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자리 모인 의료계 대표자들 정부 강력 비판...총력 투쟁 결의
김인호 고문 "감옥갈 각오로 투쟁한다는 지도자, 마지막 전투 해보자"
의료계 대표자들이 답답한 의료현실에 울분을 토하고, 의료개혁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겠다고 다짐했다. 화살의 끝은 정부를 향해 있다.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한 일방통행식 정책 추진을 더 이상은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개혁쟁취투쟁위원회는 18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최선의 진료를 위한 근본적 의료개혁'을 기치로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열었다. 이날 대회는 현행 의료제도의 문제를 공유하는 한편, 향후 대응방향에 대한 의견을 모으기 위한 자리로, 지역 및 직역단체 대표자 등 350여명이 참석했다.
대표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총력 투쟁 필요성을 역설했다. 단합을 바탕으로 한 투쟁만이 현 의료제도의 문제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철호 대의원회 의장은 "의사들을 무시하고 억압하고 탄압해온 정부의 잘못된 의료정책에 항거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았다. 지금이라도 살기위해 하나로 뭉쳐 목소리를 낼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굴종의 삶을 살 것인지 이제 선택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 모인 대표자들의 협조를 바탕으로 반모임 등을 활성화해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투쟁의 불을 붙여야 한다"고 강조한 이 의장은 "그것이 의사로서의 사명이요 소명이다. 투쟁역량이 극대화되면 얼마든지 우리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장성구 대한의학회장은 "세계적으로 이렇게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짓밟고 내팽겨치고 헐뜯는 나라가 어디에 있으냐. 해도해도 너무한다"고 토로하며 "단장(斷腸)의 호소에도 불구 정부와 국회, 경도된 시민단체 어느 곳도 우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장 회장은 "흥분해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깨어진 계란이 문제가 아니라 병아리가 태어날 기회조차 잃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우리의 의지가 담겨있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 어디에 방점을 두어야 할 것인지 생각하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직역과 지역 대표들도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투쟁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급진적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의 추진, 수가 정상화 약속 불이행, 한의사들의 의과영역 침탈, 원격의료 도입 등으로 회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있다는 진단과 함께다.
백진현 전국광역시도의사협의회장(전라북도의사회장)은 "저수가·저부담·저보장(을 기본으로 하는 현 건강보험정책)이 적정수가·적정부담·적정보장이 되어야 한다고 대통령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약속했지만, 이 약속을 지키려는 어떤 노력도 보지 못했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데 대한) 사과도 없었다"며 "지금과 같이 일방적인 행태가 지속될 경우 동료의사들과 함께 끝까지 항거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군구의사회장 대표로 연단에 선 이동승 서울 강동구의사회장 또한 "그동안 정부는 전문가를 배제하고 무수히 관치의료를 획책해왔다"며 "상대방이 두 귀를 틀어막고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합심해 올바른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한다. 국민 건강과 의사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총력 투쟁을 선포하자"고 강조했다.
전공의들의 목소리에는 한층 더 힘이 서렸다.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신형록 전공의 사망사건을 언급하며 "전공의였던 한 청년의 죽음에는 전달체계 왜곡에 따른 환자 쏠림 현상과 저수가 등 왜곡된 의료현실이 모두 담겨있다"며 "31세에 불과한 젊은 의사가 아이들을 치료하다 과로로 숨졌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고 비통함을 호소했다.
"원격진료 일방추진 등 정부가 의료계를 무시한 사례가 한두개가 아니다. 비겁한 정부가 계속 불을 지피는데 언제까지 참고만 있을 것인가"라며 "우리 전공의는 의료변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것을 선언한다. 모두가 대동단결해 최선의 진료를 위한 투쟁에 행동으로 참여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좌훈정 대한개원의협의회 보험부회장, 이윤호 지역병원협의회장, 이향애 한국여자의사회장도 연대사에 나서 대정부 투쟁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일각에서는 냉철한 상황인식과 그에 따른 정밀한 투쟁계획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주신구 대한병원의사협의회장은 "집행부가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장에 나서기도 전에 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대회에서는 대표자 자유발언 시간도 마련됐다. 향후 대응방안에 대한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나누자는 취지다. 다양한 의견들이 오간 가운데 원로인 김인호 고문이 마무리 발언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지난 35년간 의사회 안팎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던 김 고문은 "지금은 과거를 따지고 사람을 바꾸자로 얘기할 때가 아니다. 의사 회원들은 지금 건드리면 터질 지경으로 분노에 쌓여있다. 우리 대표자들이 해야 할 일은 오늘 회의에서 모인 의견을 바탕으로 분노한 회원들의 동참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감옥에 갈 각오로 투쟁에 임하겠다고 한 이날 최대집 회장의 대회사를 언급한 김 고문은 "감옥에 갈 각오로 투쟁하겠다는 지도자를 만날 일이 또 있을까 싶다"며 "현 의료계의 상황은 더 이상 망가질 것도 없을 정도다. 그러니 이런 각오를 가진 지도자 아래 모여서 마지막 전투를 해보자"고 후배의사들을 독려했다.
앞서 최대집 의협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이번이 마지막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투쟁하지 못하면 앞으로 20년, 40년 의료계가 일어설 수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 투쟁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감옥에 가야한다면 옥중에서도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