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료와 의대정원(4)

지역의료와 의대정원(4)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23.12.0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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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정원 시리즈 : 의대정원의 본질은 포퓰리즘?>
[1] 들어가며 : 뜬금포 같은 의대정원 확대 뉴스
[2] 'OECD 의사 수 평균'이라는 가스라이팅
[3] 필수의료와 의대정원
[4] 지역의료와 의대정원
[5] 공공의료와 의대정원
[6] 의사 소득과 의대정원
[7] 초고령사회와 의대정원
[8] 의사 수와 건보재정
[9] 나가며 : 의대정원, 포퓰리즘은 안 된다

<span class='searchWord'>우봉식</span>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
우봉식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

[4] 지역의료와 의대정원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지역간 의료의 불균형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지역간 특정 질환 사망률 격차, 지역 의사 구인난, 출산 등 지역 응급의료 붕괴에 관한 뉴스들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마치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진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위험에 처해있는 듯한 인식이 들게 한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지역의료 격차에 대한 논쟁의 도화선이 된 것은 지난해 말 산청군 보건의료원에서 연봉 3억 6천만원을 제시해도 내과 전문의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된 후부터다. 그런데 그 내막을 알고 보면 이렇다. 산청군 보건의료원에서 내과 의사 1명을 구하고 있는데 담당해야 할 업무가 하루 평균 80여명 외래환자를 진료하고 내시경과 초음파 검사도 하면서 주말, 공휴일, 야간에도 내과 응급환자를 돌봐야 하는 조건이었다. 최소한 내과 의사 3명 이상이 감당해야 할 업무량이다.

게다가 당연히 작성해야 할 근로계약서도 따로 없이 '산청군보건의료원 지역보건의료사업 업무대행에 관한 조례'에 따라 '업무대행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했다. 그 계약서에는 '업무와 관련한 산청군수의 정당한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내용과 '산청군수를 피보험자로 하는 손해보험을 가입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봉직의사가 아니라 건설 시공사처럼 산청군과 의료 업무에 관한 도급계약을 맺도록 하여 모든 민·형사상 책임까지도 다 의사에게 떠넘긴 노예계약에 가까운 조건이다.

지역의료 공백의 또 다른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것 중 하나가 지역에 분만 산부인과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5월 불가항력적 분만 의료사고에 대해 정부가 100% 피해를 보상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정부도 '필수의료 지원 대책'의 일환으로, 지역 분만 수가 100% 가산, 전문의 상근·분만실 보유 기관에 대한 분만 수가 100% 가산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최근 법원의 분만 사고 배상금 판결이나 저출산 추이를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24시간 산부인과 전문의를 배치하는 분만실을 운영하기 위해선 연간 8억 6000만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분만실을 유지하려면 연간 500건 정도의 분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문의가 상근하는 전국의 분만실 보유 병·의원 457곳 중 500건 이상 분만이 이뤄지는 곳은 단 166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나머지는 분만 수익 자체로는 사실상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런 실정이다보니 「공공보건의료법」 제12조에 근거하여 의료취약지의 분만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 분만 취약지역 병원에 지원금을 주기도 한다. 강원도 철원의 경우 A병원이 분만 취약지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지난 2020년 5월 24시간 분만 병원을 개설하였으나 그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다. 2021년에 철원군에 출생등록을 한 신생아 261명 중 A병원에서 출생한 신생아는 단 32명(12.2%)으로 한 달에 2.6명 남짓에 불과했다. 산모 8명 중 나머지 7명은 수도권으로 원정진료를 다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월 말 강원도 홍천군에서도 B병원이 보건복지부 분만취약지 산부인과 지원사업에 선정돼 분만을 위한 첨단 장비를 갖추고 지난 산부인과 전문의 2명을 확보하여 24시간 분만 체계를 갖추고 진료를 시작했지만 경영난을 버티지 못하고 6개월 만인 지난 8월에 운영을 중단했다. 그런데 올해 홍천에서는 200여 명의 출생아가 태어났지만 B병원을 이용한 신생아는 6명에 불과했다. 반면 두 지역 모두 출산 이후 이용하는 공공산후조리원은 호응이 아주 좋다.

