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홍 장관이 독자적 2000명 결정?…"대통령실서 찍어누른 것"
민주주의 훼손 의대 증원 정책, 미래세대 의료비 증가 이어질 것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의대정원 2000명 증원 정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는 발언을 통해 의사들 사이에서 '속이 시원하다' 등의 반응을 얻으며 주목 받는 의료인이 있다.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한 박형욱 부회장은 [의협신문]과 인터뷰에서 현 의대정원 증원 정책 과정을 두고 "매우 비정상적"이라며 다시한번 비판적인 평가를 내렸다.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대정원 증원 규모를 독자적으로 결정했다고 한 주장에 대해서도 강한 의구심을 품으며, "대통령실에서 찍어 누른 결과라고 판단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연세의대를 졸업해 예방의학 전문의인 박형욱 부회장은 2000년 의약분업 사태로 인해 법 공부를 시작한 변호사이기도 하다. 현재에는 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경험과 식견을 토대로 수많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을 교육하고 있는 박 부회장은 현 사태를 겪고 있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크다"며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긴 인생에서 1년, 2년은 아무 것도 아니다"며 "이번 사태가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에게 좁은 의미의 공부만을 하다가 세상을 알고 사회를 생각하고 그 속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할 수 있게 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들을 독려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궐기대회와 국회 청문회 등에서 한 발언이 의사들 사이에서 화제다. 왜 화제가 됐다고 평가하는지?
큰 관심을 보여준 것에 감사하다. 답답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현 사태와 관련해 '언로'가 막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청문회라는 기회에서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팩트에 기반해서 논리적으로 전달되니 억울한 마음이 조금 풀린다고 느끼는 것 같다.
예방의학 전문의다. 예방의학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예방의학이라는 이름이 멋있었다.
당시 예방의학은 산업의학이 분리되기 전이라 정책(보건관리), 역학(환경), 산업의학의 세부전공이 있었는데 정책 쪽이 제일 적성에 맞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환자 진료와 임상 등을 나는 잘 못했을 것 같다. 현재 환자를 진료하고 임상을 하고 있는 모든 의사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의사면서 변호사다. 어떻게 변호사를 할 생각을 했는지?
중요한 전기는 2000년 의약분업으로 인한 의료대란이다. 당시 예방의학 전문의를 취득하고 펠로우를 1년 마친 뒤 군의관으로 복무 중이었다. 엄청난 사회적 소용돌이 속에서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하게 됐는지 고민하고, 법을 통해 뭔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변호사라는 직업보다 정책을 전공한 사람으로서의 관심이 더 컸다. 지금 보면 일종의 환상이지만, 그래도 정책적 관점을 다듬는데 평생의 도움됐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의료소송의 현장을 이해하게 된 것도 여러가지 일에 큰 도움이 됐다.
현재 의료계 상황 속에서 본인의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나는 의료정책 학자다.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잘 연구하고 전달해야 한다. 현재 빚어지는 많은 문제가 의료체계의 특성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매우 독특하며 기형적이다. 이를 잘 개혁하지 않으면 갈등이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결국 지속가능한 안정적인 의료체계, 환자도 잘 진료받고 의사도 기본적인 권리가 보호받는 의료체계를 만들기 위해선 만국 공통으로 통념되는 의료체계의 기본 골격이 국민에게 잘 전달되야 한다. 그것을 잘 전달하는 것이 나의 1차적인 역할이라고 본다.
또 보건의료정책과 법의 합당한 관계를 연구해 의료체계에서 공익적 관점과 개인의 권리라는 측면의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는 작업에 기여하고 싶다.
청와대 근무 이력도 있다. 보건의료정책 결정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은데,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정책 과정을 정상적이라고 판단하나?
매우 비정상적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독자적으로 2000명 규모의 증원을 결정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정부는 정말 대화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결론을 내놓고 대화의 흉내만 내고 알리바이를 만들면서 의사들을 낙인 찍으면서 일을 진행했다.
총체적인 느낌은 용산 대통령실이 찍어누른 결과라고 본다. 정부 부처에서 2000명을 생각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정부부처에서 합당한 수준의 증원 규모를 이야기했을텐데 용산에서 숫자를 찍어 누른 것이다. 그러다보니 전공의들이 단체행동을 하기 전부터 전부처가 나서서 로드맵을 만들고 대처를 했다고 판단한다.
의대정원 증원 결정 과정에 대해 여러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한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인가?
한가지만 꼽기가 너무 어렵다. 국민적인 측면, 젊은의사들의 측면, 현재·미래 세대의 측면 등 최소한 3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정책 추진은 의견수렴 과정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에서도 의료계의 주장을 정부가 반드시 받아들여라는 것이 아니라, 의견수렴 과정을 통해서 의견이 조정되는 부분이 있는데 찍어누르며 진행하다보니 극단 반발이 생긴 것이다. 이번 정책 추진은 나라 전체적으로 민주주의나 법치주의의 커다란 훼손이라고 본다.
또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선택하는데 진절머리를 내게 만들었다. 미래세대에는 국민의료비 증가로 인해 부담을 안겨줬다. 의사 수가 늘면 임금이 일정 떨어질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국민의료비가 증가한다.
의사가 늘면 의료공급이 늘어난다. 출생율은 떨어지고 노인 인구는 증가하는데 지금의 의료 질을 유지하려면 젊은 세대의 건강보험료 지출이 많이 증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대교수로서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다만, 인생은 여러가지 측면이 있다. 긴 인생에서 1∼2년은 아무것도 아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이미 벌어진 현재 상황에서 지금껏 전공의와 학생들이 경주마처럼 안대를 쓰고 앞만 보고 달렸다면 사회와 세상을 알게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만큼 전문적인 직종이 없고 전문가적 자질은 훌륭하지만 말과 글로서 사회를 리드하는 것을 소홀히 한 부분이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다른 분야도 이해하고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의사소통을 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