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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잭슨 폴록의 그림 퍼즐
잭슨 폴록의 그림 퍼즐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3.01.2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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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종 원장(경기도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
김연종 원장
김연종 원장

명의라는 말에는 함정이 숨어 있다. 잭슨 폴록의 '가을의 리듬'처럼.

명의는 시스템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언론사나 대중매체에서 홍보하는 명의를 보라. 

유명 의사에 특정 병명이 따라다니듯 ○○수술의 대가, △△질환의 대가라고 소개하고 있지 않은가. 신속히 병을 찾아 치료하는 의사가 명의이지, 누구나 알고 있는 질환을 치료하는 게 무슨 명의인가? 

문진과 청진을 하며 환자를 진료하고 정밀 검사가 필요하면 전문 분야로 안내한 동네 의사야말로 진정한 명의가 아닐까.

예로부터 소의는 병을 고치고, 중의는 사람을 고치며 대의는 사회를 고친다는 말이 있다. 

명의이자 동네 의사로 환아를 진료하다가 이제 대의의 길을 걷고 있는 의사가 있다. 그녀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지만 더는 병을 고치는 의사가 아니다. 책을 쓰고 강의하고 봉사 활동을 하며 사회를 고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가 소아청소년과 의사 부족 사태에 대해 한마디 했다. 

그녀의 이름은 범은경. 

페북에 있는 그녀의 글을 옮겨 적어 본다.


모교 후배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전화했다. 응급실 근무를 하지 않겠냐고. 돈도 많이 준다고.

이미 뒷방 신세인 내게까지 전화를 한 걸 보면 소아청소년과 의사 부족 사태는 이미 올 데까지 온 모양이다. 특히 지방은 아기가 많이 아프면 재앙 수준이다. 잠시 생각하다가 ㅇ교수 애타는 마음 이해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있어서…라고 거절했다.

사실 나는 지금 하는 일보다 소청과 의사인 것이 너무 좋은, 천상 소아청소년과 의사인 사람이다. 그런데도 이 안타까운 소청과 의사 부족 사태 해결에 눈곱만한 기여도 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는.

1. 의료의 발전, 질병의 변화를 정확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므로 다시 공부해야 한다. 현대 의료에는 대대손손 적용되며 기막힌 변명거리가 되어주는 동의보감 따위는 없다.

2. 그 긴박한 상황에 보호자에게 질병의 코스와 이제 대한민국 의료상황까지 이해시켜야 할 거다. 십중팔구 이해하지 못해서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분노를 표출하더라도 나는, 의사인 나는. 이성적이되 지나치게 이성적이지는 않게 비칠 방법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언론과 맘카페에서 세상에 없는 나쁜 사람이 된다.

3. 결과가 보호자 바람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내 잘못 말고 보호자 바람을 이루지 못한 책임. 그 책임은 때로 감옥까지 가는 것이다.

나도 한의사처럼 2년에 걸쳐 60여 회 초음파를 하고도 암을 발견하지 못해도 책임이 없다면 다시 생각해볼까. 만약 내게 먹고 살길이 막연하거나 돈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 생긴다면….

그래도 나는 위와 같은 이유로 응급실로 돌아가지 않을 결심을 바꾸지 못할 것 같다. 세상 재미없어도 피부 아름답게 해주는 의사나 요양병원 당직의사가 되겠지.

하여. '기승전 의사증원!'으로 절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물론 정부와 비의료인 국민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보기 드문 경우라 결국 가장 쉽게 여론을 돌릴 그 방법을 택하고야 말겠지만….


잭슨 폴록의 그림처럼 어려운 퍼즐 맞추기가 시작됐다.

소아청소년과 의사 부족에 대해 각계의 의견이 쏟아지는 가운데 그녀의 이성적이되, 지나치게 이성적이지는 않은 '결심'이 계속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맨 마지막에 해시태그까지 달아가며 아기들이 아프면 진짜 큰일이라고 언급한 사실은 이미 큰일 났음을 강조한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미달 사태는 일찌감치 예견된 경고였다. 출산율 감소로 인한 미래의 불투명성뿐 아니라 감정 노동이나 의료 분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심한 편이다. 

어떻게 해야 응급실로 돌아가지 않을 결심을 바꾸지 않은,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소청과 의사들을 응급실로 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 풀어야 할 난제가 수두룩 하지만 돌파구를 찾을 묘수는 없을까. 

이것은 비단 소아청소년과의 문제만도 아니다.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지금의 진료 대란은 다른 필수의료 영역으로 들불처럼 번질지도 모른다. 

그녀가 밝혔듯 의과대학 신설과 의과대학 정원 증원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는 잭슨 폴록의 그림처럼 난해한 퍼즐을 풀 수 있는 해법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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