철원과 홍천의 사례는 분만과 같은 비응급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국민 인식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토면적이 좁아 1시간 이내 지역에 출산을 위한 좋은 시설과 인력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어서 예정된 분만일에 맞춰 산모가 출산할 병원 근처로 이동하고 있는 마당에 각 지역마다 분만 시설과 인력을 갖추자는 주장은 감성적으로는 일부 끌리는 측면이 있지만 효율성 측면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기반으로 의료 이용자(환자)의 인식이나 수요와는 무관하게 지역의료 불균형 해소를 위해서 의사 숫자를 늘려서 지역에 배치하여 해결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매우 단편적이고 많은 부작용만 낳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지역 의사 수가 정말로 부족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근거가 부족하다. OECD 데이터 중에는 도시 지역과 농촌지역의 의사 밀도 차이를 분석하고 있는데 2021년 OECD 자료(Health at a Glance 2021)를 재구성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도시 및 지방의 인구 대비 의사 수는 2019년 기준 OECD 평균 인구 천 명당 1.8명의 편차가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인구 천 명당 0.6명으로 지역간 의사 수 편차가 적었다. 보사연 자료에 따르면 OECD 14개 국가의 지역별 의사 수는 도시에 인구 천 명당 4.7명, 지방에 2.9명으로 도시 대비 시골 지역 의사 밀도는 61.8%에 불과했으나 우리나라는 도시 인구 천 명당 2.6명, 지방 2.1명으로 도시 대비 시골 지역 의사 밀도가 77.7%로 나타났다. 이는 도시 지역 의사 5.5명에 시골 지역 2.3명으로 92%인 일본 이어 두 번째로 편차가 작은 나라에 해당한다.

전국을 70개의 중진료권으로 구분해 각 진료권별 지역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하고, 공공보건의료 책임성을 강화하겠다는 정책도 문제가 많다. 70개 중진료권 중 가장 큰 서울동남권이 인구 289만명에 65세 이상 인구 58.6만명으로 20%의 고령화율을 보이고 있는 반면 가장 작은 강원영월권은 인구 11.3만 명에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4.8만명으로 42%에 달하며 그 다음으로 작은 경남거창권은 인구 14만명 중 65세 이상이 7.3만명으로 고령화율이 무려 52%나 된다. 이처럼 인구수와 고령화율이 천차만별인 70개 진료권을 획일적 잣대로 지정·운영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보건복지부 자체 데이터를 활용한 분석에서도 70개 중진료권 중 일반병상을 추가할 수 없는 공급 제한 지역이 39개, 공급 조정 지역이 24개였으며 병상을 추가할 수 있는 지역은 7개에 불과했다. 70개 진료권의 90%가 이미 병상이 과잉 공급상태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 지역책임의료기관이 없는 곳에 공공병원을 짓겠다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도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메가시티를 추진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마당에 '인구와 고령화율 등 편차가 심한 70개 중진료권이 동일한 진료의 질을 유지하도록 해야된다'는 발상은 평등주의 이념에 기반한 형평성의 논리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 서울 강남지역과 강원 홍천 지역에서 동일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강원 홍천 지역에 삼성의료원을 개설해야만 가능한데 그것은 전혀 비현실적이다. 그보다는 대진료권과 연계한 중진료권을 중심으로 지역의료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해외의 지역의료를 담당하는 특수 목적의 의과대학 사례로 대만의 <양명의대>, 일본의 <자치의대> 등 지역의사제도가 있으나 성과가 썩 좋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만판 공공의대라고 할 수 있는 양명의대는 1975년 설립되었는데 처음에는 공비(公費) 장학생으로 선발하여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해주고 졸업 후 의료 취약지역에서 근무하거나 제대 군인을 위한 원호 의료를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점차 지원자가 줄면서 1988년 자비로 부담하는 학생을 뽑게 되었고 2009년부터는 거의 전원 자비 교육생으로 바뀌었다. 지난 2018년 양명의대 졸업생 655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도시에 근무하는 비율이 84%, 취약지에 근무하는 비율은 1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의대 설립 목적과 달리, 대다수가 의료취약지를 떠나 근무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자치의대도 의사들 사이에 차등 논란이 생기면서 지원자가 점점 줄어서 해마다 정원이 미달이다. 국민의 인식이 자치의대를 2류로 여기면서 인기가 추락하고, 9년의 의무복무 규정에 학생들이 큰 부담을 느껴서 지원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11월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에서 전국 의사 5만6434명을 대상으로 조사(응답 6507명)한 < 2020 전국의사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사가 지방 근무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 ▲자녀의 교육문제(58.3%)를 꼽고 있으며, 뒤를 이어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는 어려움(52.6%) ▲친지나 친구 관계 등 개인적인 사회관계 단절(42.4%) ▲여가 문화시설 부족(33.3%) 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지 않으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지역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는 어렵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국립중앙의료원(NMC)과 공동으로 '(가칭)시니어의사-지역공공의료기관 매칭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의협 회원 20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은퇴 후 진료를 계속하고 싶다'고 답변한 비율이 78.8%에 달했으며 '의료취약지 근무 의향이 있다'는 답변도 63.1%나 됐다. 은퇴 후 근무를 위해 거주지를 옮길 의향이 있다는 의사는 55.2%였으며 공공보건의료기관에 재취업할 의사가 있다는 답변은 77%에 달했다.

