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응급피임

시론 응급피임

  • 이석영 기자 dekard@kma.org
  • 승인 2001.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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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기

응급피임제는 1977년 Yuzpe에 의해 처음 기술된 바 있으며 고용량의 호르몬 2가지를 혼합하여 성교 후 72시간 내에 복용함으로써 약 75% 정도의 사후피임효과를 갖는다. 이는 현재 시판되고 있는 경구 피임제를 이용하여 조제가 가능하므로 실상 이미 사용되고 있어 왔다. 혼합된 호르몬 중 하나인 에스트로젠을 사용할 수 없는 여성을 위한 대안으로 다른 한가지 호르몬인 프로제스틴만을 포함하는 응급피임제가 이어 개발되었는데 이것이 현 안건으로 논의되는 '노레보정'에 해당된다.

대한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는 프로제스틴 단일제로서의 응급피임제인 '노레보정'의 수입허가를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이유로 반대하며 이는 어디까지나 현재의 상황에서 내린 유동적인 견해로서 반대의 입장을 결정하기까지 국민(여성)의 건강수호를 최우선으로 하였음을 강조하는 바이다.


1. 현 상황에서는 남, 오용의 우려가 매우 높다.

응급피임제는 말 그대로 불가피한 응급상황에서만 사용하여야 한다. 이를 단순히 피임법 중의 하나로 알고 상용하는 것에 대하여는 WHO에서도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1999년 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우리 나라 여성 중 17% 만이 피임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고 대답하였으며 미혼여성의 경우는 약 5% 만이 피임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답변하였다. 응급피임제를 사용하여야 하는 응급상황이란, 배란기에 피임 없이 성교가 있었을 경우나 콘돔으로 피임하다가 콘돔이 파열되는 등의 경우에 해당된다. 유럽의 한 조사에 의하면, 응급피임제를 요구하였던 가장 많은 원인이 콘돔의 파열이었으며 전체의 82%를 차지하였다. 즉 대부분의 여성이 피임을 잘 알고 실행하고 있으며 실행 중에 발생한 예기치 못한 사고(콘돔파열)가 응급피임제를 요구하게되는 주요 사유였던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현재와 같은 피임에 대한 인식수준에서는 배란기의 무방비한 성교가 대부분의 이유를 차지할 것이며 그나마 사전피임에 대치되는 사후피임정도로 알고 이를 상용 내지는 남, 오용할 우려가 상당히 크다. 비근한 예로 우리 나라와 비슷하게 경구 피임약을 의사의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태국의 연구조사를 보면 - 세계적으로 의사 처방 없이 피임약을 살 수 있는 나라는 한국, 태국, 방글라데시 뿐이다. - 7개 약국과 5개 쇼핑몰에서 구입한 프로제스틴 단일제의 응급피임제를 복용한 10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하였더니 단 3% 만이 배란기의 무방비한 성교와 콘돔파열을 이유로 하는, 용도에 맞게 사용한 여성이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철저한 관리 없이 이를 허용하였다가는 남, 오용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임을 경고하는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2. 응급피임제가 철저히 관리되는 제도적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응급피임제의 피임실패율이 25% 정도이고 사용 후 황체기의 기간이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으므로 첫 생리를 정확하게 확인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임신초기의 착상출혈이나 자궁외 임신 시의 출혈과 구별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하여 응급피임제의 복용 3주 후 의사의 검진을 권하고 있다. 말할 나위 없이 응급피임제는 반드시 의사의 처방으로 구입하고 추후 의사의 검진을 통하여 피임의 결과가 확인되어야 한다. 의사는 환자가 요구할 때 고용량 호르몬제를 사용하는데 무리가 없는지, 꼭 필요한 상황인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등을 판단하여야 하며 부작용이나 예상되는 결과를 정확히 설명하고 피임의 성공여부까지 확인해 주어야 한다. 이처럼 응급피임제는 철저한 관리 속에서 사용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기존의 피임약이 일반의약품으로 의사 처방 없이 일반의약품으로 시판되고 있는 여건에서는 응급피임제의 개념이 어설프게 확산되어 남, 오용될 우려가 매우 높아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 프로제스틴 단일성분의 응급피임제가 갖는 부작용을 경고한다.

프로제스틴 단일 응급피임제는 정상적인 생리주기를 저해하여 생리불순을 초래하는 부작용이 복합 응급피임제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되어 있다(1,3,13,18,22). UN 산하 관련기관과 WHO의 합동 Task Force에서 2000년도에 발표한 프로제스틴 단일 응급피임제 반복사용의 효용과 부작용에 대한 결과를 보면, 생리불순을 초래한 경우가 70%나 되었으며 그 외에도 오심(메슥거림), 유방팽만, 무력감, 현기증, 두통, 복부팽만감, 성욕감퇴, 우울증, 구토 등의 순서로 보고되었다. 이 UN 산하 관련기관과 WHO의 합동연구에 의하면 프로제스틴 단일 응급피임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더욱이 '노레보정'이라는 프로제스틴 단일성분의 응급피임제는 프랑스에서 개발되어 1999년 5월부터 시판되기 시작한 신약으로서, 무분별하게 남, 오용되었을 때 그 약이 갖는 문제점에 대한 장기적인 추적결과에 대한 자료가 아직 부족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4. 현 우리 나라 인공유산 실태가 노레보정 수입으로 좋아지지 않는다.

현재 우리 나라의 인공유산 실태가 과연 적절한 피임법이 부족하였기 때문일까 하는 것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노레보정'이 아니어도 응급피임제는 이미 사용 가능한 상황이었음을 숙지하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성교육과 피임교육의 확산이다. 이를 위하여 국가가 주도하에 여러 관련단체가 협동하여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대한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는 자체적으로 이러한 사업을 시작하고 있으며 국가가 주도하는 관련사업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임을 공언하는 바이다.

또한 현재 시판되고 있는 고용량 복합호르몬성분인 피임약을 전문의약품화 하여 상식적으로 어긋난 현 상황을 바로 잡아야 하며, 이러한 전제가 없는 상황에서 '노레보정'이 수입, 시판되는 경우는 상기 언급된 태국의 예와 같이 적절하게 사용되는 경우보다 남, 오용의 실태가 더욱 심각해지어 오히려 인공유산의 건수가 많아질 우려까지도 예상된다.

그 외에도 당국은 복합성분 응급피임제에 이은 프로제스틴 단일성분 응급피임제의 논의에는 차세대 응급피임제로 RU486이 그 연장선상에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6,11,12,14).

이상의 이유로 대한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는 현 상황에서는 '노레보정'의 수입으로 국민건강 수호의 차원에서 얻는 것(得)보다 잃는 것(失)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신중한 판단으로 응급피임제의 수입허가를 반대한다.


대 한 산 부 인 과 개 원 의 협 의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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