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범 회장 "너무 짧은 기간 추진…세심한 중증도 분류 필요"
상급종병 양극화·응급실 과부화 등 사업 부작용 우려 제기
정부가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가운데 의료계 내에서는 벌써부터 해당 사업이 '개악'이 될거란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사업 취지와 달리 공공의료 붕괴, 상급종합병원의 양극화, 응급실 과부화 등의 사업 부작용이 언급되면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4일 상급종병 구조 전환 지원사업 기관으로 8개 병원을 선정한 뒤, 현재는 총 18개 기관까지 확대하면서 사업의 본격적 시작을 알렸다.
상급종병 구조 전환 지원사업은 중증환자 중심으로 진료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적. 경증진료를 축소하면서 확보된 진료역량을 중증·응급환자 등 필수의료 대응 기능 강화에 투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사업에서 참여하는 상급종병은 일반병상을 감축하고 자체계획에 따라 중환자·응급 등 진료에 필요한 인프라를 확충해나갈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도 안정적인 구조 전환이 가능하도록 중증·응급·희귀질환 진료에 대해 인상된 수가를 적용하고 권역 내 협력 의료기관과의 의뢰·회송으로 경증환자 비중을 줄여나갈 경우 그 성과를 평가해 추가 인센티브 보상한다는 방침이다.
의료계에선 벌써부터 냉정한 평가가 나온다. 이번 지원 사업 추진이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판단이다.
한승범 상급종합병원협의회장(고대안암병원장)은 최근 의협신문과 만나 상급종병 구조전환 사업에 대해 언급, "이번 정부의 사업이 상급종병 경영난 해소를 위해 진행되면서도 앞으로 상급종병이 나아가야할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는 취지로 시작된 것이라고 알고 있다"며 "정부의 큰 방향성에는 너무 공감하지만, 너무 짧은 기간에, 나쁘게 이야기하면 졸속으로 진행된 면이 있다. 많은 난항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고 우려감을 표했다.
중증도에 대한 세심한 분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한승범 회장은 "비바이탈과라 해서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생명과 관계가 직접적인 연관은 없어도 간접적인 영향을 무시하지 못한다. 비바이탈과 역시 상급종병에서 이끌어 온 과목"이라며 "상급종병 내에서 이런 전문 과목들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장기적으로 불합리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환자의 상황보다 진단명과 수술·시술명으로 중증도를 판단하는 문제도 지적했다.
한 회장은 "동반 질환이 많은 사람들, 만성 질환을 앓고 재수술을 진행해야하는 등 중증환자로 봐야할 환자가 많다"며 "똑같은 수술을 하더라도 환자마다 다 다르다. 환자의 팩터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수도권과 지방의 상급종병의 양극화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는 점도 언급한 한 회장은 "환자들은 수도권과 서울 특정 일부 병원에만 환자들이 몰리는 상황에서 정부가 3조 3000억원을 투입한다지만 병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눠줄 순 없을 것"이라며 "결국 병원이 더욱 계층화 될 것이다. 의료인력 역시 부익부빈익빈에 따라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김영태 서울대병원장 역시 지난달 24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일괄적으로 병상을 줄이는 이번 구조 전환 사업에 대한 우려 목소리를 냈다.
당시 김영태 병원장은 "정책 방향은 맞지만, 서울대병원은 다른 민간병원과 달리 20년 전과 비교해 일반 병상을 183병상만 증가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15%를 일괄 감축하게 되면 국가중앙병원으로서의 공공의료에 기여하는데 문제가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대한의학회에서도 상급종병 구조 전환 사업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신경철 영남대병원장은 지난 1일 진행된 대한의학회 심포지엄에 '필수의료패키지 지역 상급병원 정책의 문제점 해결을 위한 brain storming'을 주제로 발표 "상급종병 구조 전환 사업은 집을 위에서부터 짓는 정책"이라고 작심 발언을 했다.
"1∼2차 의료가 다 무너지고 있는 지역 의료의 현실에서 3차 의료를 강화한다고 지역의료가 살아나겠나?"고 반문한 신경철 병원장은 "경증환자에 대한 견해가 환자와 의사, 정부 사이에서 너무 다르다. 1차 의료 수준이 질병의 관리와 예방이 목표라는 정부와 달리 지역민들이 원하는 1차 의료 수준은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사업 목표를 지방에 있는 병원이 따라가기가 굉장히 어렵다. 지방에서 중환자 병상의 실제는 공급 과잉"이라며 "정부가 현실을 너무 도외시하는 거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상급종병 구조 전환 사업을 두고 일각에서는 병원 내에서 응급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응급의학 전문의 A씨는 "일반 병상을 줄이는 순간 응급실이 환자와 환자 보호자, 배후 진료과 사이에 껴서 몸빵 역할만 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응급환자들이 응급 진료 후 배후 진료과에 입원을 해야하는데 진료과에서 병상이 부족해 입원이 불가하다하면 회송이 잘 이뤄지지 않는 현재의 시스템 안에서 결국 환자는 응급실에만 머무르게 될 것"이라 밝힌 A 전문의는 "응급실에 혼잡도를 높이고 의료 현장의 혼란을 더 키울 수도 있겠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