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의 개원가 상대 줄 소송…소액소송도 법적 대응으로 시비 가려야
환자 원하지 않는데 보험사가 '채권대위소송'…합당 여부 쟁점으로 부각
실손보험회사들이 페인 스크램블러(Pain scramble) 소송을 대거 제기하면서 개원 의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보험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고 의사들에게 돈을 달라고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것인데, 소액 소송이다 보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고민이 크다.
법률 전문가들은 소액 소송이라도 소극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대처해 보험회사의 근거 없는 소송 남발에 끝까지 시비를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페인 스크램블러는 약물이나 부작용 없이 전극을 통해 통증을 완화하는 비수술적 통증 치료기기이다.
일반적인 비수술적 통증 치료는 약물과 주사요법이다. 그러나 주사 치료가 불가능한 케이스 등으로 약물 사용 없이 바로 통증 주변 신경회로, 통각 신경에 전극을 전달해 통증을 완화하는 방법이 페인 스크램블러이다.
만성 통증이나 난치성 통증을 앓고 있는 경우, 수술 외상 후 급성 통증, 시술·약물·주사요법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 경우, 다루기 힘든 심한 악성 통증, 경부통·요통·방사통·좌골신경통·디스트 통증 등 모든 근골결계 통증,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GPS) 등이 치료 대상이다.
페인 스크램블러는 주로 정형외과, 신경외과의원에서 환자에게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보험회사들은 전극으로 통증을 완화하는 페인스크램블러 장비를 '만성 통증' 환자가 아닌 '급성 통증' 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은 임의비급여에 해당한다며 보험료를 환수하기 위한 소송을 올해 초부터 제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액이 작은 '소액 소송'이다 보니 페인 스크램블러를 사용하고 있는 의사들은 소송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아 패소하는 경우가 벌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 김지연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보험회사의 소액 소송에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김지연 변호사는 "병·의원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회사의 소송액이 소액인 경우 소송 비용이나 시간 등을 고려할 때 합의를 통한 소송 취하나 소극적인 대처로 패소하는 경우 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보험회사가 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극적인 대응으로 인한 패소가 판례가 돼 향후 벌어지는 기타 소송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소액이고 귀찮더라도 보험사의 근거 없는 소송 남발에 대해서는 끝까지 법적으로 시비를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보험회사의 횡포도 다양하다고 꼬집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지방법원을 이용해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는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의사들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서울로 올라오게 하고, 귀찮아서 합의하게끔 유도하는 것, 그리고 여러 보험회사가 의사 한명에게 소송을 제기하는 것, 소액 사건을 모아서(한 보험회사가 여러 명의 의사를 상대로 소송) 소송을 낼 수도 있는데 건건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소액 소송 시 '채권 대위 소송'에 대한 치열한 법리 공방도 예상된다.
당사자인 환자가 소송을 원하지 않음에도 보험회사가 대신해서 제기하는 이른바 '채권 대위 소송'이 합당한지가 쟁점이 되는 것.
법률 전문가들은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보험금이라면 마땅히 환자에게 지급하지 않거나 환수해야지 이것을 다음에 의료기관에 환수하려고 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보험사들의 '채권 대위 소송'에 관해서는 향후 소송에서 치열한 법리 입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김지연 변호사는 "소액 소송인 경우 변호사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의료기관 직원이 대리인으로 직접 소송을 진행하는 방법이 있다"고 소개했다.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도 "채권자 대위의 경우 채권 보전의 필요성이 없다고 보인다"며 "금전채권이고 해당 금전채권은 채무자인 환자에게 행사해도 충분히 변제가 가능함에도 보험회사의 편의만 고려해 의료기관 측에 대위 청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페인 스크램블러와 관련 소액 소송이 늘자 의사회 차원에서도 법적 대응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대한외과의사회는 법무법인과 업무협약을 맺고 페인 스크램블러 등과 관련한 소송에 대비키로 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한정형외과의사회도 최근 회원을 대상으로 법률세미나를 개최하고, 맘모톰, 페인 스크램블러 소송에 적극적으로 대비키로 했다. 대한신경외과의사회도 자체적으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보험회사들의 소송 움직임에 대비하고 있다.
이태연 회장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사항에는 만성 통증에만 페인 스크램블러를 사용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만성 통증과 급성 통증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소액 소송이어서 의사들이 신경 쓰지 않고, 소송으로 인한 시간이 소비되는 것 등을 이유로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며 "의료계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보험회사의 소송이 매우 악의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험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의사에게 돈을 돌려달라는 게 맞지 않는다는 것.
이 회장은 "소액 소송이라는 이유로 합의를 하거나, 소송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보험회사에 유리한 판례가 쌓이게 되므로 회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소송에 대응하라"고 당부했다.
보험회사의 주장대로 임의비급여를 모두 위법하다고 볼 수 있는지도 소송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진석 변호사는 "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임의비급여라고 모두 위법한 것이 아니고 예외적으로 적법할 수 있는데, 보험회사는 무조건 위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양급여기준 위반이라고 하더라도 의학적 필요성에 따라 의사가 환자에게 행한 행위를 위법으로 보지 않는 판례도 있다"며 "페인 스크램블러를 만성 통증이 아니라 급성 통증에 사용했어도 이를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조 변호사는 "보험회사 스스로 심사해서 환자에게 지급을 결정한 건에 관해 의사에게 그 반환을 요구하는 것은 '신의칙' 내지 '금반언'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