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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자신의 몸을 의식하고 병든 육체를 치료해야겠다고 결심한 첫 순간은 어떠했을까? 그 사람에게 의학적 지식은 없었지만 본능이 그를 치료행위로 이끌었을 것이다. 직접 질병과 싸워보겠다며 인류가 팔을 걷어붙인 때는 히포크라테스 이후다. 신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몸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불어넣어준 것이야말로 히포크라테스의 업적이다. 이렇게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은 과학기술 발전의 강력한 동력이자 절대 목표가 되었다. 죽음과 질병을 신으로부터 인간의 영역으로 가져오면서 의학과 과학이 탄생하게 된다.
이번에 예병일 교수(연세대 원주의대)가 펴낸 <내 몸 안의 과학>은 인간의 육체를 지도 삼아 떠나는 의·과학 탐험기다. 탄생의 비밀부터 출발한 여정은 얼굴과 내장기관, 혈액과 성을 거쳐 마지막으로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에 이른다. 인체 내부를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중세사회와 목숨을 건 투쟁을 벌여야 했던 의학자들과 실험을 위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직접 마셔버린 배리 마셜, 눈감는 순간까지 실험용 피펫을 놓지 않았던 ABO식 혈액형 분류법의 발견자 란트슈타이너 등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이 언제나 행운만 가져오지는 않는다. 인간 개조를 위해 두뇌 일부분을 잘라내는 뇌엽절제술의 창안자 모니스의 예에서 보듯 섬뜩한 비극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내 몸 안의 과학>에서는 인류를 질병에서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수많은 의·과학자의 이야기와 그 시대의 역사가 펼쳐진다. 그 쟁쟁한 인물 속에서도 수없이 피고 졌던 몸에 관한 기억은 여전하다. 바빌론시대에는 아픈 환자를 거리에 눕혀놓았다고 한다. 그러면 지나는 사람들이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이렇듯 '만인의 경험'이 '만인'을 치료하는 것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결국 내 몸은 죽음과 끊임없이 투쟁해 온 모든 이의 경험과 열정이 쌓인 인체지도인 셈이다.
이 책은 우리 몸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이러한 지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생겨났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최근의 연구 경향뿐 아니라 중세의 의·과학도 등장한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처럼 몸을 알려는 노력이 나 자신과 함께 온 생명체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031-955-7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