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우리 안의 '완장 찬 돼지'

청진기 우리 안의 '완장 찬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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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2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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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헌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 서울병원 비뇨기과)

김재헌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 서울병원 비뇨기과)
김재헌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 서울병원 비뇨기과)

몇 년 전에 모 드라마 작가가 본인이 집필한 드라마의 주인공에게 '완장 찬 돼지같다'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해서 기사화가 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드라마 작가여서 그 기사를 자세히 보게 됐고 그 의미를 다시 새기는 계기가 됐다. 
그 작가가 어떤 의도로 그런 표현을 사용했는지 보다 그 표현 자체의 감화가 너무 강해서 그 이후에 그 표현이 머리 속에 박히게 됐다. 아마도 내 스스로가 느끼는 의료현장에서의 본인 위치와 매우 흡사한 표현이어서 소름 끼칠 정도였다. 

어느 때부터 나는 내위 선배 의사와 교수님들처럼 많은 학식과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내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그리고 모든 수술을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모습을 스스로 투시하면서 기습적인 놀람을 경험했다. 아울러 '완장 찬 돼지'같은 스스로의 모습에 아무런 죄의식을 못 느끼면서 살던 찰나에 그 작가가 쓴 그 표현은 나의 머리에 송곳으로 쑤셔 넣은 것처럼 다가왔다.

잠시나마 당시 내가 얼마나 자만해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됐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구분해서 본인의 지식을 판가름 해야 하는데 모르는 것도 아는 것처럼 그리고 아는 것은 마치 다 아는 것처럼 포장하고 다니는 '완장찬 돼지'가 돼 버렸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전공의 시절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을 다시금 떠올리게 됐다. 

심혈관 질환이 있는 사람을 수술 하는 일이 있었는데 당시 교수님께서 평소 복용하던 심혈관 질환 약을 찾아보고 그 약의 출혈 위험성에 대한 근거를 찾아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귀찮다는 핑계로 순환기내과 협진의뢰서만 쓰고 교수님이 시킨 것을 찾아보지 않았고 협진의뢰서의 순환기내과 답변에 출혈 위험성이 없음을 말씀드렸다. 

이후 교수님께서 엄청 노하시고 혼내시면서 해주셨던 말씀이 공자가 제자인 자로에게 훈육했던 일화였다. 
전공의 시절 그 말씀을 물론 마음에 새기고 있었지만 한 동안 잊고 살다가 '완장 찬 돼지'의 표현을 접하며 내 현 위치를 다시금 각성하는 순간, 과거 교수님이 해주셨던 일화가 다시 생각났다. 

자로가 '스승님 아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니 공자께서 하신 말씀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였다. 참으로 현명하고 주옥 같은 표현이다. 

지식의 첫 시작이 본인에 대한 정확한 자각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공자의 견해는 수많은 시간을 흘러 지금 우리 시대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진리이다. 

본인의 현 위치를 정확히 깨닫고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동료 의료진에게 본인의 자만스러운 모습을 노출시키지 않고 아울러 현 위치를 극복하기 위해 더욱 더 배움에 정진하는 것이 우리 젊은 의사 그리고 연구진이 갖춰야 할 자세다. 

지금도 매일같이 논문을 보며 연구에 정진하는 선배 의사이자 교수님들을 보면서 더욱 더 겸손히 하루하루를 병원에서 최선을 다하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 안의 '완장 찬 돼지'가 '겸손하고 성실한 양'으로 변할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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