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있어도 은사님은 없다"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없다?

"선생님은 있어도 은사님은 없다"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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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5.0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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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중립(서울 영등포 여의도마취통증의학과의원)

2005년 스승의 날을 맞이하면서 여론조사를 했더니 스승의 날을 2월로 옮기자는 의견이 44%, 스승의 날을 폐지하자는 의견이 40%, 그대로 두자는 의견이 16%로 나왔다고 한다.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 보면 아무래도 학년이 바뀌고 새로 맞은 선생님께 대한 고마움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한 해 동안 배우고 나서 헤어지기 전에 그 동안 가르쳐주신 분에게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2월로 옮기자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반대로 요즘 교육계의 비리문제(부정입학·촌지·성적조작·과도한 체벌)들로 교사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현실을 반영해 스승의 날을 폐지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

옛날에는 '우리선생님' 또는 '우리담임선생님'으로 불리던 담임교사에 대한 용어가 요즘 중·고등학생들에게서는 담임선생님이 아니고 그냥 '우리 담임'이라는 말로 비하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자기를 가르쳐주고 보살펴주는 선생님이 아니고, 행동을 감시·감독하고 잔소리 담당자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사고가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다.

지식전달매체의 다양화로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지식은 아무데서나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교의 지루한 수업보다는 알맹이만 챙겨주는 학원 강사의 강의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수업시간에 배운 것은 상급학교 진학용 지식일 뿐 자신에게 마음의 양식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수업이 크게 중요하지 않고 선생님의 교훈적인 얘기는 쓸데 없는 잔소리로만 들릴 뿐이다.

대학이나 대학원 이상의 교육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공과목을 선택해서 4년간 수련을 마치고 나온 전문의들의 생각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대학교수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교수에게나 누군가를 지칭하면 그 친구는 자기가 가르친 제자라고 서슴없이 얘기한다.

그러나 피교육생이었던 당사자에게 그 교수님을 자신의 은사님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그냥 교수님이었을 뿐이지 은사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교수들은 자기가 가르쳤으면 당연히 은사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밑에서 배운 사람들은 단순히 지식만 전달받았을 뿐이지 자기의 인생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과대학에서는 단순히 의학지식만 전달받았을 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나 철학이 담긴 인술(仁術)을 전수받은 바 없고, 그들의 따뜻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교사는 교사일뿐이고 교수는 교수일뿐 은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선생님과 은사님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요즘에도 초등학교의 섬마을 분교로 자원해 들어가 전교생이 10여명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과 생활을 함께 하면서 간식도 직접 만들어 주고, 머리도 직접 잘라주거나 감겨주고 머릿속의 서캐까지 잡아주는 교사들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물(?)좋은 도시 학교로만 옮겨 다니면서 학부형들을 부담스럽게 하여 교육계에 얼룩으로 남는 교사들도 없지는 않다.

그 교사들 밑에서 단 일 년이란 기간의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두 종류의 교사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할까? 단순히 교재에 있는 내용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전달해주고 자기들이 가르쳤노라고 하면 학생들이 가르침을 받았다고 생각할까?

교편(敎鞭)이란 잘못된 제자들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 필요한 사랑의 매를 말한다. 요즘에 들어 교육계에서 체벌이 없어져야한다는 주장이 많지만, 제자들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해서 사랑의 매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인성이 제대로 되어있지 못한 일부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사랑의 매가 아닌 과도한 폭력을 휘둘러 문제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르침이란 지식전달도 중요하겠지만 깨달음까지 주어야 한다.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누구에게 알려주었다고 대단한 것을 가르쳐준 것처럼 착각하는 교육자가 있다면 이는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에게 사랑을 베풀어주고 깨우침을 준 사람에게만 은사님이란 존칭은 붙여줄 수 있고 그 존칭은 한시적인 것이 아니고 영원한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과 교수님이라는 직함만을 가지고는 이 시대의 은사님으로 남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기의 지식과 철학, 그리고 마음속 깊이에서 나오는 따뜻한 사랑의 전달 없이는 스승과 제자의 고리는 생길 수 없다고 생각된다.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과 같이 희생과 사랑 없이 단순히 지식만을 전달해주었다고 스스로 은사로 자처하는 것도 안 될 일이다.

자기에게 상당기간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생선을 잡아주는 것보다는, 자기에게 소량의 생선이라도 직접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 사람이 있다면 그분이 자기의 은사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현대는 어느 특정인에게 배워야하는 기간은 짧고, 배워야하는 내용은 많기에 특정인 한 두 사람에게 배워 평생 생활방편으로 살아 갈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래서 십여 년간 학창시절에 배운 지식들은 별개로 두고 생계수단을 위해서는 별도로 배워할 것이 많은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도 학교나 수련병원에서 자기에게 배운 것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것으로 생각하는 교육자들의 뒤떨어진 현실감이 문제라 사료된다. 학문의 세계는 아니지만 장인(匠人)들의 세계에서는 자기에게 생계방편을 마련해준 사람에게 사부님이라는 칭호를 붙여왔다.

필자는 스스로 찾아와 도움을 청해온 후배 의사들에게 생계형 의술을 단기간씩 전수시켜 온지 20년이 되어 가지만 인술(仁術)까지 가르칠 여지가 없었다. 그들과는 사제지간이라기보다는 직업적으로는 동료이고 의사의 선후배관계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스승의 날만 되면 그들로부터는 꽃바구니나 화분들을 선물로 받게 되면서 내가 어느 누구에게는 은사님이 되었고, 누구에게는 단순히 옷깃을 스쳐가는 인연으로 지나쳤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은사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표시는 학창시절 당장 눈앞에 있는 선생님에게 억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오래 지날수록 새록새록 자라나 커져야하는 묵은 김치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스승의 날은 자기 앞에 있는 선생님들에게 감사를 드리기 위해 마련한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먼 훗날에 옛 임을 그리워하며 감사드리기 위해 생긴 기념일이란 것을 교육자나 학부모들이 알았으면 한다.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 때에 실업학교 학생인 필자를 담임선생님께서 어떻게 보셨던지 "너는 성격상으로 장래에 의사가 되었으면 꼭 어울리겠다"고 말씀하시던 말씀이 세월이 갈수록 새록새록 떠오르며 그리워진다.

그 때만해도 의과대학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결국 필자는 그 선생님의 말씀대로 의사가 되었다. 그 후로 목포로 전근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졸업 후로 한 번도 찾아가 만나 뵐 수 있는 기회가 없어 죄스러움이 눈물로 바뀌어 눈앞을 가린다.

수련의 때에는 필자의 경제적 어려움을 알아보시고 의국비에서 생활비를 보조해주도록 배려하셨던 마취과 고 김광우 교수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강력한 지도력과 넘치는 카리스마로 후배들을 잘 다스렸던 교수님께 삼가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승의 날을 맞아 꽃바구니 안고 찾아가 뵐 은사님들은 계시지 않으니 어찌 서글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모님을 그리는 옛 시인의 글이 생각나 적어본다.

"반중의 조홍감이 좋아도 보이나다/유재 아니라도 품음직 하다마는/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이를 슬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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