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독감 동시 유행 대비해야…한 번에 검사 가능한 '콤보 키트' 활용 제안
박근태 대한내과의사회장 "심근경색 환자 살리려면 필수의료 내과 지원해야"
내년으로 연기된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사업(만관제)가 개원가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특히 환자 본인부담률과 청구 방법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 간의 협의 결과에 촉각이 곤두섰다.
박근태 대한내과의사회장은 10월 16일 추계 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만관제 시범사업을 평가한 결과, 관리를 받은 만성질환자의 응급실 방문율이 줄었고, 필요한 검사도 더 많이 했으며, 의료비 지출도 줄이는 효과를 보였다"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만관제 본사업에 앞서 65세 이상 노인 본인 부담률이 쟁점으로 부상했다.
박근태 회장은 "환자가 덜 부담해야 만관제가 정착할 수 있다"면서 "노인 환자의 본인 부담률을 20%로 하되 진찰료 포함 여부, 분리 청구, 코드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부진한 케어코디네이터 고용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이정용 대한내과의사회 수석 부회장(현대내과의원)·곽경근 총무 부회장(서울내과)·송민섭 대외협력 부회장(서울송내과)·은수훈 총무이사(훈훈한내과)·조승철 공보이사(은평밝은내과) 등이 참석, 내과의사회 주요 현안과 대응 방안을 설명했다.
내과의사회는 이번 가을과 겨울,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에도 대비해야 한다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정부도 최근 트윈데믹에 대비, 코로나19·독감 동시 PCR 검사를 급여로 전환했다.
하지만 내과의사회는 코로나19·독감 동시 PCR 검사가 신속히 치료제를 투여해야 하는 독감 치료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면서 개원가에서 신속히 검사할 수 있는 콤보 키트를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태 회장은 "독감은 48시간 이내에 치료제를 투여하는 것이 중요한데 PCR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1∼2일이 걸린다. 제대로 치료하기 어렵다"면서 "코로나19와 독감을 한 번에 검사할 수 있는 콤보 키트가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아 출시됐지만 청구코드가 없어 활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열이 나는 환자가 내원하면 코로나19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신속항원검사(RAT)를 실시한다. 음성이 나오면 독감 검사(비급여)를 해야 하는 데 적지 않은 환자가 '왜 돈을 내야 하냐?'며 검사를 거부한다"고 진료 현장에서 흔히 벌어지는 사례를 예로 들었다.
박근태 회장은 "한 번에 검사할 수 있는 콤보 키트가 나와 있음에도 정부는 환자를 두 번 찌르도록 하면서 고통을 주고 있다"면서 "한 번에 검사하고, 결과를 빨리 판독해야 적기에 치료할 수 있다. 정부는 일선 의료기관이 트윈데믹에 대비할 수 있도록 콤보키트를 급여화 하던지 비급여로 하던지 조속히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수의료 내과 소외 문제도 짚었다. 정부는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필수의료 강화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내과의사회는 "WHO는 필수의료를 국민의 생명과 건강권을 보호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기본과인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는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보호하는 과"라고 강조했다.
박근태 회장은 "갑자기 심근경색(MI)이 와서 심혈관 스텐트 삽입술을 해야 하는 데 순환기내과 의사가 없다면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없다"면서 "내과가 무너지면 의료를 유지할 수 없다. 지방 내과 전공의는 미달이다. 최근 5년 간 내과 전공의 이탈률이 10%에 달한다"고 하소연했다.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개원가가 살아나야 한다"고 밝힌 박근태 회장은 "개원가에 건강보험 재정이 아닌 별도의 정책적인 수가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단과 치료의 결과가 좋지 않다고 의료소송을 벌이는 의료문화와 의료분쟁을 형사화 하는 처벌 관행도 필수의료를 기피하고 방어진료를 조장하는 원인으로 지목했다.
박근태 회장은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데 환자 상태가 나빠지거나 오진했다고 하면 무조건 소송이 들어온다. 의사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진료하지 죽이기 위해 진료하는 게 아니지 않나?"고 항변했다.
"가장 필요한 것이 의료사고 특별법안이다. 열심히 소신 진료를 했는데 불가항력적으로 나쁜 결과가 나왔다면 제도적으로 구제를 해 줘야 하는데 구속 수사하고, 실형을 선고하고, 의사면허까지 취소하고 있다"고 지적한 박근태 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누가 어렵고 힘든 길을 가려고 하겠냐? 의료사고 발생 시 처벌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필수의료는 더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근태 회장은 "필수의료 분야를 정책적으로 지원해 주고, 개원가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의료사고 시 구제해 줘야 젊은 전공의들이 이 분야를 지원할 것"이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비대면 진료와 커뮤니티 케어 등 주요 의료정책에 관한 견해도 표출됐다. 국정감사에서도 비대면 진료에 관해 여러 의원이 지적이 나왔다. 이기일 차관은 의료계와 협의회 문제점을 보완해서 제도화하겠다고 했다.
대한내과의사회 원격의료TF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정용 대한내과의사회 수석 부회장은 "코로나19 출구 전략을 논의하는 마당에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면서 안전성과 효과성을 입증하지 못한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를 섣불리 제도화 하려는 데 대해 우려했다.
지난 7월 7일 내과의사회·가정의학과의사회·이비인후과의사회·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오진 위험, 비대면 진료 전문의원 출현, 원격의료 관련 플랫폼 난립,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 심화 등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정용 수석 부회장은 당시의 상황과 달라진 게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커뮤니티 케어에 관해서도 개원가의 현실을 들어 우려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정용 수석 부회장은 "커뮤니티 케어를 하려면 의사와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 사회복지사 3인 1조가 팀을 구성해야 한다. 개인 의원에서는 팀을 꾸릴 수가 없고, 맨파워가 떨어지기 때문에 커뮤니티 케어가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필수의료가 무너지는 원인은 유신 정권 때 의료보험 제도를 만들 당시 백년대계를 내다 보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일본 것을 베껴서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이정용 수석 부회장은 "커뮤니티 케어도 마찬가지다. 각 직역 간의 싸움이 아닌 국민 건강권을 위한 제도적 발판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시작해야 한다. 잠시 중단하고, 의료계 내부적으로 논의했으면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