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복부수술 75% 대장항문외과 담당…80%이상이 자정 넘어 수술
중증도 높은 수술 할수록 적자…법적소송·형사처벌 많아 수술 아예 포기
45명(2022)→35명(2023)→21명(2024)→0(?)…대장항문외과 지원의사 사라져
숙련도 따라 수술시간 단축하면 '업무량 감소' 간주…양성항문질환 DRG 전면 개편
응급 복부 수술의 75%를 담당하는 대장항문외과가 붕괴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과 수술 수가 전반이 턱없이 낮아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법적 소송 위험에 노출이 잦고, 진행성 혹은 재발성 대장암, 복막 전이암, 복잡 치루, 직장탈출증 등 고난도 수술은 시행할수록 적자구조에 내몰리고 있다. 실제로 대장항문외과 전문의는 45명(2022)→35명(2023)→21명(2024) 등으로 해마다 급감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이마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한대장항문학회는 5일 서울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필수의료 최전선 대장항문외과 방어전략 정책 심포지엄'을 열고, 대장항문외과의 지속가능성과 필수의료로서의 역할을 깊이 있게 살폈다.
김형록 대한대장항문학회장은 "대장항문외과는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의료이기 때문에 비급여항목이 거의 없고, 수술과 관련된 기구 및 소모품들의 사용과 가격이 정부에 의해 모두 통제되고 있다"라면서 "대장항문외과의 방어전략은 어쩌면 도미노처럼 무너져가는 전체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막고자 하는 최후의 몸부림일 수 있다"고 토로했다.
강성범 대한대장항문학회 이사장은 "대장항문외과는 복부응급수술의 75%를 차지하고, 대부분 야간응급수술을 할 만큼 외과의사 피로도가 높고 삶의 질이 떨어짐에도, 환자나 보호자가 원치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법적 소송에까지 휘말려, 대장항문외과 전문의가 되고자 지원하는 의사들이 아예 없어 향후 존폐가 걱정되는 상태"라면서 "현재는 응급실을 돌볼 의사의 피로와 급감이 문제이지만, 향후에는 장이 터져서 오는 환자를 치료할 외과의사가 없어 수술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의사들이 법정소송을 신경 쓰지 않고, 환자의 치료결과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소신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사회적인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첫 번째 세션은 '대장항문외과: 대학병원 응급수술의 40% 책임진다'를 주제로 양승윤 연세의대 교수(세브란스병원 대장항문외과)가 '대학병원 응급수술 현황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전국 18개 병원에서 지난해 전신마취 하에 응습수술을 받은 총 3만 364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첫 대규모 연구 결과다.
조사결과 외과 응급 상황으로 간주되는 급성 복증 수술의 75%를 대장항문외과 의사가 시행했다. 급성 복증은 복강내 장기의 염증, 천공, 폐색, 경색, 파열 등에 따른 복통을 수반하는 질환으로 8시간 이내 수술이 시행되지 않으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외과적 응급 상황으로 간주된다. 수술 후에도 환자의 40% 이상이 중증도가 높아서 중환자실 관리가 필요했으며, 대부분 응급 상황이어서 80% 이상 환자가 자정을 넘겨 야간에 긴급하게 수술이 진행됐다.
양승윤 교수는 "이번 조사를 통해 필수의료의 대표 진료과인 외과 중에서도 대장항문외과는 가장 많은 응급수술을 담당하고 있다"라면서 "대장항문외과 응급수술 환자의 40% 이상이 ASA 스코어 3.0 이상으로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이 대다수였으며, 수술 시간도 80% 이상이 자정을 넘은 새벽에 수술이 진행될 정도로 노동 강도와 중증도가 높다"고 강조했다.
조성우 차과의학대 교수(강남차병원 대장항문외과)는 '임금상승률을 반영한 충수절제술 원가 분석 및 수가 제안' 발표를 통해 대표적인 야간응급수술인 충수절제술의 적정 보상 여부를 진단했다.
충수염은 유병률이 높기 때문에 과소평가될 수 있으나, 수술 시기를 놓치면 복막염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질환이다. 급성충수염은 진행정도에 따라 중증도가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중증도와 합병증 발생 등에 따라 수술 후 보상체계도 차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성우 교수는 "단순충수염의 경우 병원에서 투입한 약제, 재료비, 행위료를 포함한 원가에 비해 포괄수가제(DRG) 체계에서 127만원 적자였고, 신포괄수가제 체계에서는 80만원 적자였다. 천공충수염의 경우, DRG에서 43만원 적자였고, 신포괄수가제 체계에서는 49만원 적자였다. 충수주위농양이 발생한 경우, DRG체계에서 38만원 적자였고, 신포괄수가제 체계에서는 60만원 적자였다"라면서 "게다가 이번 연구는 간접비에 포함된 청소·전산·유지보수팀의 인건비와 대지비, 건물사용비, 수도세, 전기세, 폐기물처리비 등은 반영하지 않았으며, 복강경수가 중 복강경 장비를 10만회 사용하는 것으로 계산해 투입원가를 최소화 했음에도 드러난 수치"라고 설명했다.
