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교수들 "복도·가건물서 수업할건가, 의학교육 이대로면 파국"

의대교수들 "복도·가건물서 수업할건가, 의학교육 이대로면 파국"

  • 고신정 기자 ksj8855@doctorsnews.co.kr
  • 승인 2024.05.2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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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전의교협 27일 기자회견, 각 대학 총장에 입시요강 발표 중지 요구
정원 증원시 1.2조원 재정· 수백 교수 인력 필요, 수요만 있을 뿐 대책 '전무'
대법원 결정 앞두고 정부 '시간끌기' 비판...사법부에 '소송 지휘권' 발동 요청

ⓒ의협신문
김종일 서울의대 교수

"복도에서, 가건물에서 수업할 겁니까? 실습시험을 감독할 교수는 확보할 수 있나요? 카데바는 확보할 수 있나요? 타과 교수는 모르는, 총장은 더 모르는, 공무원과 정치인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의대 수업현장의 모습입니다.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수없이 호소하는데도 소 귀에 경읽기입니다. 의대 교수들은 정말 답답합니다."

정부가 내년 의과대학 입학정원 1.5배 증원을 강행하고 나서자, 의대교수들이 다시한번 목소리를 내고 나섰다. 이대로라면 의학교육은 파국에 이른다는 경고다.   

대한의사협회와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2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이 밝혔다.

# 유례없는 급격한 의대증원...한방에 150% 증원 우리나라 밖에 없다

의대교수들은 이 같이 단 시간내에 현 정원의 150%에 이르는 의과대학 교육인원 증원이 이뤄진 나라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결정이라는 의미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영국이 2000년 5700명이었던 의대정원을 2021년 1만 1000명으로 93% 확대했으며, 프랑스는 2000년 3850명에서 2020년 1만명으로 160%, 미국은 2000년 1만 8000명에서 2021년 2만 8000명으로 57% 늘리는 등 주요 선진국들이 의대정원을 대폭 늘려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떤 국가도 한 한 해에 150%에 이르는 의대증원을 감행한 곳은 없다. 가천의대의 경우 그 증가폭이 무려 325%에 이른다. 

김종일 서울의대 교수는 "주요 선진국에서는 그 당시 연간 의대 정원의 2.6%~8%에 해당하는 학생 수만큼 20년, 21년에 걸쳐 늘여왔다"면서 "선진국에서 일년에 10% 이하로 의대 입학정원을 늘리는 이유는 10%가 넘는 숫자를 단 기간에 늘리면 의학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시설·인력·장비 등 1조 2000억원 재정 필요, 대책 '전무'

급격한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필연적으로 추가 비용을 발생시킨다. 늘어난 학생만큼 시설·인력·장비 등이 추가로 필요한 탓이다. 

이 같은 사실은 정부도 알고 있다. 실제 모 사립대학이 정부에 제출한 수요조사서에 따르면 이 대학 한 곳에서만 7년간 403억원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학에서만 당장 12명의 기초교수와 강의실 등 시설 및 기자재 확충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수요만 있을 뿐 재정대책은 어디에도 없다. 해당 대학은 정부에 낸 수요조사서에서 필요한 비용들을 모두 "정부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건의한다"고 적었다. 특히 기초교수의 경우 현재도 미달이라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한다. 

김종일 교수는 "현장에서 교육을 못한다는데 도대체 학생들만 늘려두면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면서 "이미 씨가 마른 기초교수가 하늘에서 떨어지느냐. 신축건물 부지도 확보되지 않았다. 카데바도 지금의 2배가 필요한데 당장 구할 방법이 없다"고 꼬집었다.

# 의대교수 95% "증원된 인력 교육  못한다"

의과대학 교수들은 정부 정책대로 의과대학 정원이 증원된다면,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전의교협이 전국의과대학 교수들을 대상으로 현 교육 여건으로 정원 증원분을 수용할 있으냐고 물은 결과, 건물·시설·교수·교육병원·전체역량 등 5개 문항에서 공히 응답자의 95% 정도가 "그렇지 않다" 또는 "매우 그렇지 않다" 고 답했다. 

특히 교수요원 확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매우 어렵다는 답이 전체의 85%로 가장 높았다. 전국에서 일시에 특히 기초의학 교수를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다.

김종일 교수는 "제발 정치적 이해를 뒤로 하고 제대로 된 환경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게 해달라"면서 "정부는 지금이라도 무계획적·즉흥적·비현실적 급속 증원 계획을 철회해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전의교협은 이날 성명서를 내어 32개 대학 총장들에 "관련 법원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대학 입시요강 발표를 중지해달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사법부에 "의학교육현장 붕괴를 막을 수 있도록 정부에 '대법원 최종 결정 전까지 입시요강 발표 등의 행정 절차를 중지하고, 대법원 재판에 즉시 협조하라'는 '소송지휘권'을 발동해달라"고 밝혔다.

