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국민의 능동적인 참여·충분한 예산 확보됐을 때 가능
무늬만 '무상의료' 러시아, 한국 의료서비스·의료기술 부러워해
이번 대통령 선거에도 공공의료 확충과 무상의료에 대한 공약이 나왔다. 의료 불평등이나 불균형을 공공의료에서 찾으려고 하는데 주의와 회의를 요하는 대표적 정치적 인기 영합주의 공약이다.
의료 불평등과 불균형의 문제는 매우 복합적인 요소가 작동하기에 개념도 불분명한 공공의료를 대안으로 내세운다고 쉽사리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무상의료 국가이며, 군사 대국인 러시아 연방은 세계에서 영토가 가장 큰 나라로 언제든 주변국의 침략이 가능한 군비력을 보인다.
러시아에서 도시와 시골의 의료 격차는 우리나라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 국내선 비행시간이 10시간을 넘기는 크기의 러시아와 차량으로 한 시간이면 대도시 접근이 가능 한 우리나라는 의료 불균형의 의미가 너무나 달라 보인다.
러시아는 넓은 영토에도 인구는 약 1억 5000만명이 안되고 있다. 국가 총생산도 우리나라보다 한 수 아래에 있다.
오랜 세월 구 러시아나 소련권 국가에서 의료는 공공재로서 정부가 무상으로 보편적인 의료를 제공한다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적절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역설적 현상을 보여준다.
독재와 정부 부패, COVID-19, 그리고 절대적 의료 예산 부족으로 의료 상황은 암울해 보이기만 하다. 무상의료를 지키지 못하는 러시아 정부는 해결책으로 민간보험의 구매도 허용하나 국민의 5% 만이 개인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대부분 국민은 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무상의료는 공짜 의료로 보이나 필수의료도 보장하지 못해 실제로는 의료이용 시 개인이 의료비 전액을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환자에게는 공짜가 아닌 유료인데 정부는 무상의료제도라고 주장하는 희한한 공공의료를 만들어 내고 있다. 현재 1만 7500곳 이상의 러시아 마을에는 의료 기반 시설이 없으며, 의사와 간호사의 급여도 월 30만원을 조금 웃돈다고 한다. 시설이 없으니 제공할 무상의료도 없다.
러시아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부패라고 한다. 의료도 예외는 아니다. 2019년 다수의 수입 의약품이 약국에서 사라지면서 러시아 정부는 포도당과 프레드니손과 같은 기본 의약품도 병원에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의 부패 인식 지수는 전 세계 180개국 중 하위 25%에 속하고 2016년 글로벌 부패 지표(Global Corruption Barometer)에 의하면 공공 서비스 이용자의 27%가 뇌물을 지불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공공의 자산은 그 누구의 자산도 아닌 사회적 자산임에도 실제로는 누구라도 취할 수 있다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현재 GDP 대비 의료비는 5.3%다. 군사 대국을 유지하기 위해 의료 예산을 제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애초부터 적은 의료비로 무상의료는 불가능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구 소련시절부터 수용소 문화에 익숙한 러시아의 정신병원은 입원 환자 1/3이 비위생적인 상태에 있다고 한다. 한 방에?15명이 입원해 있으며, 모든 창문에 창살이 설치돼 있고, 칸막이나 화장실도 없는 것으로 보고됐다.
그럼에도 러시아 정부는 가까운 장래에 의료 예산의 1/3을 더 줄일 예정이라고 한다. 군사대국 러시아의 의료 서비스는 55개 선진국 중 최하위권이다. 그나마 새로운 전쟁으로 러시아 의료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공공의료는 충분한 예산이 확보됐을 때 가능한 것이고, 성숙한 시민의식과 같은 사회문화적 자산이 존재할 때 가능하다. 공공의료가 잘 발달한 선진국은 의료비 지출이 GDP의 10%를 상회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8%를 넘었다고 의료비 증가 억제를 위해 호들갑을 떨고 있다. 우리 정부의 공공의료 강화 정책과 이에 필요한 정부의 의료비에 대한 투자는 정 반대로 가고 있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의료에 공짜는 없다는 인식도 확실히 해야 한다.
정부이든 민간이든 누군가는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 충분한 예산 없이 공공의료나 무상의료는 원초적으로 불가능한 매우 비싼 것이다.
무상의료의 성공에는 국민의 능동적인 참여가 동반될 때 가능하다. 권력에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국민적 정서로 독재 정부에 기대봐야 이미 적은 예산과 부패로 의료의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비록 러시아에도 시민의식이 생겨나며 소규모 비영리 단체와 시민 사회가 의료 문제로 러시아 정부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평등과 공공성을 추구하는 정치가 독재에 의존하고 있으니 시민의 소리는 '쇠귀에 경 읽기' 정도가 아닌가 추측된다.
러시아의 무늬만 무상의료와 동반되는 또 다른 문제는 시대착오적인 의학 교육이 좋은 의사를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 소련권 국가는 아직도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교수 중심의 의학교육을 하고 있다. 간혹 특정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괄목할 만한 의학자와 임상 기술도 발전시켰으나 보편적이고 표준적인 임상 역량을 보유한 전문의 배출에는 심각한 제도적 약점을 갖고 있다.
학술적 이론으로 무장됐으나 실무 역량과 괴리된 의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와 최첨단 의료기술을 부러워하고 있다. 이는 기술적 해결이 아닌 의학교육의 민주화와 근본적인 의료제도의 개선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 칼럼이나 기고 내용은 <의협신문>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