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방향성 확정 후 2년 가까이 지지부진 "연내 불가능"
보건복지부 고민 깊어지는 이유는 '제도권 병의원'
'폐지'라는 방향을 확정하고도 공식화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CT·MRI 공동활용병상 제도 문제가 해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2021년 말 CT·MRI 공동활용병상제도를 폐지하기로 방향을 확정 지었지만 2년이 다 되어가는 상황에서도 세부내용을 결정짓지 못하고 있다.
의료자원정책과 관계자는 29일 전문기자협의회와 만난 자리에서 "제도를 시행할 것"이라는 의지를 재확인하면서도 "기존에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의료기관을 어떻게 하는 게 제일 좋은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크다. 세부적으로 좀 더 다듬어야 할 게 남아서 연내에는 제도 시행이 힘들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어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잘라 말했다.
공동활용병상 제도는 2008년 1월, 일정 규모 이하 의료기관이 CT·MRI 등 고가의 특수 의료장비 검사를 하려면 일정 기준을 갖춰야 한다는 특수의료장비 설치 인정 기준에서 나왔다. 시 단위 지역에서는 CT·MRI 허용 기준을 200병상 이상 의료기관으로 제한했다. CT는 군 단위에서 100병상까지 허용했지만 MRI는 군 단위에서도 200병상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다.
대신 200병상을 다른 의료기관의 병상과 공동 활용해서 채울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200병상 미만의 병원이 부족한 병상 수를 다른 인근 의료기관에서 빌려와 200병상을 채우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병상을 확보하기 위해 별도 비용을 과도하게 지급하는 비도덕적인 상황까지 나타났다.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정부 의지가 확실한 상황에서 의료계는 꾸준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의사회원을 대상으로 공동활용병상제 폐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28일 발표하기도 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의사 10명 중 7명(69%)이 '공동활용병상제를 폐지하더라도 1차 의료기관과 소규모 병원에서도 CT·MRI를 설치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 17%는 제도에 폐단이 있더라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대개협은 제도의 합당한 기준에 대해서도 물었다. 61%는 전문과 별 진료 특성을 고려해서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30%는 의료기관 별로 진료 전문의 수나 전문병원 등의 기준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결정을 한 후 늦어도 연내에는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그 의지가 무색하게도 좀처럼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2008년에 만들어져 15년 넘게 이어져 오던 제도인 만큼 이미 제도권에 있는 의료기관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어떤 의료기관은 CT·MRI를 설치해도 되고, 어떤 기관은 안된다고 하기가 쉽지 않다"라며 "공동활용병상 제도가 없어지면 작은 의료기관은 설치를 할 수 없게 되는데, 이미 제도를 활용해 CT·MRI를 설치한 기존 의료기관은 그대로 하게 되는 거니 기득권을 보장해 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합리적인 기준이 있고, 점차적으로 제도가 정착할 수 있도록 경과 규정이 필요하다"라면서도 "경과 규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적용 범위나 대상이 좀 달라질 수 있으니 합리적인 방안을 찾고 있다. 어느 정도 일정 범위 안에서 특정한 조건이 되면 계속 쓸 수 있게 한다든지 하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