의료계 의대증원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이병철 변호사는 "대법원 재항고 후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정부는 소송 대리인 선임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시간끌기"라며 "대법원은 최종심이며 헌법이 부여한 최종 심사권을 갖는다. 대법원이 이 사건에 대해 최종 결정을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의협신문
ⓒ의협신문

전의교협 성명서 

정부 회의에서는 '다수가 내린 결론'의 맹점을 찾기 위해 '용감하게 반대하는 의견'을 내는 사람 즉, '10번째 사람'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국가의 존망을 가를 수 있는 일이 흔하고, 절대 권력에 의해 비판 없이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경우는 그 폐해가 전 국가에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조직의 위기 관리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소수의견을 경청할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료농단, 교육농단'은 '생산적인 비판 과정 없이 일사불란하게 도미노처럼 붕괴'되는 '맹목적인 결론'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태를 해결하여 국가를 위기로부터 구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국가안전보장회의의 10번째 사람 규칙'을 우리 의료계가 따라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낍니다. 

2025학년도 대학입시모집요강은 입시생과 학부모의 혼란을 예방하고 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법령에 기재된 '사전예고제'에 따라 2023년 5월에 이미 확정·발표되었습니다. '천재지변이나 대학구조조정'도 아닌 상황에 2025학년도 입시 8개월도 남 지 않은 2월 6일, 정부는 갑자기 의대입학정원 2천명 증원을 발표하여 2025학년도 입시 현장을 대혼돈의 장으로 바꿔 놓았고, 입시생과 학부모를 큰 혼란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주요 일간지 사설에 '2천명은 어느 한 특정인에 의해 내려진 결정'이 아닌가 싶다는 문구는 첫번째 도미노이 쓰러지는 모습을 시사합니다. 

첫번째 도미노 이후, 복지부 장관과 차관은 전 국민 앞에서 '국민건강과 생명을 책임져 온 핵심 소수 집단인 전공의'를 향해 온갖 막말과 협박 도미노을 날렸고, 이제는 교육부 장관, 32개 대학 총장, 대교협 도미노이 일사불란하게 쓰러졌습니 다. 

그 도미노 게임의 마지막에는 사법부와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 32개 대학 총장 도미노 이 있습니다.

지역인구는 소멸되어가고 초등학교 폐교 소식이 줄을 잇는 상황에 수도권 과밀현상을 해결하겠다고 인구를 년간 2천만명씩 늘리자는 정책을 세운다면 누구나 '무슨 궤변이야?' 할 것입니다. 수도권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적어서 그런 것은 아닌 것처럼, 현재 무너진 필수의료, 지역의료의 원인이 전체 의사 수가 모자라 발생된 일은 아닙니다.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회생 즉, 공공의 복리를 위해서는 의사를 양성하는 기관, 의과대학 교육현장이 붕괴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40명 학생을 정원의 학교에 130명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마치 '40명 정원인 버스에 40명의 325%에 해당하는 승객 130명을 태워라'고 하는 버스회사 사장의 명령과 유사합니다. 이런 상황에 승객의 생명은 아무도 담보하지 못하고 버스는 그대로 고장나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의학교육 현장도 매한가지입니다. 의학교육 현장의 붕괴는 그 여파가 십년 넘게 지속됩니다. 이렇듯, 연간 2천명 의대정원 증원은 공공복리의 근간인, 의학교육 현장 을 붕괴시키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전 세계 주요 선진국인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도 20년~21년에 걸쳐 5700명 ~ 1만명을 늘렸습니다. 즉, 연간 정원의 10% 이하인 2.6% ~ 8%만 증원한 것입니다.

32개 대학 총장께서는 이미 2023년 5월에 확정발표했던 2025학년도 대학입시요강을 수정하여 발표하는 것을 지금 당장 중지하여 주십시오. 

전국 40개 의대 재학생 1만 3천명이 제기한 '의대정원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항고심 고법 세 건과 부산대 의대 재학생 4명이 포함된 재항고심 대법 한 건이 5월 30 일 이내로 결정되기를 소망합니다. 신숙희 대법관께서는 지난 달 국회 인사청문회 에서 "정치·사회 영역에서 타협해서 해결돼 법원의 영역에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신 대법관님과 동일한 마음입니다. 안타깝게도, 그 영역에서 처리되지 못한 의료농단, 교육농단이 이제 대법과 고법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법원에서 재항고 건의 최종 결정을 위해 복지부와 교육부에 다음과 같은 소송 지휘권을 발동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복지부와 교육부는 대법원 최종 결정 전까 지 입시요강 발표 등의 행정절차를 중지하고, 대법원 재판에 즉시 협조하라.'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당신이 다수의 생각에 동조하고 있다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조언을 말씀드리며, 우리 사회의 소수인 의료인의 간곡한 외침을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4년 5월 27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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