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증원과 관련해 정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찬반으로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정부는 지역과 필수의료 확충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의대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의협은 지역과 필수의료에 종사할 의료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며, 의사 수가 부족한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따져 의대정원 증감을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대정원 문제는 문재인 정부 시절 의대정원 확대 정책을 시행하려다 의협의 반대로 만들어진 9.4 의정합의서가 논의를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정부가 합의서에 근거해 의정협의체 구성을 요구했고, 현재 가동 중인 의료현안협의체가 의료 현안과 함께 의대정원 문제를 다루는 통로로 일원화하기로 하고 논의 중이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 차관은 갑작스럽게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의대정원 문제 해결과 관련해 정부가 '수용성(受容性)'이란 단어를 등장시켰다. 의대정원 확대를 의사 집단이 따라야 하는 이유로 차관은 국민의 수용성이 중요하다고 선동했다.
수용성이 곧 국민의 뜻으로 해석하고 국민이 원하니 의사 집단은 의대정원 확대에 찬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어려운 정책 결정을 여론에 맡겨 추진하려는 정부의 안이함과 정책 입안자의 발상에서 정부의 존재 이유를 찾기 어렵다.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이 과연 국가 미래 의료에 도움 되는 일인지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공공의 선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국가 중대 정책 결정에 있어 여론을 우선하는 방식에 따라야 한다는 정부의 무모한 주장에 의료 전문가 집단으로서 동의하기 어렵다. 자칫, 사회가 집단적 가치에 매몰되어 다양성이 사라지고 전문가의 의견에 눈을 감으면, 전체주의로 퇴행하는 결과가 빚어질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의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하는 주장을 의대정원 확대 논리 근거로 사용하는 보건복지부 차관의 정치적 선동은 의대정원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와 의료체계 붕괴를 걱정하는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역으로 의사와 국민의 수용성을 받들어 의대정원 확대를 철회하는 것이 위정자로서 적절한 자세다.
정치인이 정치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국민이 원하는' 즉, 수용성은 정치적인 용어다. 이를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 결정 요인으로 차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전형적인 인기영합적인 대중 선동 용어를 사용해 국민과 전문가 집단을 기만하고 오직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한 필살기로 '수용성'을 내세우는 선동으로 의대정원을 확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