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한덕수가 뭉크 전시회를 가야했던 이유

윤석열이, 한덕수가 뭉크 전시회를 가야했던 이유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24.09.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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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완기 기자 ⓒ의협신문
홍완기 기자 ⓒ의협신문

뭉크의 '절규'. 세계적인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전시가 한국에 상륙했다. 말로만 들었던 유명작을 보겠다며 전시회장을 찾았다. 가장 오랜 시간 시선이 머물렀던 곳. 그 유명한 절규도, 키스도, 자화상도 아닌 한 문장이 쓰여 있던 벽이었다.

'더는 남자가 책을 읽고 여자가 뜨개질하는 장면을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에드바르 뭉크가 이젠 '숨쉬고, 느끼고, 고통받고, 사랑하는, 살아있는 인간을 그릴 것'이라며 남긴 말이다. 

화가란 낭만을 그려도 되는 직업. 허락된 낭만조차 죄스럽게 느껴진 시기가 그에게 찾아왔던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2월. 돌연 '의사와의 싸움'을 선언한 후, 장기전을 치르고 있다. '절대 지지 않겠다'며 스스로 전장의 장군이 됐다. 

연일 보도되는 '응급실 뺑뺑이'. 추석 연휴 친촉간의 안부는 '아프면 안 된다'로 채워졌다. 생선 전도 조심해서 먹으라는 정치인의 당부까지 나온 마당이었다. 내 가족이, 이웃이, 국민이 피부로 와닿는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정 브리핑에서 '비상진료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 '현장에 가면 느낄 것'이라고 힘 주어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추석 직전이었던 12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의에서 '의료 공백 장기화로 인해 국민들이 죽어나가고 있다'는 야당 측 발언이 나오자 "그것은 가짜뉴스"라고 일축했다. 

의료 현장에 있는 이들. 의료계는 응급실 붕괴 상황을 연일 호소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은 지난 10일 수련병원 53곳의 응급실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급실 근무 의사는 반토막이 났다고 전했다. 문제가 없다는 정부의 '현실 부정' 브리핑을 더는 두고보기 힘들었던 거다.

응급실 근무 의사는 지난해 914명에서 535명으로 41.4%가 줄었다. 이중 전공의는 작년 386명에서 33명으로 91%가 감소했다.

조사 대상 병원 중 7곳은 응급실 근무 의사가 5명도 되지 않았다. 24시간 전체 운영은 물리적으로 불가한 상황. 겨우 5명을 넘긴 10곳도 의사 1명이 응급실을 24시간 지켜야 했다. 의사 2명이 근무할 수 있는 응급실은 전체 30%인 16곳에 그쳤다.

연휴가 끝나갈 무렵인 18일. [의협신문]도 일반인이 응급의료 현장을 엿볼 수 있는 수단, '종합상황판'을 들여다 봤다. 어느 곳이랄 것 없이 산부인과, 영유아, 소아청소년에 대한 '불가 메시지'는 일상. 사유는 '의료진 부족'이 대다수였다. 

자체적으로 운영 중인 대구지역 센터급 응급실 상황판은 상황은 더 심각했다. '의료진 부재', '응급 진료 불가'과목을 보면, 대한민국 전체 의과대학 전공 과목이 나열된 듯했다.

너무도 많은 '응급실 불가능 메시지'. 순간 '그간 누적된 메시지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기자의 질의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쓰게 웃으며 해당 메시지가 모두 '현재 기준'이라고 했다. 이 조차 현장의 30%만을 반영하고 있다고도 했다. 병원 차원에서 대놓고 '진료 불가' 메시지 띄우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올리기 어렵기 때문이란다. 한 페이지의 메시지만으로 위협이 느껴진 순간이다.

위협을 가장 먼저 느껴야 할, 앞서 위기를 예견했어야 할 위치의 분들. '낭만'이 허락되지 않는 그들에게, 화가에게도 찾아왔던 '그 시기'는 좀처럼 오지 않는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는 의전이 준비된 의료 현장만을 바라봤다. 한 국회의원은 의료대란 속 환자를 부탁한 문자 메시지를 들켰다. 의료대란 속 걱정 없는 그들. 그들의 눈에 십자수하는 여인과 독서하는 남성만이 가득한 이유다.

누군가 그들의 현실부정 발언을 두고 '코미디'지만 장르는 '호러'라고 비평한 글을 봤다. 대한민국 의료의 장르가 더는 호러가 되지 않길 바란다. 이들에게 십자수를 그리지 않는 것은 선택이 아닌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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