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와 함께 춤을

전공의와 함께 춤을

  • 오동호 서울시 중랑구의사회장 medicalnews@hanmail.net
  • 승인 2024.11.0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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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호 서울 중랑구의사회장(미래신경과의원)

오동호 서울 중랑구의사회장(미래신경과의원) ⓒ의협신문
오동호 서울 중랑구의사회장(미래신경과의원) ⓒ의협신문

옛날에 어느 마을에 큰 가뭄이 들어서 동네 어른들이 모여 기우제를 지내기로 했다. 동네에서 제일 높은 동산에 올라서 정성껏 기우제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하늘이 감동했는지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비를 피하느라 허둥지둥하는데 한 어린아이가 침착하게 우산을 펼쳤더란다. 어른들이 비가 오지 않는데도 우산을 갖고 온 이유를 물으니 정성껏 기우제를 올리고 나면 비가 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척박한 현실 속에도 우리에게는 이상이 있고 그에 대한 믿음이 위기를 극복하는 버팀목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벼랑 끝에 몰린 한국 의료가 바로 그러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수 많은 고난 끝에 이땅에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었다. 하지만 갈 길은 멀고 정치적인 갈등은 심각하다. 과장된 경제적 성과에 도취해 있지만, 국민 건강은 위태롭고, 의료는 길을 잃고 있다. 국민은 정부에 의지하려 하고, 관료들은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한다. 의사들은 저수가 건강보험 체계에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희생했지만 억압과 착취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를 무시하는 비과학적이고 일방적인 정부 정책에 대해서 사직을 통해서라도 잘못된 정책을 멈추겠다는 것은 매우 과감하고 현실적인 결단이다. 졸업하고 대한민국 의료계에 첫발을 들인 신입사원으로서는 작금의 의료현실이 너무나 뒤틀어져 있기 때문이다. 왜곡된 의료체계와 타협하며 살아야 했던 기득권 의사의 시각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지금대로는 미래가 없다는 것만큼 분명한 사실도 없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집단행동이 조직의 지령을 받은 것이 아닌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정부의 온갖 탄압에도 흔들림이 없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란 과학적 진실을 소명으로 여기며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산업사회의 중추이다. 어떤 권력이라도 직업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되지만 민주주의 시대 임에도 전제주의 시대의 잔재는 심각하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왔던 독과점 건강보험과 거대 병원 중심의 의료체계는 한계점에 도달했다. 거대 시설 중심의 의료체계만으로는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고, 의료 사각지대 문제와 지역 간 의료 격차는 심화하였다.

정부가 유발한 혼돈 상황이지만 돌이킬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 그리고 혼돈을 수습하는 것은 전문가의 몫이 되었다. 정부도 해결할 수 없고, 대한의사협회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시점에서 국가 의료 시스템을 재구성하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듯하다.

대한의사협회 전공의 진로지원 TF는 대한개원의협의회와 함께 지난 8월부터 사직 전공의를 위한 연수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의협신문
대한의사협회 전공의 진로지원 TF는 대한개원의협의회와 함께 지난 8월부터 사직 전공의를 위한 연수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의협신문

사직 전공의는 더는 3차 수련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고, 돌아갈 자리도 없다. 동네의원은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공생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레드 오션이 되어버린 의료시장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의료전달체계도 재구성해야 하고, 건강보험과 의료비 지불제도도 재구성해야 한다. 의료체계의 지각변동이 우리를 기다리는 듯하다.

어차피 맞닥뜨려야 할 상황이라면 피하지 말고 담담하게 마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부와 정치권에 미루지 말고 전문가답게 직접 나서서 국민을 설득하고 전문가 중심의 제도를 만드는 것이 의료계의 미래를 밝히고 전공의 사태를 바로 잡는 길이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지만 전공의와 함께 춤을 출 수 있다면 반전의 기회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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