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마당 너른 마을

청진기 마당 너른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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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3.1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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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익(대구 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장)

▲ 송광익(대구 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장)

"눈에 보이는 근심을 얻기 위해, 보이지 않는 행복을 잃어버리고 있지 않습니까."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우연찮게 눈에 띈, 어느 절집 큰스님의 일갈이다. 마침 울고 싶은 차에 얼뺨이라도 맞은 기분이다. 지금 세 들어 있는 건물을 헐고서 새롭게 올릴 작정이라, 올 봄 중으로 병원을 다시 옮겨야만 한단다.

예전 병원 건너편 아파트 재건축의 여파로 언덕너머 이 마을로 온지도 6년여, 참 미운 정 고운 정이 꽤나 들었나보다. 예전부터 병원 이전을 챙겨주고 뒷바라지해 주는 이는, 이번 기회에 아예 다른 곳을 권유한다. 어차피 옮길 양이면 오십보백보로 시간이나 비용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목 좋은 곳을 두어 군데 봐두었니,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 보는 것도 어떠냐며 부추긴다. '눈에 보이는' 당장의 이득과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으면서 우선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란다. 마을을 떠난다, 라는 가정을 하고서 보니 그제야 '눈에 보이지 않던' 정경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오른다.

"누구시더라? 아이고~" 점심시간에 마을 뒷동산 산보하는 길에서 먼저 인사라도 건네면 잠시 이맛살을 찌푸렸다가 금세 피어나는 할머니에서, "나는 저 아저씨 안다." "흥, 나는 병원 선생님이랑 악수도 해봤다." 아옹다옹하는 동네 꼬맹이들까지.

맑은 날이면 자전거를 끌고서 출퇴근하기에 딱 맞춤인 병원까지의 푸근한 거리에다, 비오는 날이면 은근슬쩍 술추렴이나 하자고 추파를 던지는 아저씨들과의 또 다른 푸짐한 거리.

애초에는 끼니 거르는 동네 아이들 걱정꺼리나 함께 하자고 모였다가, 마침내 서로간의 자랑꺼리까지 함께 하고 제 일인 양 덩달아 웃어주는 속없는 동네 사람들. 되는 집에는 가지나무에 수박이 열린다고, 맞춤하여 동네 근처로 옮겨온 인문학 사랑방에 나가 등 너머로 풍월 주워듣는 덤까지.

그렇다, 정녕 소중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평소 너무 당연하게 여겨져 눈길이 가지 않았을 뿐이다.

"세상은 얻은 것만을 보고 칭찬할지라도 자신은 잃은 것 때문에 초라해질 것입니다. 짧은 마음은 세간의 물질을 얻은 기쁨과 비교하면서 결코 손해는 보지 않았다고 자위합니다. 그러나 대가로 지불한 것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무형의 무엇일 수도 있습니다."

보는 눈이 짧고 듣는 귀가 완고한 중생들이 못내 못미덥고 안쓰러워 덧붙인 큰 스님의 뒷단속이다. 세상이란 어차피 혼자서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생존의 외길이기도 하지만, 마침내 더불어서 웃고 울면서 살아가는 생활의 마당이 아닌가.

'말이 달릴 때 필요한 땅은/ 말발굽 닿는 면적만큼만 필요하다/ 그러나 그 면적만 남기고 나머지는/ 벼랑을 만들어도 말은 달릴 수 있나'(백무산의 '살아있는 길' 중에서) 눈앞에 보이는 외줄에 매달려 옆도, 뒤도 보지 않고서 가는 길은 얼마나 딱한 노릇인가? 때로는 한눈팔고 먼 산을 쳐다보아도 마음 든든한 길섶이 있다는 고마움에 새삼 눈이 뜨여진다.

나는 지금, 바로 길 건너편으로, 방 얻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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