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뢰 연구용역 결과 놓고 의-한 국회서 맞짱 토론
醫 "엉터리 연구" 지적에 韓 "초기라 한계...협진연구하자"
정부 연구용역 결과로 나온 '한방난임치료 효과성 연구'의 신뢰성을 놓고 의료계와 한의계가 정면으로 맞붙었다.
의료계는 "한의약 난임치료는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안전성 측면에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확인한 연구"라면서 한의약 난임연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최소한 해는 가하지 말라"는 신랄한 비판도 나왔다.
한의계는 설득이나 방어를 하기 보다는 "초기 단계 연구여서 한계가 있다"며 이해를 구하는데 힘을 쏟았다. 보다 정교한 연구를 위해 의-한방 협진 연구를 수행하자고 제안했다. 정부는 "추가 연구를 시행한다면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을 받았다.
12월 26일 국회에서는 남인순·염동열 의원 주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주관, 보건복지부·대한산부인과학회·대한한방부인과학회 후원으로 '한의약 난임치료 연구'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한의계가 최근 발표한 한의약 난임치료 연구결과를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앞서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김동일 교수(동국대 일산한방병원장)은 지난 11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연구용역을 받아 시행한 '한약(온경탕과 배란착상방) 투여 및 침구치료의 난임치료 효과규명을 위한 임상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한방 난임치료 연구는 2015년 6월부터 올 5월까지 4년간 동국대·경희대·원광대 등 3개 한방의료기관에서 '원인불명 난임'으로 진단받은 여성 100명을 모집해 치료를 수행하고, 결과를 관찰하는 방법으로 진행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원한 연구비는 총 6억 2000만원.
김 교수는 해당 연구보고서를 통해 "한방 난임치료의 안정성과 유효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연구보고서 발표 직후 한의약 난임지원사업 성과대회를 열어 한방 난임사업을 홍보했다.
반면, 의료계는 엉터리 논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던 와중에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생물통계센터 소속 생물통계학자이자 코크란의 부인과학 및 생식 그룹 통계 편집자인 잭 윌킨슨(Jack Wilkinson) 박사가 해당 논문심사를 거부했다는 소식까지 알려지면서, '국제 망신'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이번 국회 토론회는 의-한 전문가들이 공개적으로 한방 난임치료 연구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검증해 보자는 취지에서 열렸다.
토론회에 참여한 의료 전문가들은 "엉터리 연구"라고 지적했다.
발제자로 나선 최영식 연세의대 교수는 "이번 한의약 연구는 케이스 시리즈 연구로 가장 하위단계의 근거수준만을 제시하는 연구"라면서 "전향적으로 환자를 모집했다고 연구의 근거수준을 높이지는 않는다. 적합한 대조군도 없는 증례연구의 하나다. 현대의학적, 근거중심의학 관점에서 검증됐다고 할 수 없고, 한방 난임치료의 기반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연구 결과도 조목조목 비판했다.
최 교수는 한방 난임연구진들이 "한방치료를 통한 임신율이 14.4%이고 2016년 난임부부 지원사업에 확인된 의과 난임치료 효과는 인공수정 13.9%, 체외수정 29.6%로 한방 난임 인신성공률이 체외수정보다는 떨어지나 인공수정보다 높다"고 주장한 데 대해 난임부부지원사업에서 보고된 한 주기당 임신율을 인용하면서 한방난임치료 임신율은 7주기 누적 임신율을 사용해 비교하는 치명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며 "오히려 한방난임치료 연구 보고서의 한방난임 임신율은 아무 치료를 하지 않는 것보다 열등한 결과"라고 일축했다.
연구에 사용한 온경탕·배란착상방 등을 GMP(우수한약제조관리기준)와 3개 기관 표준화 작업으로 약제의 안전성을 보장했다는 한의계의 주장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 신약개발에는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린다. 3년 이상 200례 이상 사용된 처방이라(연구에 사용된 온경탕 등이) 안전하다는 것은 신뢰할 수 없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답답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토론자로 나선 이무열 중앙의대 교수는 "의학과 한의학은 그 개념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전문가로서 이런 영역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럼에도 환자에게 쓰이고,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다보니 (의사들이)전문가로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절박한 상황에 놓인 난임부부들이 이런 연구내용에 현혹돼 적절한 치료기회를 놓치거나, 오히려 건강에 해를 입는 사례가 우려된다"고 언급한 이 교수는 "한방 난임치료에 대한 근거가 미흡한 만큼, 이 부분이 확인될 때까지 각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한방 난임치료 지원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중엽 원장(함춘여성의원)은 "임신 중 약물 사용은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인데, 한의사들이 임산부에 대한 약물사용을 너무 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며 "임산부에 대한 약물사용시 판단 기준은 특정 약이 위험한가, 아닌가가 아니라 임신 중인데도 반드시 필요한가, 아닌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신 중 치료는 최소해야 한다. 안쓰는 게 원칙이고, 쓰더라도 최소한을 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밝힌 이 원장은 "최소한 (환자들에)해를 가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의계도 반박에 나섰다. 다만 설득이나 방어를 하기 보다는 "초기 단계 연구여서 한계가 있다"며 추가 근거를 제시하면서 이해를 구하는데 힘을 쏟았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연구를 수행한 김동일 교수가 직접 연자로 나서, 연구결과 발표 후 제기된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의료계와 한의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라 연구결과를 비공개 처리했으나, 발표 이후 정보 공개 요구가 빗발쳤다"고 밝힌 김 교수는 "연구비용과 국내 의료계 상황으로 쇼규모 임상연구를 진행할 수 밖에 없는 제한이 있다"며 연구의 한계점을 인정했다.
김 교수는 "저출산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문제"라면서 "연구의 제한점을 인정하나, 저의 한계가 한의약의 한계는 아니므로 오늘의 논의가 새로운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한의약 난임치료의 유효성과 안정성·경제성 분석을 위한 추가 연구와 의과와의 협진 연구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의계 몫으로 배정된 다른 토론자들도 유사한 입장을 보였다. 이들은 "보다 과학적이고 정교한 연구를 위해 의-한방 협진 연구를 수행하자"고 제안했다.
정부는 "추가 연구를 시행한다면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을 받았다.
토론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이창준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관은 "의과와 한의과가 각자의 치료방법을 가지고 있다. 이를 두고 여러가지 논란이 있긴 하나, 이런 논의를 통해 치료방법을 융합·통합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면서 "연구자가 연구의 제한점이 있고, 추가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 만큼 정부도 추가연구를 진행한다면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방 난임치료에 대한 근거가 미흡한 만큼 현재 지자체에서 시행 중인 각종 지원사업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의료계의 요구에 대해서도 "각 지자체에서 중앙정부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