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진료거부 정당 사유' 정부 지침 알았나? 응급의학회 의문 제기
"악결과 발생 때마다 민형사 책임 지우는 분위기, 응급의료 설자리 없다"

이마가 깊게 찢어진(열상) 환자가 3개 병원 응급실 전원 끝에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은 병원들의 전원 결정을 놓고 돌연 '응급의료 거부 금지' 조항을 담고 있는 응급의료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해당 응급의료법 조항의 범위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을 공표한 상황이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경찰의 결정에 문제가 있다며 강하게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한응급의학회가 파악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해 4월 말 대구 한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던 40대 남성 환자가 얼굴 부위 깊은 열상으로 인근 K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당시 응급실에 근무 중이던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정신병원 직원의 '이마가 살짝 찢어졌다'는 말만 듣고 찢어진 상처 봉합을 준비하고 있었다.
막상 병원에 도착한 환자를 마주했는데 상처가 깊어 상급병원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때만 해도 환자는 서서 웃을 수 있었고, 의사 문진에 응할 정도의 상태였다. 이후 환자는 상처 봉합을 위해 2개의 상급종합병원을 찾았지만 이들 병원 모두 성형외과 진료가 어렵다는 이유로 전원을 결정했고 이 과정에서 환자에게 심정지가 발생했다.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환자는 결국 사망했다.
해당 사건을 접한 경찰은 환자를 진료했던 응급의학과 의사 3명에 대해 조사를 실시했고, 업무상과실치사는 무혐의로 했지만 돌연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응급의료법)을 위반했다며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응급의료법 6조는 응급의료 거부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3명의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해당 조항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응급의료 종사자는 업무 중 응급의료 요청을 받거나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응급의료를 해야 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한다'가 구체적인 내용이다.
해당 조항의 해석 범위가 너무 넓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그 범위를 보다 명확하게 제공하기 위해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을 따로 만들어 지난해 9월 배포했다. 지침에 따르면 응급환자에 대해 적절한 응급의료를 할 수 없을 때 진료거부 및 기피의 정당한 사유가 된다.
앞서 열상 환자를 진료했던 병원 세 곳 모두 인력, 시설, 장비 등 응급의료자원의 가용력에 따라 전원을 결정했던 것이다.
이경원 응급의학회 공보이사는 "특히 환자가 처음으로 찾았던 종합병원에는 성형외과 의사도 없었기 때문에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상급종합병원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라며 "상급종합병원 두 곳 역시 응급실에서 성형외과 진료가 어려워 전원 결정했다. 세 곳 모두 정부 지침에 의거해 당연히 정당한 진료 거부, 기피 사유에 해당하는 것이다. 경찰은 해당 지침의 존재 자체도 몰랐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급종병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진료과의 진료가 언제나 가능한 게 아니다"라며 "특히 사건 발생 당시는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 초반으로 가장 응급의료 현장이 혼란을 겪을 때였다"고 덧붙였다.
또 "경찰은 정부가 발표한 지침도 무시하고 있다"라며 "환자의 사망이라는 악결과는 안타깝지만 사망만 하면 한 번이라도 진료한 모든 의사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지우려 하는 분위기가 계속되는 한 필수의료, 응급의료는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응급의학회는 이번 사건을 계속 추적하며 적극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 이사는 "국민 생명과 안전,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응급의료 분야에서 형사 처벌 면제, 민사 배상액 최고액 제한과 같은 법률적, 제도적 개선이 꼭 필요하다"라며 "학회도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