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의 Health at a Glance 2023을 보면 한국은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서비스에 접근성이 좋은 나라로 분류되어 있다.
미국은 한국보다 2.5배 더 많은 비용을 쓰지만 접근성은 우리와 비슷한 지점에 위치해 있다. 또한 거주 지역의 양질의 서비스 제공에 만족하는 인구의 비율은 한국이 78%로 OECD 평균인 67%보다 훨씬 높고 일본의 76%보다도 더 높은 순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의사부족이라는 나라에서는 나올 수 없는 통계다. 의사증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의사가 부족하다는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기껏 인구당 의사수 하나에 매달리고 있다.
한국이 OECD 평균에 비해서 인구당 의사수가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의사수가 적다는 것이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의사가 부족할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은 적은 의료비용으로 접근성이 월등히 높은 나라로 분류되어 있다. OECD 자료에 따르면 비용은 우리보다 많이 들이면서 한국보다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지는 나라들로 캐나다, 영국, 뉴질랜드, 프랑스 등이 포진해 있다.
한국은 의사수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의사당 환자수가 2000년 초반 통계가 생성될 시점부터 지속적으로 감소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환자 증가폭보다 의사 증가폭이 더 크다는 말이다. 의과 전체의 의사당 외래환자수는 2003년 8751명이었지만 2021년 5964명으로 무려 31.9%의 감소폭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대형병원은 예외적으로 외래환자수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환자가 줄어들지만 대형병원으로의 쏠림 현상은 해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환자가 쏠리고 있는 대형병원에서 전공의 전체 숫자가 2013년 1만 2338명에서 2022년 9637명으로 3000명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 인력은 대형병원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인력이다. 그런데 그 핵심인력에 공백이 생긴 것이다.
지난 10년동안 전공의 모집 정원에 급격한 변동은 없었다. 다만 몇몇 과에서 전공의 수련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1년을 단축했었다. 수련기간 단축은 단축된 1년차에 해당하는 전공의 수만큼의 노동력 상실을 가져온다.
전공의 수련기간은 해당 전공과목의 학회에서 줄였는데, 학회가 의사를 고용하는 것은 아니다. 줄어드는 전공의의 노동력을 대체하려면 적어도 그 2배에 해당하는 전문의를 고용해야 하는데 학회와 병원 경영자들 간에 손발이 맞지 않았다.
그렇게 노동력 손실이 단기간에 발생하면서 남은 전공의, 전임의, 교수의 업무가 과중하게 되었다. 입원전담의를 도입했으나 줄어든 전공의를 대체하지 못했고, 그 결과 과중한 업무로딩으로 전공의, 전임의의 기피가 심화되고 교수의 퇴직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전체 의사수급과는 관계없는 요인으로 대형병원의 인력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환자는 대형병원으로 쏠리고 있는데 인력공백에 대한 정밀한 대책 없이 수련기간이 단축되면서 환자 적체 현상이 생겼고 이로 인한 과중한 업무 부담으로 의사들이 전공의, 전임의, 교수 가리지 않고 대형병원 근무를 기피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사정이 이런 것을 몇몇 학자들이 침소붕대하며 의사 부족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의사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동네의원은 전문과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의원당 환자수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내원일당 진료비가 꾸준히 오르며 환자 감소를 상쇄하고 있지만 환자 감소의 추세를 버텨내지 못하는 의원은 결국 전문과 간판을 떼고 일반의원으로 넘어가는 현상이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 세상에 나중에 언젠가 전문과 간판 뗄 작정하고 그 힘든 전공과정 거쳐서 전문의 취득하고 전문과 개업하는 사람은 없다. 그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돈 벌려고 전문과 간판 떼고 미용성형으로 넘어갔다며 생채기를 내는 사람들이 한국의 의료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비극이다.
이 사회는 의사들을 한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 취급을 하는데 왜 우리 의사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면 안되는가? 의사들이 불로소득자들도 아니고 정부도 인정하는 저수가 속에서 환자들을 열심히 치료하며 돈을 버는데, 그런 의사들을 '특권층'이라고 비난하는 사회에서 뭘 더 바라겠는가?
건강보험 통계 중에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이란 항목이 있다. 전문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만 전문과목을 표시하지 않고 일반의원으로 개업한 의원을 지칭하는 것이다.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은 2004년 3819곳이었지만 2022년 6277곳으로 증가했다.
한국은 의사면허를 취득하면 대부분 특정 전문과목을 선택하고 전공의 수련을 통해서 전문의가 된다. 그래서 일반의원의 증가 중 많은 부분은 자신의 전문과목을 포기한 전문의들로 채워진 것으로 판단된다. 일반의와 전문과목 미표시 전문의들로 구성된 일반의원의 외래환자도 예외 없이 감소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2004년 1만 5777명의 외래환자가 2021년 1만 620명으로 무려 32.7%의 감소폭을 보여주었다.
현재의 통계로는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에 어떤 전문의들이 포진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의원 전체의 각과 전문의 수와 각과 의원의 수에 대한 통계는 산출되기 때문에 미루어 짐작해 볼 수는 있다.
먼저 몇몇 과만 살펴보도록 하자. 2022년 현재 의원 전체의 내과 전문의는 7930명인데 내과의원은 5286곳에 불과하다. 외과는 전문의 2600명에 외과의원 1037곳이고 산부인과는 전문의 3242명에 산부인과 의원 1312곳이며 소청과는 전문의 3289명에 소청과 의원 2135곳이다. 가장 심각한 과는 가정의학과인데 가정의학과 전문의 4792명이 의원에 있는데 가정의학과 의원은 858곳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전문과에서 적게는 1000여명에서 수 천 명까지 자기 전문과 간판을 떼어낸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하나의 의원에 여러 명의 전문의가 있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힘들게 전공과정 거쳐서 전문의 취득한 다음에 전문과 의원을 개업해 버티고 버티다가 환자 감소의 추세를 피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전문과 간판을 뗀 전문의들이 수 천 명에 이르고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수 많은 전문의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전문과 간판을 떼든 말든, 의사들이야 죽든지 말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가 대형병원에 환자 적체가 발생하자, 때는 이때다 하고 의사수가 적다고 침소붕대하며 의사증원을 외치는 자들에게 무기력하게 굴복할 것인가?
이들은 의사들의 사정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의사 수입 떨어뜨리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이제 의사 14만명에 건강보험 100조원의 시대가 되었다. 의사수의 증가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축에 속한다. 그런데도 의사가 부족하다며 더 파격적으로 의사수를 늘리고자 한다. 그렇게 의사수를 늘리면 우리 의사들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릴 것인가?
결국 종착역은 총액계약제가 될 것이다. 한국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든 의사들의 월급을 국가가 책임지고 의사연금을 최고로 주는 그런 나라를 흉내내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대만식 총액계약제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십 여 년 전에 대만의 의사들이 자기들과 같은 총액계약제는 결사 반대하라고 우리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대만식 총액계약제는 행위당 수가가 아닌 행위당 포인트를 주고 1년 단위로 모든 의사들의 포인트를 모아서 주어진 총액을 그 포인트로 나누어 포인트당 수가를 주는 방식이다.
즉, 행위를 많이 하면 할수록 수가가 깎이는 부당한 제도다. 총액은 고정시키고 일은 경쟁을 붙여서 죽도록 일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지금처럼 지리멸렬해서는 우리 눈 앞에 지옥문이 열리는 것이다. 우리 모두 정신 바짝 차리고 각성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