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인 교수 "의사보고 환자 돕지 말라는 사법부의 가치 판단"
법조계서도 '엉터리 판결'…"의협 차원에서 법리적 대응해야"
사법부가 최근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사에게 금고형 10개월의 형사처벌을 내리자 의료계 내에서는 의사를 강간미수범과 동일시한 판결이라는 강한 반발이 나온다.
형사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방어 진료를 해야한다는 진료 현장 분위기 변화도 함께 감지된다.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은 지난해 2월 파킨슨병 환자인 피해자에게 맥페란 2ml를 투여해 전신쇠약, 일시적 의식상실, 발음장애 및 파킨슨증 악화 등의 상해를 입게 했다며 피고인인 의사에게 금고 10월, 집행유예 2년에 처하는 판결을 내렸다.
피고인과 검사 모두 양형이 부당하다며 진행한 항소는 지난달 30일 창원지방법원 제 3-2형사부에서 항소 기각 판결을 선고하며 마무리됐다.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을 받는다는 재판 결과는 의료 현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소신' 진료가 아닌 '소심' 진료를 해야한다는 것.
해당 판결 직후 의사들이 '두려움이 생긴다', '실수하면 잡혀간다', '방어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 등의 모습을 보이면서다.
김대중 교수(아주대병원, 내과)는 페이스북을 통해 "처방약과 파킨슨병의 일시적 악화가 인과관계가 성립한다해도 형사 소송이 벌어지고 금고형을 받을만 하지는 않다"며 "고의성이 없지 않나, 항상 약을 쓸 때 주의는 해야하지만 부작용이 생겼다고 형사처벌을 가한다면 방어적 진료를 할 수 밖에 없다"고 짚었다.
남궁인 교수(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는 "판결이 참혹하다. 판결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고려하지 않았다"며 "맥페란은 환자를 도우려고 처방한 것이고 부작용이 있더라도 일반적으로 대처할 수 있으며 비가역적인 부작용은 대단히 드문 의약품이다. 약을 처방할 때마다 모든 부작용을 고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사회 규범이 있고 처벌이 무서우면 하지 않게 된다"고 말한 남 교수는 "수만 명을 옳게 진료해도 한 명에게 부작용이 생기면 음주운전 사망이나 강간 미수 등과 같은 금고 10개월이다. 이번 판결은 의사에게 명백히 환자를 돕지 말라는 가치 판단으로 보인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길 주저하면 옳은 가치가 실현된 세상인가? 판결 하나가 의료계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고 꼬집었다.
성혜영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는 "진료 및 약제 투약과 같은 의료행위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나쁜 결과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게 된다면 어느 의사가 위험 부담을 무릅쓴 채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지키려 나서려 할까?"라고 반문하며 "어려운 시대에 필수의료를 지키는 의사 소명의 빛을 끄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의사 커뮤니티에서도 해당 판결 직후 병원에서 실제 방어진료를 시행하고 있는 사례들이 공유되고, 이에 따른 환자의 불편함도 알려진다.
A 의사는 "맥페란이 효과가 좋은걸 알지만 절대로 병원에 안 가져다 놓고 병원 응급실 가서 맞으라고 한다"며 "일시적 부작용이 생기면 생트집을 잡는 환자와 환자보호자, 그리고 거기에 동조하는 판사들 때문"이라고 전했다.
허리 주사를 원한 80대 환자를 돌려보낸 B 의사 사례도 있었다. B 의사는 "허리 아프다고 재방문한 80대 할머니 환자를 예전 같으면 워닝하고 주사를 놔줬을텐데 내과 가서 검사 다하고 이상없으면 놔주겠다고 돌려보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도 맥페란 사건의 판결이 '엉터리'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의협 차원에서 대법원에 법리적 대응을 해야한다고 촉구한 이병철 변호사는 "맥페란 처방이 의사의 과실로 볼 수 없다, 다른 의사들이 진료했다하더라도 동일한 처방을 했을 것이다고 대응해야한다"며 "최근 의료대란으로 대법원에서도 의사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신경쓰고 있는만큼 명분만 잘 제공한다면 무죄취지로 대법원이 파기환송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분석했다.
한편, [의협신문]이 입수한 1심·2심 판결문을 모두 살펴본 결과, 1심에서 피고인은 의사로서의 문진의무를 제대로 이행했고, 업무상과실이 없음을 주장했다.
아울러, 업무상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업무상과실과 피해자에게 발생한 상해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맥페란 주사를 처방하면서 피해자의 파킨슨병의 기왕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과실로 인해 피해자에게 상해의 결과가 발생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피고인과 변호인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료는 의사의 의학적 지식등의 우위가 전제되는 것으로 의사는 먼저 환자의 병상과 기왕력 등 환자로부터 진료에 필요한 사항을 적절히 끄집어내야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환자에게 '어디 불편한 곳이 있는지'라고 질문한 것으로는 문진의무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해당 질문은 환자에게 진료를 의뢰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 즉 현재의 건강 상태에 관한 질문을 한 것에 그칠 뿐, 그것만으로는 기왕력 등을 확인하는 문진의무를 충분히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피고인으로부터 기왕력 등에 관한 질문을 전혀 받지 못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먼저 자신의 기왕력을 피고인에게 고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책임이 면제된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