실제 최근 의협의 시니어의사 매칭사업에 대해 신청자들의 문의가 급증하고 있으며 희망 지역 또한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돼 있고 참여를 희망하는 공공기관도 늘어나는 추세다. 정부는 이들이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야만 한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여건상 지역으로 가기 힘든 젊은 의사들을 억지로 보내려 할 것이 아니라 은퇴 후 재취업을 막는 노령연금 감액 규정 등 장애물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사업은 외면하고 오로지 의대정원 증원에만 매달리고 있으니 답답한 심정이다.

정부는 또 지방 국립대 병원을 집중 육성하고 지방의료원을 육성하겠다고 말하는데 듣기에는 그럴듯하나 이 또한 예산 낭비만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선진국들이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의료전달체계(의료이용체계)가 우리나라는 없다. 그런 까닭에 지금도 국민들은 KTX를 타고 수도권 원정진료를 다니고 있다. 빅5 병원의 지방 환자가 50%가 넘는다. 그런데 앞으로 수도권에 대학병원 분원 7000병상을 증설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지방 환자는 더욱 수도권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이처럼 수도권 병상을 억제하는 정책이 전혀 없이 지방 국립대 병원에 재정을 지원하는 것은 결국 국민의 혈세만 낭비하고 지역의료의 붕괴 역시 전혀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지역의료만이 아니라 저출산으로 인한 '지방소멸'을 염려해야 할 상황이다. '지방소멸'은 지난 2014년 마스다 히로야(増田寛也)의 저서 <지방소멸>을 통해 알려진 용어로, 저출산과 고령화의 여파 속에 대도시로의 인구 유출까지 겹치면서 지역의 인구가 감소하고 쇠퇴하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 우리나라도 일본을 따라가는 모습이다. 그러한 가운데 지역의료 정책을 국가 전체의 인구 변화와 무관하게 계획하고 추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부는 "지역에 환자가 없지 의사가 없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지금 당장 나타나고 있는 지역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10년~15년 후에 일할 의사 숫자를 늘리자는 비현실적 이야기만 녹음기처럼 반복할 일이 아니다. 먼저 지방소멸의 원인이 되고 있는 지역 인구 감소 추이에 따른 지역의료 계획을 제대로 수립해야 된다. 그리고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여 지역환자의 무분별한 수도권 원정진료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확보해야 된다.

또한 비현실적인 70개 중진료권 대신 17개 광역시도 단위 권역별 산하 인구 30만 단위의 중진료권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하여 시도지사 책임하에 응급의료체계를 재편성하고 비응급 필수의료 분야의 경우 대진료권 내에서 운영의 효율성이 발휘되도록 새롭게 설계해야만 한다. 지역의료기관 종사자들에 대해서는 근무 및 정주 여건을 개선하고 공공정책수가를 국립대 뿐 아니라 사립대 병원, 지역 민간병원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될 것이다.

더불어 필요하다면 현재 지자체에서 시행 중인 버스 준공영제를 필수의료에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지역의료 붕괴를 막을 시간이 10년씩이나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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