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반복 이유...면허 범위 정하지 않아 최종 판단 법원에 미뤄
의료현장서 논란 없도록 면허 범위 경계 확정 작업 시작해야
2022년 말, 대법원은 한의사도 초음파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여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반면, 헌법재판소는 2013년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금지가 합헌이라는 취지로 판단한 사례가 있다. 두 사안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달랐다.
헌법재판소는 '법률' 자체가 헌법에 위반되는지, 혹은 공권력의 행사가 당사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를 밝히는 기관이다.
또 한 개인이 단순히 법률의 위헌여부에 대해 궁금하다고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없고, 반드시 법률이나 공권력에 의해 불이익을 받는 당사자만이 사건을 헌법재판소로 가져갈 수 있다.
2013년 헌법재판소에서 다뤘던 사건은 한의사인 청구인이 골밀도 측정용 초음파진단기기인 'OsteoImager PLUS'를 사용하여 성장판 검사 등을 하였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법원에서 벌금 200만원의 선고유예를 받고 항소하여 항소심 계속 중, 자신이 유죄판단을 받게 된 근거 법률인 의료법의 규정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취지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 및 헌법소원에 이르게 된 경우였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만 규정하고 있는데, 헌법재판소는 '면허된 의료행위'가 무엇인지에 관하여 법률에 아무런 정의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것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는지(즉, 한의사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법률상 알 수 없기 때문에 위헌인지),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와 같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을 무조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로 단정하여 처벌하는 것이 위헌인지에 관해 판단했다.
우리나라 의료법은 '먼허의 범위'는 물론, '의료행위'가 무엇인지도 정의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의료행위'는 물론, '한방의료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 반드시 법률에 구체적인 정의가 없더라도 대법원 또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토대로 정의가 가능하기 때문에 현행 의료법이 위헌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가 과거 거듭하여 '한방의료행위'는 우리의 옛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의에서 요구하는 형벌법규의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나아가 이러한 한방의료행위의 정의에 기초하여 비록 초음파검사의 경우는 그 시행은 간단하나 영상을 평가하는 데는 인체 및 영상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있어야 함은 물론, 검사 중에 발생하는 다양한 현상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므로 영상의학과 의사나 초음파검사 경험이 많은 해당과의 전문의사가 시행하여야 하고, 이론적 기초와 의료기술이 다른 한의사에게 이를 허용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도 지금까지는 위 헌법재판소의 견해와 유사하게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가능 여부를 판단할 때 해당 의료기기의 개발 또는 제작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한 것인지, 해당 의료기기 등을 사용하는 의료행위가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의 응용 또는 적용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등을 기초로 판단해왔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은 이러한 '종전 판단기준'을 공식적으로 변경했다. 과거에는 해당 의료기기 사용이 한의학적 원리에 부합하는 것인지를 살펴 판단하였다면, 이번 판결부터는 한의학적 원리에 입각하여 이를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한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한 것이다.
즉, 한의학적 원리와 명백히 무관하지 않는 한 한의사가 사용하더라도 형사처벌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명백히 한의학적 원리에 무관한지 '여부를 면허 범위의 판단기준으로 삼은 것은 이 사건이 형사사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근대 형사법 원칙에 따르면 '범죄가 성립하였음이 합리적으로 의심되지 않을 정도'에 이르렀을 때에만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법원은 처벌 범위를 함부로 넓히지 않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우리나라 의료법령에는 각 면허에 따라 할 수 있는 행위, 다룰 수 있는 의료기기가 규정되어 있지 않아 결국 유사한 분쟁이 생기면 또 다시 형사사건화 되어 대법원이 최종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면 대법원의 변경된 판단기준이 적용될 경우 한의사 뿐만 아니라 다른 직역들 사이에서도 면허 범위가 지나치게 넓게 판단될 위험이 있다.
한편, 2013년 헌법재판소 판단과 이번 대법원 판단에서 모두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이 판단의 근거로 언급되기는 했다.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 전체국민의 보건상 위해 발생 우려를 언급한 반면, 대법원은 '의료소비자' 라는 단어를 4번이나 언급하며 '소비자'로서 국민의 '선택권'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보건의료 분야에서 보건의료전문가와 환자는 대등한 생산자와 소비자가 아니며 환자는 '소비자'일지는 모르지만 전적으로 전문가의 판단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나라는 보건의료 관련 전문가들에게 면허를 부여하고 일반적인 상거래와 달리 여러 가지 제한을 부과하는 것이고, 국가는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의무가 있는데, 대법원의 이번 판단은 바로 이러한 점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 의문이다.
이러한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는 의료행위 및 각 직역상 면허 범위를 대강이라도 정하지 않고 법원이 최종 판단해 주기를 미루어온 탓도 크다.
과거에는 의료행위를 정의하여 면허 범위를 정하는 것이 어려웠을지 모르나 현행 의료행위들은 유형화·세분화되고 행위의 태양도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다.
이번 대법원의 판단을 계기로 의료 현장에서도 더 이상 논란이 없도록 면허 범위의 경계를 확정하는 작업을 시작할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