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수가문제로 단체행동 했었다…정부 안 되면 여당, 타 직역과도 소통
정부에는 추상처럼, 환자에겐 햇살처럼…의사-환자 인간적 관계로 마음 얻어
일본은 의대정원 등 의료정책을 일본의사협회(JMA)와 정부 간 원만한 협의로 결정한다고 정평이 나 우리나라 의료계로부터도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런데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수가, 진료재량권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로 의사들의 단체행동 등 의정 간에 각축을 벌였던 역사가 있다.
일본 관서외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장부승 교수는 14일 공개된 KMA-TV의 새로운 프로그램, '의사(醫師)소통'에 출연해 일본의 의정갈등이 협의에 이른 비결을 되짚었다.
때는 63년 전, 일본 전국민단일건강보험이 시작된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험의료기관과 보험의를 이중으로 지정해 의료계에 지도·감사권을 강화하는 법안이 앞서 1957년에 통과되고, 당시 일본의사협회장과 임원들이 총사퇴함에 따라 의정갈등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총사퇴 후 새로 일본의사협회장에 오른 인물은 훗날 대정부 투쟁의 아이콘으로 '싸움꾼'이라 불리는 다케미 다로 회장이다. 장부승 교수는 다케미 다로 회장의 ▲다양한 소통 창구와 ▲대국민 홍보 전략을 강조했다.
1961년 1월,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일본의 후생노동성이 진료보수(수가) 10% 인상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하자, 일본의사협회는 2월 즉시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당시 일본의사협회는 2년간 인상이 전무했다는 점을 들어 30% 인상을 요구한 상황이었다.
일본 의사들은 하루 동안 전체 휴진에 들어갔다. 휴진일을 일요일로 정하고, 휴진하면서도 급한 환자를 위한 연락처나 자택 주소를 남겨 긴급 대응 체제를 유지해 국민의 반발을 최소화했다. 또 정부지정 정기검진과 예방접종을 보이콧했고, 전국 의사의 절반가량이 보험지정 거부 및 탈퇴서를 제출해 정책에 항의 의사를 표명했다.
휴진 직후 일본의사협회와 긴급회동을 한 것은 후생노동성이 아닌 여당(자민당) 지도부였다. 일본의사협회는 여당을 통해 후생노동성으로부터 진료보수를 추가 인상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정부가 이 약속을 어겼을 때도 단체행동에 돌입하는 동시에 여당과 접촉했다. 결국 후생노동성은 진료보수를 15% 인상할 뿐 아니라, 일본의사협회에서 요구한 대도시와 비대도시 간 진료보수 격차 철폐, 약물사용 등 진료규제 완화를 대폭 수용했다.
장부승 교수는 "다케미 회장이 진료한 환자 중 정계 실력자들이 있어 인맥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정계에 접근성이 일본의사협회의 정치력을 높인 주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당시 일본의사협회가 치과의사와 약사회와도 공동전선을 구축해, 타 직역의 수가협상 때 후생노동성에 함께 갈 정도로 끈끈한 연대를 만든 것을 요인으로 짚었다.
그러면서 한국 의료계를 향해 "보건복지부 외에도 당이나 언론, 국민과 직접 소통 등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경로를 다양히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다른 보건의료직역과도 의료라는 범주 안에서 공통의 이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돈만 아는 비윤리적 의사'라는 비난을 차단하기 위한 다케미 회장의 대국민 전략도 높이 샀다.
다케미 회장은 '환자를 돈으로 봐선 안 된다'라는 말을 강조해 일반 대중에게 어필하고, 실제로 다케미 회장이 운영하는 의원은 진료비를 받지 않고 환자의 자발적 기부만을 진료비로 받았다. 정부의 보험 이중지정을 반대할 때에도 '환자와 의사의 관계는 대단히 의미 있는 인간적인 관계로, 보험과 피보험자의 체제로 전락시킬 수 없다'며 국민을 설득했다.
의료계뿐 아니라 정부의 보완점도 짚었다. 일본 정부는 의정갈등이 심화하지 않도록 징계나 처벌 등 강압적인 언급을 피하려 했다는 것이다.
장부승 교수는 "정부가 대화를 하는 자리에서 처벌을 언급하면 오히려 분노와 반발을 일으켜 대화만 파국에 이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총리나 대통령등 고위 결정권자가 의정 간 협상에 디테일을 지시하며 개입하는 것 또한 실무자(보건복지부)가 의료계와 협상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며 "현 의정갈등 상황은 정치의 실패라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최안나 의협 총무이사겸 대변인은 "60년대 일본 의료계가 겪은 문제는 모두 2024년 한국이 현재 겪고 있으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라며 "일본 정부의 태도가 부럽다"고 전했다.
해당 내용은 'KMA-TV'를 통해 영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장부승 교수와 함께하는 KMA-TV '의사(醫師)소통' 코너는 이후 3편의 추가 영상을 통해 일본·영국·독일의 의대정원 등 정책 사례 분석으로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