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장 간담회 불참부터 협상 과정 생중계까지 흥행 성공
병원·의원 발목 잡은 환산지수 쪼개기, 앞으로도 남은 과제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의 첫 수가협상이 지난달 31일 '결렬'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수가협상 역사상 전례 없는 새로운 시도를 했고, 단순히 '수치'가 아닌 불합리한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추면서 눈길을 끌었다.
환산지수 협상 과정을 보다 폭넓은 대상에게 알리면서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각인시켰다. 반면, 환산지수 차등화 문제는 앞으로도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로 남았다.
눈길 끈 '새로운' 시도 관심집중
의협은 2008년 유형별 협상으로 전환 이후 관례적으로 자리 잡아왔던 부분들에서 이례적인 선택을 해왔다.
첫번째가 협상 시작을 알리는 기관장 상견례 불참. 임현택 회장이 취임한 후 갖는 첫 대외 일정이라는 점에서 그의 참석 여부가 관심 대상이었는데 의대정원 일방적 확대 추진에 따른 의료계 현실이 엄중한 상황을 인식해 형식적 자리를 참석할 수는 없다는 결단을 내린 바 있다.
다음은 협상에 들어가기 전부터 선결조건을 선제적으로 제시하며 공격적인 협상을 예고했다. 협상에 들어가기 전 최안나 총무이사 겸 보험이사는 1인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더불어 협상의 모든 과정을 의협 유튜브 채널인 KMA TV에서 생중계 하겠다고 공언했다.
건강보험공단은 협상 생중계를 거부했지만, 적어도 의협이 주장하는 환산지수 인상의 당위성을 대회원에게 알릴 수 있었다. 실제 지난달 23일 열린 2차 수가협상 생중계 조회수는 1일 기준 3만4000회를 넘어섰고, 31일 열린 마지막 협상 생중계는 9000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수가협상에 처음 참여한 허지현 의협 법제이사는 "정보공개법에 따르면 협상 과정에 있는 내용들은 일종의 정보라고 볼 수 있다"라며 "이 정보들이 과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만한 어떤 사정이 있는 지는 건보공단에서 먼저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가협상이 이렇게나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직접 보게 됐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라며 "보건복지부나 건보공단이 명백하고 단순한 언어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로 협상을 진행하기를 간곡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협상 발목 잡은 환산지수 쪼개기
정부는 지난 2월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의료행위별 환산지수 차등화, 일명 환산지수 쪼개기를 시사한 바 있다. 이미 지난해 환산지수 협상 후 의원급에 먼저 환산지수 쪼개기를 시도했다가 불발로 돌아간 일도 있다.
그럼에도 건보공단 협상단의 시도는 구체적이었다. 의원과 병원 유형에 환산지수 차등 적용 일환으로 각각 0.2%, 0.1%의 추가 인상률을 제시하는 식이었다.
이같은 방침은 결국 의원과 병원 유형 협상의 발목을 잡았다. 환산지수 인상에 투입하는 재정의 70% 이상은 의원과 병원 유형에 돌아가는 데 이 두 유형 모두 '결렬'을 선택한 것이다. 실제 내년도 수가 인상에 투입할 재정은 1조2708억원 규모인데 이 중 병원과 의원에 들어가는 재정은 각각 5774억원, 3246억원으로 전체의 71% 수준이다.
의협은 31일 비교적 이른 시간인 밤 10시 15분경 협상 거부를 선언하고 협상장을 떠났다. 병협도 31일 자정을 넘긴 1일 새벽 3시 30분경 협상 결렬을 결정했다. 환산지수 차등화는 안될 소리라는 것이다.
의협 집행부는 이미 협상의 선결조건으로 환산지수 차등화는 절대 안된다고 못을 박은 상황. 단순 수치보다 제도 개선이 먼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병원도 환산지수 차등이 아니라 상대가치점수를 조정할 문제라고 건보공단에 맞섰다.
건보공단 측이 최종 제시한 1.9%, 1.6%라는 인상률 자체도 워낙 낮았지만 환산지수를 차등화 하겠다는 계획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데서 의원과 병원은 한목소리를 낸 셈이다. 임현택 회장은 협상 결과를 놓고 개인 SNS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했다. 임 회장은 "1.6%, 1.9% 이게 윤석열 대통령이 생각하는 사람 목숨값"이라며 "아이들, 임산부, 암환자 목숨값이다. 정상적인 사람이 운영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전했다.
환산지수 차등화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화두로 남아있을 예정이다.
김남훈 건보공단 급여상임이사는 협상이 끝난 후 출입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환산지수가 모든 행위에 일률적으로 인상돼 필수의료 분야 및 저평가 행위 유형에 대한 보상 격차가 심화되는 문제가 있어 작년에 이어 올해 협상에서도 환산지수의 획일적 인상 구조를 탈피하고자 논의했다"라며 "의협은 환산지수 차등화 절대 불가를 주장하고 병협은 상대가치점수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 등으로 수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환산지수 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해보자는 의도다. 앞으로 제도 발전 협의체에서 환산지수 차등화에 대해서는 계속 논의를 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1일 수가협상 결과를 최종 확인하기 위해 열린 재정운영위원회도 다시 한 번 환산지수 차등을 부대의견으로 담았다. 재정위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205년도 요양급여비용을 정할 때 환산지수 인상분 중 상당한 재정을 필수의료 확충을 위해 수술, 처치 등 원가 보상이 낮은 행위유형 조정에 활용할 것을 권고한다"고 결의했다.
이번 협상에서 결렬된 병원과 의원 유형 환산지수는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이달 30일까지 건정심에서 의결하고, 그 결과에 따라 연말까지 그 내용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