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청이 '또' 두들겨 맞았다.
해마다 잊을만 하면 한 번씩 터지는 'OOO파동'들은 앞자리만 PPA가 되고, 쓰레기 만두가 되고, 석면이 되어 바뀌어갈 뿐이지, 그 과정은 판박이다.
언론에서 "문제가 있다"고 터뜨리면 얼마 뒤 식약청은 '명단'을 발표하고, 국회는 식약청의 책임을 추궁하며, 식약청장은 '사과'를 한다. '재발 방지'에 대한 약속과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는 하소연도 곁들인다.
분유 속에 들어있던 멜라민이 과자와 프림으로 옮겨 붙었듯, 베이비파우더속 석면이 의약품으로 갔을 뿐인 이번 '석면 파동'이 유난히 관심을 끄는 것은 잔뜩 주눅이 든 식약청장의 눈물 때문만이었을까?
이번에 보여준 식약청의 대응 속도는 이전과 비교하면 전광석화 수준이었다. 베이비파우더 논란이 있은 지 1주일만에 석면 함유 탈크 원료를 사용한 1000여개 이상의 의약품 명단이 전격 공개됐다.
그런데 '늑장 대응'으로 지적을 받아왔던 식약청이 이번에는 되려 '성급한 대응'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식약청 스스로 "의약품의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도 "해당 약을 판매 금지하고 전면 회수"하는 모순을 범했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전 사회적으로 안전성 이슈가 제기됐던 IPA 의약품에 대해 '문제가 없으므로 허가 사항만 일부 변경'했던 식약청이다.
중요한 건 원칙이다. 식약청의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업무는 '규제기관'으로서의 역할이다. '규제'는 과학에 근거한 원칙에 맞춰 일관성있게 이뤄져야 한다. 역량이 안된다면 민원인을 배려하고 제약산업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과외 업무는 보건산업진흥원이나 지식경제부에나 맡길 일이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들은 식약청 담당 사무관의 "우리가 제약회사 잡을 일 있냐"라는 대답에는 업계를 바라보는 식약청의 이율배반적인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심지어 허가 절차를 간소화한다면서도 '효과 좋고 안전한 약을 국민에게 보다 신속하게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원인(제약회사)의 편의를 위해서'라고 말할 정도다.
업계를 너무 잡은 게 미안해서 다음 번엔 좀 봐준다거나, 이번에 좀 봐줬으니까 다음 번엔 칼 좀 휘두르겠다는 식은 심판이 얼렁뚱땅 '레드 카드'를 줘놓고 미안한 마음에 슬쩍 반칙을 눈감아 주는 것과 다름없다. 식약청이 원칙이라는 것을 갖고 있다면 적어도 자신있게 '아웃'을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식약청장은 울지 말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