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원 회원(서울 중랑구 보건분소)

<정영원 회원>
이름 |
정영원(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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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서울시 중랑구보건소 근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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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2001~ |
서울시 중랑구보건소 진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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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
전주대학교 법학과 박사과정 수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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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1997 |
임실군 보건소, 전주시 완산보건소 보건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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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985 |
전북 옥구군 어청도·임피면 보건지소, 전주교도소 근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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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
전북의대 졸업 |

"건강한 상식으로 살아가는 지역 의사" 안문영 회원(대구시 보건위생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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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단군신화의 배경 사상이자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다. 인간을 사랑하는 휴머니즘과도 일맥상통한다. 생각해보면 '의료'의 기본 정신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보다 많은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결코 상대를 해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오직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관된 삶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 의료인이 여기에 있다.
정영원 선생이 지역 보건의료에 뛰어들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누구나 그렇듯 의대생 시절엔 의욕과 투지에 불탔어요. 그 때는 오로지 한 단어만이 머릿 속을 맴돌았습니다. 바로 '무의촌' 이었죠. ' 무의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바지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죠.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더군요. 하지만 후회는 없고 기본 신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국가 사업, 특히 보건의료 영역에선 단순한 시설 확충을 넘어 법과 제도, 그리고 사회적 인식 등이 함께 성숙해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죠."
무의촌에 대한 안타까움은 학생 정영원일 때부터 보건소장 정영원에 이르기까지 계속됐다. 무엇보다 남달랐던 그의 철학 덕분이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도 잠시 외도의 길을 걸을 때가 있었다.
"1997년은 한창 우리나라가 IMF로 가기 직전이라 공공기관도 구조조정의 폭풍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보건소도 마찬가지였는데, 잘 배워서 능력을 발휘해야 할 젊은이들이 먼저 구조조정 대상에 오르내리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더군요. 그럴 땐 윗사람이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 한몸 희생하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는 것 아닌가 싶더군요. 그래서 사직서를 냈죠."
물론 한창 완산을 들썩이게 했던 야심찬 그의 구상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능력에 대한 한계를 느끼게 됐던 것도 그가 사직서를 내게 된 이유였다.
"1996년 전주에서 완산보건소장으로 일할 무렵, 노인 문제가 이제 막 사회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죠. 의욕적으로 정부에서 추진하는 치매병원을 지역 내에 유치해서 노인 건강 관리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논란과 갈등을 남긴 채 애초의 개념과는 많이 달라지게 됐죠."
당시 완산 치매병원 건립은 여러모로 화제가 된 사건이었다. 도 단위로 이루어지던 지역 치매병원 사업을 시단위에서 최초로 유치했고,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시 의회의 격론을 유발했으며, 그동안 논의되지 않던 치매병원의 새 모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지역 보건의료의 핵심인 보건소가 직영으로 의료원을 운영함으로써 지역과 병원을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시내에 치매병원을 둬서 접근성을 늘리는 한편, 늘어나는 노인 수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자원봉사와 간병인의 중간 개념에 해당하는 인력을 개발하고자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떠나온 후 병원은 결국 보건소의 위탁을 받는 형태로 바뀌어 시 외곽으로 밀려났는데, 지금도 가끔씩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쉬움이 남는다는 정 소장. 보건소를 뛰쳐나온 후 어디서 무얼 했을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동안 보건의료 분야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민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보건과 복지 정보'라는 의료정보 포털사이트를 만들었는데, 목표는 '휴먼케어'였죠. 그런데 뻥을 튀기고 양념을 해서 돈 버는 재주가 없다보니 3년만에 회사를 접게 됐습니다. 아직은 수익을 내기는 시기상조였던데다, 가끔은 다소 비인간적이어야 하는 사업가의 역할이 영락없는 의사인 제겐 어울리지 않았던 거죠. 의사들이 좀 융통성이 부족하고 막혀있는 면이 없지 않거든요."
보건소장직을 내놓은 지 4년만에 그는 다시 "은둔생활"로 접어들었다. 소신껏 주민 건강을 관리하는 보건소 의사로 되돌아온 것이다. 비록 공백이라 할 수 없는 공백이 있었지만, 외도를 했든 은둔 생활을 돌아갔든 자기 계발을 계속됐고, 그는 법학 박사과정을 딴 보건소 의사가 됐다.
"취미로 검도를 하다가 우연히 만난 법대 교수님에게 법을 공부해보고 싶다고 말했어요. 교수님은 처음엔 농담으로만 여기시더니 진지한 제 모습을 보고 대학원을 권했습니다. 어렵지 않았냐구요?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행정직에 있다보니 일이 곧 공부요, 공부가 곧 일이 되더라고요. 덕분에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었죠."
행정적·법적 지식과 소견을 갖춘 의사 보건소장의 등장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만큼 일선 행정직이 보건소장직을 도맡는 사례가 전보다 훨씬 늘었다는 얘기다. 자꾸만 어려워지는 의료계의 현실, 새해에는 좀 나아질까.
어쨌거나 새해는 왔고, 의료계는 한살을 더 먹었다. 그러나 어디 나이만 먹는다고 성장했다고 할 수 있으랴. 다소 이른 떡국을 나누며 덕담을 부탁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의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누가 보건소장이 되든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숱하죠. 하지만 병원장이나 보건소장 등 의료 관리자가 의사여야 한다는 점은 의료윤리의 기본이나 다름 없습니다. 의사가 의료분야에선 전문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사가 최고 관리자일 경우 이익 추구에서 좀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면에서 더욱 그렇죠. 보다 많은 의사들이 지역 보건의료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올해는 모두가 서로 사랑하며 건강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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