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원 인력 필수·지역 연계방안 전무...졸업 후 인기과 몰려가도 방법 없어
2020년엔 공공의료 활용방안 등 선 고민..."대규모 증원 매몰, 순서 틀어져"
필수의료 살리기 구호 뿐...'필수과=낙수과' 전락, 신규의사 유인책도 전무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대규모 증원에만 매몰되면서, 정작 의료인력을 확충해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던 정책 목표가 실종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늘어난 1500명의 의과대학생 가운데 몇 명이 향후 필수진료과에 몸 담을 지는 현 시점에서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들의 진로와 관련해 어떠한 제동장치도 갖춰지지 않은데다, 스스로 소위 인기과를 버리고 필수과를 선택할 만한 유인도 존재하지 않는 탓이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30일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포함한,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의학전문대학원인 차의과대를 포함해 내년 40개 의대 및 의학전문대학원의 모집인원은 4695명이 됐다. 이는 현 정원에 비해 1.5배 이상 많은 숫자다.
문제는 늘어난 정원이 과연 당초 정부가 주창했던 필수진료과나 지역의료를 살리는데 투입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당초 정부는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사례 등을 들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위기 극복을 위한 의료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의대증원이 그 첫번째 단계이며, 10년의 의사인력 양성 체계를 고려했을 때 당장 내년부터 대규모 의대증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늘어난 1500명의 학생들이, 정부의 표현대로라면 당장 붕괴 위기인 필수·지역의료에 투입될 지는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 대규모 의대증원만 확정되었을 뿐, 늘어난 인력을 어떻게 필요한 분야에 유입시킬 지 그 대책이 전무한 까닭이다.
앞서 2000년 의대증원 논란 때 당시 정부여당은 의대증원과 더불어 공공의대 신설과 지역의사제 도입 등을 함께 검토했었다. 일부 의사 부족 현상은 '분포와 배분'의 문제로, 증원된 인력들이 이 같은 인력부족 현상이 목격되고 있는 공공의료와 지역의료로 직접 투입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구상했던 바다.
공공의대의 경우 국가가 운영하는 의과대학으로, 해당 대학 학생들은 졸업 후 수년 간 의료취약지 혹은 공공의료원 복무가 의무화된다. 해당 대학 학생은 이 같은 조건을 인지한 상태에서 입학을 결정하고, 국가 장학금으로 교육을 받으며, 졸업 후에는 일정기간 공공의료 현장에 남게 된다.
지역의사제는 이를 기존 의대에 적용하는 구조다. 의대가 지역의사 선발전형을 따로 만들어 학생을 선발하고, 해당 전형 학생들은 국가 장학금으로 교육 받은 뒤 해당 지역 의료시설에 일정기간 의무복무 한다는 것이 큰 골자다.
면허제한 조치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긴 했지만, 적어도 의사인력을 늘리되 늘어난 인력을 어떻게 활용할 지, 어떻게 하면 이들을 공공의료나 지역의료에 활용할 수 있을지 그에 대한 고민과 그림이 있었다는 얘기다.
내년 증원 결정된 1500명은 입학 정원만 늘었을 뿐, 기존의 입학전형을 그대로 따른다. 현재 의대생과 마찬가지로 졸업 후 어떠한 제약이나 조건도 없이 자신의 진료를 선택하면 되는 일이라, 졸업 후 진로를 강제할 수 없다. 지역 인재 비중을 늘렸다고는 하나, 이는 선발의 기준일 뿐 이들이 학업을 마친 뒤 지역에 남고 말고는 전적으로 개인 선택의 문제다.
신규 의사인력들이 필수과를 선택할 만한 획기적인 유인도 없다. 오히려 금번 의대증원 사태로 그나마 있던 지원자마저 맥이 끊겼다는 것이 의료계의 지적이다.
정부는 의대증원과 더불어 필수의료패키지 정책을 추진, 필수의료 수가를 인상하고 지역수가를 도입하는 등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대책은 여전히 모호하다. 그나마 확정된 것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에 월 10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정도다.
결국 현 상황에서 이들의 필수의료 혹은 지역의료 선택을 기대하는 유일한 길은 '의사가 차고 넘치면 필수·지역의료로도 흘러가겠거니' 하는 막연한 믿음 뿐이다.
의료정책에 능통한 정계 관계자는 "정부가 대규모 의대증원이라는 숙제에만 매몰되면서 일의 순서가 크게 틀어진 것"이라면서 "현 상황에서 의대정원 증원으로 필수인력 확충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로지 낙수효과 뿐"이라고 평했다.
"대규모 증원으로 인해 의료시장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고 이는 결국 인기과 쏠림, 미용·성형 등 비급여 진료 확장을 더욱 가속화시킬 수 밖에 없게 됐다"고 전망한 이 관계자는 "증원 낙수효과 마저도 사실상 헛된 희망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소아과 오픈런 등을 문제삼아 의료인력 확충과 정책 패키지를 통해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공언했으나, 남은 것은 의대 증원 뿐"이라며 "의대증원 논란 속 '필수과=낙수과'라는 자조가 의료계에 확산됐고 그나마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던 필수의료 의사들이 낙수의사로 전락했다. 이는 두고두고 필수과 육성의 패착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