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불필요한 공포심 확대 재생산 '원인'...자율규제 강화 등 대안 제시
CCTV 설치 의무화, 의료과오 방지 미미·방어의료 유도·재정 부담 등 우려
최근 언론과 정치권에서 부상하고 있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주장이 수술실 내 의료과오·대리수술·PA 수술 참여 등 문제를 해결하는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의사-환자 간 신뢰를 붕괴시키는 큰 부작용만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대부분의 의료전문가들은 미국 등 선진국과 서구 유럽국들에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을 시행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 시사하는 바는 문제 해결책이 규제 강화가 아닌 의사-환자 간 신뢰 강화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비등하고 있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주장은 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의료과오 등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심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결과며, 전문직 직업자율성과 의사·환자 개인정보 보호 등 소중한 가치에 위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29일 의협 용산임시회관 회의실에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무엇이 환자를 위한 진실인가?'를 주제로 제46차 의료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는 의료전문가, 법률전문가, 시민단체 대표, 언론인이 참여해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한 필요성, 실효성, 부작용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
발제를 한 서영현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부대표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의료계의 반대 주장 및 논리가 근거가 약하거나 해결책 마련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서 부대표는 "수술실에서 환자는 마취상태이고 보호자는 수술실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환자 사고에 즉각 대응할 수 없고, 대리수술·인권침해·명백한 안전사고 등이 행해지거나 발생하더라도 밝혀내기 어렵다. 의료진이 작성한 수술기록지, 마취기록지 등의 의무기록만으로 분쟁해결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됐다고 볼 수 없다. 의료진이 의료사고를 조직적으로 은폐할 경우 이를 밝혀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수술실 CCTV 설치가 의료과오 또는 의료사고로 인한 의료분쟁 시 환자 측 증거확보를 겨냥한 것임을 시사했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따른 의료계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며 "진료위축, 방어수술 조장 등 주장은 CCTV 설치 방법을 조정하면 해결 가능하다. 직업수행 자유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침해 주장은 피해가 제일 큰 환자의 동의 원칙이 적용되면 된다. 정보유출 우려 역시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관련 의료법 개정안에 ▲의료법을 의료인 동의를 받지 않고 환자 동의만으로 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촬영장치를 유출 가능성이 낮은 폐쇄회로 TV로 제한하며 ▲미설치 시 제재규정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안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은 CCTV 설치 의무화 논란은 극히 일부의 비윤리적 행태, 의료과오를 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정치적 의제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발생한 불필요한 논쟁이라고 일축했다. 규제 강화가 근본 해결책이 아니며, 실익보다 부작용이 훨씬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부 비윤리적 사건, 사고로 사회적 위협이 증폭·확대 재상산되면서 CCTV 설치가 대안으로 힘을 얻고 있는 데, 의료과오 방지 효과는 미미할 것인 반면에 환자 비밀 누설과 전파의 위험, 불필요한 재원 투입 부담, 수술실 업무 효율성 방해 가능성, 감시체제하의 방어적 의료 유도 등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것"이라며 "의료계는 면허자율기구 등 의료계 자율규제 강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근본 해결책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의사는 의과대학부터 환자 비밀 유지를 '정언명령'으로 여기라고 배운다. 이는 의사의 최우선적 보편적 직무 윤리이기도 하다. 심지어 환자 사후에도 비밀 유지 원칙을 지키도록 하고 있다"면서 "선진국과 유럽연합국 등에서는 환자 비밀 유지는 환자의 절대적 권리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CCTV 설치 의무화 입법례가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공포심을 확대 재생산하는 분위기가 환자 스스로 자신의 비밀 유지 권리를 포기하게 만들려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일학 연세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는 규제 강화보다는 의사-환자 간 신뢰 회복 또는 강화에서 대안을 모색했다. "사회적으로 의료과오, 사고 등이 쟁점화할 때마다 환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결국 CCTV 확대 주장이 제기됐다고 본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법과 규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에는 회의적이다. CCTV 설치 의무화 문제의 본질은 떨어진 의사의 대국민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조동찬 SBS 의학전문기자는 정신질환자 인권 관련 논란의 결과로 강제입원 규정 완화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비화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며 "성급한 입법화보다 실태조사 등을 통한 필요성 검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의협 "의료과오 '침소봉대', CCTV 설치 실익보다 부작용 클 것"
의협 관계자들은 사회적으로 의료과오나 의료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불필요하게 확대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CCTV 설치 의무화가 될 경우 실질적인 이익보다 부작용이 더욱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세라 의협 기획이사 겸 의무이사 "얼마 전 같은 주제의 국회 토론회에 참석했다.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나에게 공격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다만 의협은 이미 다양한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윤리교육 강화, 전문가평가제 시행을 통한 자율징계 강화, 면허관리기구 운영 등이며, 그를 성취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는 신뢰의 문제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연간 5000만 건의 의료행위가 일어나는 우리나에서 크고 작은 의료사고는 3000건 정도 발생한다. 확률로 따지면 0.066% 정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 모든 의료기관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이 실익이 있을 것이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만일 CCTV 설치 의무화 의료법 개정이 이뤄지면 의료계에서는 대란이 일어날 것이다. 이에 대한 정책 결정의 책임자가 분명히 있어야 하고, 정책이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CCTV 설치 재원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이미 많은 중소의료기관의 경영실태가 열악하다. 국공립병원들은 모두 적자경영을 하고 있다. CCTV 설치 비용은 부담을 가중할 것이다. 현재 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는 경기도 내 국공립병원 역시 적자다. 민간의료기관이 적자를 면하고 있는 것은 경영 효율화와 일부 요령을 피우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의사-환자 간 신뢰 지적에 대해서도 "환자의 불만은 3분 진료가 이유다. 의대교수도 1일 외래를 100명 정도 봐야 하는 현실이다. 이런 문제를 국회와 정부, 환자단체가 (적절한 보상 또는 수가인상으로)해결해 주면, 의사-환자 간 신뢰 문제는 해결될 것이고, CCTV 논란도 없앨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성종호 의협 정책이사는 "우리나라 환자는 의료기관에 있어 무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의료서비스는 소비자 중심적으로 제공되고 있다. 그런데도 의사보다 신뢰도가 낮은 변호사, 언론인이 의사-환자 간 신뢰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하는 역설이 일어나고 있다. 환자에 대한 의사 신뢰는 높다"고 밝혔다.
"경기도립병원 등 국공립병원 CCTV 설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정치적 놀음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연간 40만 건의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CCTV 설치를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의사들의 자율규제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런 논란은 우리나라와 미국의 전문직 신뢰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