조성우 교수는 "사회가 노령화 되어 감에 따라, 노인 충수염이 증가하고, 기저질환을 갖는 충수염 수술이 많아지고 있는데, 포괄수가제는 치료 비용의 추가 투입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짚었다.
두 번째 세션은 '정규 수술 적정 보상 없으면 소멸한다'를 주제로 ▲양성항문질환 수가 제안(최동현 한사랑병원 원장) ▲복부수술 정책 가산 제안(김태형 연세의대 교수·용인세브란스병원 대장항문외과) ▲고난도 수술 수가 제안(박지원 서울의대 교수·서울대병원 대장항문외과) 등이 다뤄졌다.
최동현 원장은 "치핵, 치열, 치루로 대표되는 양성항문질환 중 특히 치핵수술은 한해 15만건 이상 시행되는 다빈도 수술 3위로서 대장항문외과 개원가의 토대가 된다. 대장항문외과 개원가 생태계가 유지되지 않으면 젊은 의사들이 대장항문외과를 지원하기 어렵기 때문에 양성항문질환에 대한 적정보상은 중요하다"라면서 "2013년에 적용된 포괄수가제 7개 질병군에서 외과는 다빈도 질환인 충수염, 서혜부탈장, 항문질환군이 포함됐으며, 수가는 처음부터 낮게 책정된 상대가치를 토대로 했기 때문에 동일한 환산지수가 적용돼 해가 지날수록 격차는 더욱 벌어져서 항문질환수술에 대한 원가보존율은 80% 정도다. 포괄수가제는 행위에 대한 정당한 보상 없이 비용통제의 수단으로 왜곡된 측면이 있다. 이는 대장항문외과 전문의가 개원해 시행하는 수술의 대부분이 포괄수가제에 의해 통제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최근 대장항문외과 지원이 급감한 이유"라고 단언했다.
포괄수가제는 수술 난이도나 전문경력에 대한 고려도 없으며, 위험도 반영도 미미하다. 기술발전, 숙련도에 따른 수술시간단축이 수술행위 총업무량 감소로 파악돼 점수가 오히려 하락하는 모순도 있다. 또 최근의 급격한 인건비 상승, 물가상승, 금융비용 상승과 같이 의료행위 원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실질 비용'에 대한 현실적인 반영도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최동현 원장은 "국가별 치핵절제에 따른 수가를 비교해 보면, 한국은 미국의 10분의 1, 의료사회주의 체계를 갖고 있는 영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의료시스템이나 1인당 GDP가 비슷한 일본과 단순비교해도 절반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복부수술 수가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 외과의 저수가를 해결하지 않고는 정부가 주장하는 '필수의료 살리기'는 결국 '필수의료 붕괴'로 이어지는 재앙적 파국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경고다.
김태형 교수는 "현재 대장항문외과에서 시행하는 직장암 결장암 등에 대한 수술은 대부분 복강경 수술을 포함한 미세침습수술(MIS)로 시행되고 있으며, 고령화로 인한 악성종양 환자 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현실에서 복강경수술 수가는 복강경치료재료수가의 인상과 복강경수술수가의 신설로 최근 소폭 인상을 보였으나, 아직도 원가대비 턱없이 낮은 수가를 보이고 있어 복강경 수술수가의 현실화가 시급하다"라면서 "악성종양에서 시행되는 림프절절제술은 대장항문외과의 경우 복부내 원발부위에서 인접하지 않은 복부대동맥주위 림프절전이/측방골반내림프절전이에 대한 적절한 수가가 보전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해당 림프절절제술을 시행하는 외과의사는 수가도 못받으면서 수술을 하고 있다. 또 기존의 수술행위가 워낙 저평가돼 있어 우리나라와 1인당 GDP가 비슷한 일본과 비교하여 약 1/4 정도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진행성 대장암, 재발성 직장암, 복막 전이암, 복잡 치루, 직장탈출증 등 고난도 수술에 대한 수가 인상도 시급하다. 고난도 수술은 수술자의 피로도가 극대화되며, 수술자가 최선을 다해도 환자의 기저질환으로 인한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 높다. 최근 의사과실이 없어도 법적 소송에 휘말리고, 형사처벌을 받는 판결이 이뤄지면서 수술을 기피하는 경향도 늘고 있다.
박지원 교수는 "진행성 대장암이나 재발성 직장암 등 고난도 수술은 의료진의 높은 기술력과 10시간 이상 걸리는 수술 시간과 다양한 전문의들과의 협업이 요구되는 복잡한 절차로, 수술의 성공 여부는 환자의 생존과 직결된다. 그러나 고난도 수술의 복잡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낮은 수가로 병원은 재발성 암을 수술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고, 수술하는 교수는 오히려 다른 의사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수술의 난이도, 합병증 가능성, 수술 후 관리 필요성, 의료진의 숙련도 등을 고려한 차별화된 수가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수가체계의 개편을 통해 의료진이 환자의 안전과 치료의 질을 최우선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정부와 의료기관 간의 협력은 필수적이며, 수가 개편 과정에서 의료진의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