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학도 수필공모전 수상작 '오늘도 신성모독!'

한국 의학도 수필공모전 수상작 '오늘도 신성모독!'

  • 김준성 성균관의대 본과 2학년 kkhy0722@gmail.com
  • 승인 2022.10.29 06:00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의사협회 주최·한국의사수필가협회 12회째 주관...특별상(박언휘젊은슈바이처문학상)
후원 서울시의사회·대한개원의협의회·대한의학회·한국여자의사회·박언휘슈바이쳐나눔재단

한국 의학도 수필공모전 특별상 '오늘도 신성모독!'(김준성 성균관의대 본과 2학년) ⓒ의협신문
"[오늘도 신성모독]은 신의 영역이라고 여긴 의학을 공부하는 과정에 감히 도전한다는 역발상으로 시작해 의학도가 가져야 할 자세, 사람을 살리는 자세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고 싶다는 결론에 이른 수작이다"(심사평 중에서) [사진=pixabay] ⓒ의협신문

길고 길었던 본과 2학년 1학기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의대 6년 중 겨우 한 학기이고, 졸업 후로도 배움을 계속해나가야 할 과정들을 생각하면 겨우 20대 초반의 한해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코로나 사태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전면 등교 학기를 보내고 나니 다 타버린 장작처럼 지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한 학기 동안 임상의학을 공부하며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영감을 얻었습니다. 

정신과 시험을 준비하면서 '나의 정신을 내가 온전히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나는 어디까지 나인가?'라는 주제에 꽂혔고,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강의]를 빌렸습니다. 방학 동안 이 책들을 읽으며, 인간의 정신활동을 경계 짓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입학했을 때부터 의대 안에서 별종 취급받았던 것 같습니다. 예과생 시절 교내 국제 학생 단체에서 팀장까지 맡아가면서 교환학생들의 생활 지원 활동을 했고, 해부학 학기에는 뜬금없이 인문대 락밴드에 들어가서 어문과, 철학과, 사학과 친구들과 일주일에 세 번씩 홍대 합주실을 들락거렸습니다. 본과 1학년 때는 모두가 핵심만 짚고 넘기는 기생충학(기생충학은 배점이 비교적 적습니다)에 빠져서 3일 동안 기생충학 교과서를 독파했고, 얼마 전부터는 개성 표현이랍시고 교수님과 동기들의 핀잔을 돌파하면서 머리를 기르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매주 '아 공부하기 싫다!'라며 투덜거리고, '졸업하고도 의사 안 할 거야' 라는 소리를 하고 다니니, 주위 친구들은 으레 '쟤는 학교 다니기 싫은가 보다' 하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은 그저 반복되는 강의 스케쥴에 지쳐 내뱉는 어리광일 뿐이고, 사실 저는 제 전공을 너무 좋아합니다. 체 게바라, 앙드레 브르통, 마종기, 안톤 체호프,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했던 것과 같은 공부를 하고 있다니 어떻게 영광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밀란 쿤데라 소설의 주인공인 토마시와 장마르크가 의대를 다녔다는 것도 저에게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일입니다. 

멋진 외과 의사 토마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신이 살인은 예측했을 테지만 아마도 외과 수술은 예측하지 못했을 거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신은 자신이 발명해서 조심스레 피부로 감싸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은폐하고 봉합한 체제 내부에 인간이 감히 손을 집어넣으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다. 토마시는 처음으로 마취 상태에서 축 늘어진 환자의 피부에 메스를 대고 확고한 힘을 가해 그 피부를 찢고 다시 정확한 솜씨로 봉합하면서 (마치 외투 자락이나 치마, 커튼 자락처럼 영혼 없는 헝겊 조각을 대하듯) 아주 순간적이지만 강렬하게 신성모독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의학에 이끌린 것은 필경 이런 점 때문이었다! 이 필연, 그의 가슴속 깊이 뿌리 내린 이 'es musssein!'이었으며 그를 이 필연으로 내몬 것은 우연도, 외과 과장의 관절염도 아니며 외부에서 유래한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신만이 알던 인간 몸의 신비를 헤집고 탐구하겠다고 덤빈 호기에서 예술가의 창조적인 반항심을 엿보게 됩니다. 위암 환자의 위전절제술을 처음 떠올린 것은 누구이며, 뇌전증 환자의 뇌량 절제술을 떠올린 것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어찌 신조차 하지 못했던, 위가 없고 좌우 대뇌반구가 절단된 인간의 삶을 감히 상상하고, 그러한 건방진 상상을 집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토마시의 말대로 이는 신성모독이며, 궁극의 예술적 행위일 것입니다. 

저는 의학이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깊고 넓은 토대를 제공하기 때문에 의학을 사랑합니다. 내과를 공부하면 인간의 정상 상태와 고통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고, 보건의료제도와 역학을 공부하면 건강과 관련된 사회현상을 이해할 수 있고, 정신과를 공부하면 인간 정신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미생물학을 공부하면 인간과 자연의 연결고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기 형식으로 다소 산만하게 전개되는 듯했지만, 성공적인 주제구현을 이뤄냈다. 사람의 몸을 고치는 것 이외에 여러 다른 삶을 살아낸 의사 동료들 언급도 각별하다"(심사평 중에서) [사진=pixabay] ⓒ의협신문

무엇이든 더 잘 알게 될수록 더 사랑하게 되는 법입니다. 의학을 공부하면서 저는 인간을 더욱 사랑하고, 더 행복한 인간 개인과 더 풍요로운 인간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학의 본질은 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폭넓은 탐구이자 인간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며, 더 좋은 인간 삶에 대한 상상입니다. 

김준성 성균관의대 본과 2년 ⓒ의협신문
김준성 성균관의대 본과 2년 ⓒ의협신문

몇 주간의 짧은 방학이 지나면 2학기가 시작할 것이고, 저는 또 매일 지친 몸뚱이를 끌고 강의실로 향할 것입니다. 의대 생활은 분명 지칩니다. 너무 많은 공부량에 쫓기고, 좋아하는 일들을 포기해야 할 때마다 종종 짜증이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강의와 교과서에서 새로운 지식을 얻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세상 누구보다 낙천적이고, 총명하며, 사랑으로 가슴 충만한 젊은 혁명가가 춤을 추는 것을 느낍니다. 그는 아마, 그가 사랑하는 '인간'을 더 잘 알게 되어서 기쁜 것이겠지요. 

언젠가부터 반드시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희미해졌습니다. 이는, '살리는 사람'이라는 자칫 시혜적일 수 있는 역할에 대한 이질감으로부터 유래했습니다. 저는 대신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것이 의사일 수도 있고, 다른 역할일 수도 있겠지요. 

'20세기의 가장 완벽한 인간'이자 의사이자 혁명가인 체 게바라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모든 진실된 인간은 자신의 뺨이 다른 사람의 뺨에 닿는 것을 느껴야 한다." 

저는 맞닿은 뺨의 온도를 느끼며, 그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오늘도 신성모독적인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