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헌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 서울병원 비뇨기과)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수련의와 전공의 과정을 숨가쁘게 마치고 나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크게 두 가지의 길로 나뉜다. 하나는 개업을 해 직접 병원을 운영하거나 준종합병원 내지 병원 급에서 봉직의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병원 내지 종합병원에서 전임의를 하면서 연구와 진료행위를 같이 하게 되는 것이다.
전임의를 시작함과 동시에 우리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얼마나 오랫동안 전임의를 할 것이고 또한 어디서 해야 하고, 임용이 될 수 있는 지에 대해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의과대학 졸업 이후 수련의와 전공의 과정까지 우리 대부분은 우리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우리 주위에 대한 배려 없이 대부분은 본인 위주의 사고를 고집하는 전형적인 차가운 현대인이 되고 만다. 이런 우리들에게 전임의 기간의 기다림이란 무척이나 조급증이 나는 일일 것이다.
항상 본인을 위한 임용 자리가 있어야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런 보장이 없으면 굳이 전임의를 해야 하는 것에 대한 반문을 가지게 된다. 안타깝게도 요즘은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해지는 것 같다.
본인 또한 짧지 않은 전임의 생활을 했지만 전임의로서 사는 그 시간 동안 적어도 본인을 위한 자리가 있어야 된다는 반문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덜 스트레스를 받으며 만족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배경을 포함한 본인의 생각과 당시에 힘이 되어주었던 글귀를 잠시 소개할까 한다.
어느 직장도 마찬가지지만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은 사람, 특히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필자는 정말 운이 좋게도 전임의를 하는 동안 너무 좋은 선생님들 밑에서 일하는 행운도 있었지만 스스로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서 일적인 부분 외에도 개인적으로도 모두 친하게 지내려 노력했다.
사람을 좋아하려고 노력하고 그리고 사람의 좋은 면을 보려고 노력하면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사람이 좋아지면 일하는 환경에 만족하게 되고 본인의 지위 보다는 분위기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직장의 분위기를 좋아지게 하려면 선배 선생님들에게 잘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래 후배 의사들과 동료 간호사, 병원 직원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연구나 수술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것보다 직장 분위기를 좋아지게 하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고 훨씬 더 값지다.
이렇게 직장 분위기가 좋아지면 일을 열심히 주도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가 되고, 직장 내에서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어진 새로운 연구 기회 등을 통해 연구 능력은 자연스럽게 향상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너무 열심히 하려고 열정을 한번에 쏟아 붓는 것에는 조금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젊은 연구자로서 산다는 것은 마라톤을 이제 시작한 것과 같아서 꾸준히 연구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며 일시적으로 바짝 열정을 다 바쳐서 연구를 하면 쉽게 스스로 지쳐 버릴 수 있다. 더욱이 열정이 너무 앞서면 기본적인 것들을 무시하게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택할 방향은 즐거운 직장생활 문화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울러 너무 지나치지 않게 꾸준히 연구하며 현재의 우리 자리를 지키면 되는 것이다.
우리를 위한 자리는 따로 그 누구도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본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본인 자리를 열심히 버티고 지키면 후에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열심히 버티며 지낸 매 순간순간 자체가 본인 인생의 값진 추억의 선물이 될 것이다.
고도원 기자가 출간한 산문집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를 보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나와있다. 원 출처는 효림 스님의 '힘든 세상, 도나 닦지'에서 나온 글로써, 그 부위를 잠깐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산중에 있는 나무들 가운데 가장 곧고 잘생긴 나무가 가장 먼저 잘려서 서까래 감으로 쓰인다. 그 다음 못생긴 나무가 큰 나무로 자라서 기둥이 되고 가장 못생긴 나무는 끝까지 남아서 산을 지키는 큰 고목나무가 된다. 못생긴 나무는 목수 눈에 띄어 잘리더라도 결국에는 대들보가 되는 것이다.'
젊은 의사들은, 특히 연구와 진료를 병행하며 힘을 다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은 모두 못생긴 나무가 되자. 못생겼지만 겸손하고 분위기를 좋게 하며 직장에 만족하고 위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는 못생긴 나무가 되면 좋겠다. 너무 열심히 해서 다름 사람 눈에 잘보이려고 노력할 필요없이 그냥 우리는 우리 자리를 지키기만 하면 된다. 무엇을 크게 이루는 것 보다 우리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