 투여되는 대표적 약제다. 허가된 같은 성분의 치료제가 아바스틴보다 비싼데다 그마저도 급여 인정 투여횟수가 제한돼 개원가는 허용된 허가제보다 오프라벨 형태로 아바스틴을 투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환자단체나 의사들은 한국의 허가초과 사용에 대한 허용기준이 지나치게 경직됐다고 비판한다.

조현호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지난 3월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IRB(임상시험심사위원회)를 골자로 한 현 시스템으로 잘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의사가 자율적으로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프라벨 처방에 따른 부작용 우려로 무조건 '미사용' 결정을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미사용보다 '신중 사용' 내지는 '자제 권고'의 중간 단계를 설정하자"고 제안했다.

의학적 근거가 있는 경우 '허가범위 초과 항암제 비급여 사용 사전승인제도'와 '식약처 허가범위 초과 일반약제 비급여 사용 사후승인제도'를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환연의 제안과 비슷하다.

환연은 항암제 사전승인제와 일반약제 사후승인제에 따른 의사에게 보상할 수 있도록 하고 사후 관리감독을 강화해 남용을 방지하도록 하자는 안전판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임상적 유용성과 안전성이 입증되고 사회적 요구도도 큰 허가범위 초과 일반 약제는 일정 건수 이상 IRB가 없는 의료기관도 사후승인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안도 제시됐다. 수익성 문제로 해당 제약사가 허가를 주저하면 식약처가 의무적으로 허가 신청을 하도록 하는 제도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의료계는 무분별한 허가초과 사용으로 환자의 건강이 침해받아서는 안된다며 세밀한 제도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한 폐암치료 전문의는 "오프라벨 처방이 지금보다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보지만 약의 기본적인 허가시스템을 무너트려서는 안된다"고 우려했다. "효능과 안전성이 명확히 검증되지 않은 오프라벨 투약은 적용대상을 명확히 하고 제도적 안전판 마련해 신중히 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측 한 관계자는 "의약품 허가시스템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유연한 오프라벨 처방 허용규정 마련을 검토하고 있지만 환자가 원하는 수준과의 격차가 적지않다"고 토로했다. 

현재 운영 중인 '약제의 허가초과사용 제도개선 협의체'  논의가 만만치 않다는 고백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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